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 반도체 외 사업부 OPI 규모 감소
고객사 효과·시장 상황 따라 그룹 안에서도 성과급 격차
설 명절 전후 체감물가 요동…차례상·용돈 등 부담 가중
임금 경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와…“박탈감 커질수도“

올해 연말 보너스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4분기부터 실적이 하락하면서 기업들이 인건비 다이어트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올해 연말 보너스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4분기부터 실적이 하락하면서 기업들이 인건비 다이어트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작년엔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조카들에게도 세뱃돈을 넉넉하게 챙겨줬어요. 내친 김에 스마트워치도 새로 장만했고요. 올해는 다음달까진 긴축해야 할 것 같아요.“

나흘 간의 설 연휴를 앞둔 30대 직장인 김희영씨(가명)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김씨가 재직 중인 회사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 ‘큰 타격이 있으랴‘ 싶었던 생각은 빗나갔다. “증권사 전망을 보니까 생각보다 안좋더라고요. 회사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예요.“ 

사내에서는 성과급 액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명절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년 동안 수고한 나에 대한 보상은커녕, 명절에 나갈 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예요. 매년 하던 걸 안하려니 사람 도리 못하는 것 같고 현타도 오네요.“

성과급의 계절을 맞은 직장인들의 표정은 어둡다. 연말 실적을 반영한 성과급은 설 명절 유용하게 쓰이곤 했다. 차례 상차림과 교통비, 용돈, 선물 등으로 늘어나는 지출을 메워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를 전망이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마저 성과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OPI는 연간 실적을 기준으로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되는데 가장 부진한 사업부는 10%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업계의 관측대로라면 지난해와 대비되는 결정이다.

2021년 삼성전자는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반도체 초호황기에 버금가는 성적을 받았다. 스마트폰 사업 매출 100조원을 회복했고, 생활가전과 TV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덕분에 지난해 1월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최대 연봉의 50%에 달하는 OPI에 월 기본급의 최대 200%를 목표달성장려금(TAI)으로 지급했고, 특별격려금 명목으로 기본급의 300%가 추가됐다. 

올해는 다르다. 주력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사실상 원가 절감으로 버텼지만, 4분기엔 한계에 도달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낸드사업이 4분기에 조 단위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한다. 스마트폰·TV·생활가전 또한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워 평균판매단가(ASP)가 높은 제품을 팔아 이윤을 높이는 데 집중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이에 상반기까지 실적을 견인했던 반도체 부문만 50% 안팎을 받을 뿐, 나머지 사업부는 성과급이 줄어들 전망이다. 스마트폰 29~33%, TV·디스플레이 18~22%, 네트워크 22~26%로 예상된다. 특히 사업부장이 물러날 정도로 상황이 나빴던 생활가전은 높여 잡아도 5~7%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실적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진. 김민영 기자.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수풀품목의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올해 기업들의 실적이 뒷걸음질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사진. 김민영 기자. 

기업들은 성과급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저금리에 투자시장 상황이 좋았던 덕에 기업들이 빚을 내서 사세를 확장하고, 경쟁적으로 인건비를 올렸다. 이런 결정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상황“이라며 “운전자금에서 비중이 높은 인건비를 줄여야 올해를 버틸 기업들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지난해 앞다퉈 연봉을 올렸다. “우리가 이천쌀집(SK하이닉스를 지칭하는 별칭)만 못하냐”는 불만이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올라오자 삼성전자는 연봉을 최대 16.5% 인상했다. LG전자는 평균 8.2% 올렸고, SK하이닉스도 기준급을 월 10만원씩 올리고 5.5% 인상율을 적용했다. 

