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 이상 상장 건설사 중 HDC현산, 코오롱글로벌 女이사 0명

건설사 “여성인력 적은 건설사 특성 감안해 점진 확대 필요”

전문가 “글로벌 도약 위해서라도 다양성 신경 써야”

올해 8월 5일부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여성 이사를 한 명 이상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처벌 사항이 아닌 만큼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지키지 않고 있다. 사진은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올해 8월 5일부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여성 이사를 한 명 이상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처벌 사항이 아닌 만큼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지키지 않고 있다. 사진은 본문과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신미정 기자] 이사회 구성원에 여성을 한 명 이상 포함해야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특히 건설사들은 업계 특성상 여성인력이 적을 뿐 아니라 고위직으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서 여성 이사 확보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창의성이 중요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들이 다양성 확보에 더욱 공들일 것을 조언한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결국 기업의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5일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상장법인 성별 임원 현황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 171개 중 21곳은 남성으로만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자산총액 상위 100대 기업에서는 메리츠금융지주·메리츠증권·다우데이타·다우기술·두산·두산에너빌리티·롯데지주·롯데손해보험·HMM·유안타증권·흥국화재·아시아나항공·KCC·LS·교보증권·HDC현대산업개발·DB금융투자 등 총 17사가 이사회를 남성으로만 구성하고 있었다.

이들 업계에서는 여성인력 비율을 늘리는 것 자체는 동의하나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후장대산업이나 건설업의 경우 업종 특성상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여성인력을 갑자기 늘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산총액이 2조원이 넘으면서 상장사인 건설사 중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과 ‘코오롱글로벌’이 이사진에 여성을 1명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통과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제165조의 20 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에 따르면 올해 8월 5일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들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사 구성원 대부분이 남성인 기업들은 여성 이사를 최소 1명 이상 선임해야 하는 상태다.

자산총액이 6조원 이상이면서 상장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올해 반기 보고서 발표 이후 지난 7월 19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이사진을 교체했지만 여기서도 여성 이사 선임은 없었다.

현재 HDC현대산업개발의 이사진은 최익훈 최고경영자(CEO), 김회언 최고재무책임자(CFO), 정익희 최고안전책임자(CSO) 등 대표이사 3명 이외에도 4명의 이사를 두고 있지만 모두 남성이다. 미등기 임원 10명까지 넓혀본다면 여성은 건축PD를 담담하고 있는 박정화 상무가 유일하다.

코오롱글로벌도 등기이사와 미등기 임원이 각각 7명, 29명이지만 여기서 여성은 한 명도 없다.

두 기업 관계자 모두 데일리임팩트에 “해당 사항이 의무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도 “여성 이사 확보를 위해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자산규모가 2조원이 넘는 롯데건설(7명), 포스코건설(7명), 한화건설(3명)도 여성 이사가 한 명도 없으나 현재 이들은 상장사는 아니어서 여성 이사 할당 기업에 포함되지 않는다.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이면서 상장사인 삼성물산(9명), 현대건설(7명), GS건설(7명), 대우건설(6명), DL이앤씨(5명) 등은 모두 한 명의 여성 이사를 포함한 상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 한 달가량이 지났으나 아직도 지켜지고 있지 않은 이유는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가 해당 사항을 의무라고 밝히고 있으나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특별한 제재가 주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설사들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사내에서 성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 특성상 여성인력 자체가 별로 없는 편이고 특히 이사급 인사를 구하는 것은 과거에 건설업 여성인력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더 고충이 많은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건설업은 입사 때부터 남성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남초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라며 “출산까지 겹치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건설업의 성별 비율 차이는 매우 크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산업별 취업자 현황을 보면 건설업의 경우 여성은 지난 2019년에 20만2399명으로 전체 201만9587명 중 10% 정도에 불과했다.

사진.데일리임팩트
사진.데일리임팩트

“여성인력 확보는 세계적 흐름, 다양성 확보가 기업 성과와 직결”

전체적으로 여성 이사를 선임하는 기업 비율은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 152개 중 85곳(55.9%)가 여성 등기 임원을 1명 이상 선임했으나 올해는 그 비율이 87.7%로 전년 대비 31.8% 늘었다. 

전문가들은 도덕적 의무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이 기업의 성과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더욱 여성인력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메리츠증권은 지난 2018년에 여성 참여가 활발한 국내 기업의 30여 곳을 골라 장기 투자하는 ‘더 우먼 펀드’를 선보인 바 있다. 이 펀드의 지난해 수익률은 12.8%에 달했다.

해외에서도 같은 이유로 여성인력 확보에 힘쓰는 중이다. 지난해 말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상장기업들은 이사가 5명인 이사회는 최소 2명, 6명 이상이면 최소 3명의 여성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이사회의 다양성이 갖춰지지 않은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통과하기 어렵게 했고 캐나다국민연금투자위원회도 상장기업이 이사회의 다양성을 갖추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븍랙록은 이사회 다양성 비율이 30%를 넘는 기업만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허민숙 여성학 박사는 데일리임팩트에 “조직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조직에 이롭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라며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현 상황에선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성, 역동성 등이 필요한데 이를 충족시키는 힘은 결국 구성원들의 다양성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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