후한 인심은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다. 다양한 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까닭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고수로 공급망 불안이 지속됐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뛰고 물류비도 고공행진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중국·대만과 유럽·러시아의 갈등으로 번졌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폭됐다. 고물가·고금리로 세계 주요국이 금융 긴축에 나서면서 다시 보호 무역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공급망 관리와 원재료 선제 확보 등으로 사업 비용을 늘고 해외 매출은 줄어든 가운데 이자부담은 껑충 뛰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의히면, 원가 부담이 큰 제조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임계치는 평균 2.6%로 조사됐다. 국내 기준금리가 3%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기업 5곳 중 4곳은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 대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대기업 1조1000억원, 중소기업 2조8000억원 등 기업들의 이자부담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4분기 영업이익이 2018년 이후 처음으로 1000억원 아래로 떨어졌던 LG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기업들은 성과급을 줄이는 분위기다. 온라인 광고 시장 위축으로 3분기부터 수익성이 줄어든 네이버·카카오나, 비대면 특수가 끝난 게임업계도 ‘생색을 내는‘ 수준에서 성과급을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성과급 조정이 아니다. 같은 그룹사라도 고객사 효과와 시장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정유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을 보면, 현대오일뱅크(226%)·SK이노베이션(160%)·에쓰오일(104%)·GS칼텍스(186%) 모두 전년보다 급증했다. 고유가에 정제마진 강세로 상반기까지 곳간을 그득 채운 덕분이다. 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는 월 기본급의 10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같은 전자업계여도 실적에 따라 성과급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효과로 선방했던 LG이노텍과 삼성디스플레이는 좋은 성적을 거둠에 따라 후한 보상이 예상된다. 특히 LG전자의 전장사업은 연간 흑자를 달성해 첫 성과급을 수령한다.  

직장인이 답한 설 명절 부모님 용돈(왼쪽)와 세뱃돈 적정금액. 자료, 한화생명.
직장인이 답한 설 명절 부모님 용돈(왼쪽)와 세뱃돈 적정금액. 자료, 한화생명.

기업들은 성과급의 격차가 불러올 나비효과를 걱정한다. 설 연휴 체감물가가 뛰어서다. 한국물가협회가 서울·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6대 도시 전통시장 8곳에서 과일류·견과류·나물류 등 차례용품 29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4인 가족 기준 설 차례상 비용은 25만430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24만290원)보다 5.8% 오른 것이다. 

가족 용돈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한화생명이 자사와 계열사 임직원 2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제 응답자의 36.2%가 30만원이 가장 적정하다고 답했다. 20만원, 50만원을 꼽은 응답자도 26.6%, 23.5%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10만원 이하라고 답한 비율은 1.9%에 그쳤다. 세뱃돈 적정 금액도 초등학생 3만원, 중학생 5만원, 고등학생·대학생은 10만원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더욱이 명절 이후에도 물가는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을 배제키 어렵다. 한국은행의 1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8.4% 상승했다. 2008년 이후 최대 폭이다. 생산자물가는 시장에 공급되는 상품과 서비스 등의 가격 변동을 반영하는 것으로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지수에 영향을 준다. 물가 상승 압박이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대기업 직원이라도 임금에 대한 불만이 커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아시아개발은행(ADB) 1.5%, 기획재정부 1.6%, 한국은행 1.7%, 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8%, 국제통화기금(IMF) 2.0% 등 국내외 주요기관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2.0%로 본다. 반도체를 비롯해 수출을 떠받쳤던 주요 품목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수요가 더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기업들의 매출이 감소하는 만큼, 자금 운영에 여유가 없는 경우 고강도의 비용 절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출 다이어트를 하려는 기업들과 박탈감을 호소하는 임직원 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조직에 균열이 생긴다. 당장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엔 “성과급 실화냐“ “어려울 때만 고통의 분담을 요구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경영진까지 나서 임직원을 달래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기본급의 700% 수준에서 초과이익분배금(PS)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PS 1000%에 특별격려금 300%를 줬다. 4분기 최소 8000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적자 규모가 커진다는 전망이 나온다는 점에서 곽 사장의 발언은 궁여지책이나 다름없다. 

기업들은 금융권을 시작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것으로 내다본다. 그렇다면 내부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제스처가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임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연봉 문제로 뭉뚱그리려 했던 부분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굉장히 안일하게 접근했던 것“이라며 “인력 재배치, 사업 재편 같은 경영 효율화를 하는 과정에서 임직원 개개인의 성장이 가능하도록 판을 짜야 한다. 그래야 생산성도 올라가고 충성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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