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품질 관리는 공동 의무…공정한 경쟁체제 확립‘이 핵심

“권리 만큼 책임도 져야”…CP에 망 안정화에 위한 협력 요구

구글·넷플릭스, 국내 트래픽 34% 차지…ISP 인프라 부담 가중

美 정부, 통상 마찰 프레임 꺼내…국내기업도 반대여론 군불

“불공정 해소 기대했는데”…법제화 지연 속 소모적 논쟁 확산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OCA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넷풀릭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OCA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넷풀릭스.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망 이용에 따른 의무를 부과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해당 법안은 인터넷 망 기반 서비스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안정적 환경 구축을 위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일부 콘텐츠제공사업자(CP)들에 제동을 걸기 위해 마련됐다. 일정 규모 이상 CP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에게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거나 이를 위한 계약을 맺도록 했다. 전혜숙(더불어민주당)·김영식(국민의힘)·김상희(더불어민주당)·이원욱(더불어민주당)·양정숙(무소속)·박성중(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이 발의한 관련법안만 6건에 이른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는 법안이라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부수적 논쟁만 부각되는 모양새다. 

당장 미국 측은 넷플릭스·구글 등 자국기업에 대한 차별을 주장하며 은근한 압박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한·미 통상 마찰을 주장하며 이 같은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망 사용료 불가를 외치는 넷플릭스와 구글은 ‘투자 중단’을 암시하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국회가 속도를 내더라도 법안 의결부터 공표까지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그 사이 법안 상정 당시 벌어졌던 소모적 논쟁이 재연될 경우, 법안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망 사용료를 둘러싼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대사 대리는 지난 21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디지털 경제와 관련한 최근 입법은 외국 기업에 그들의 혁신과 투자가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사 대리가 한국법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통상 마찰’로 프레임을 끌고 가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 무역대표부(USTR)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USTR은 최근 발간한 2022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일부 한국의 통신업체는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 자국 CP에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면,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USTR의 주장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차별 없는 대우’를 명시한 만큼, 법안 통과가 자칫 한국의 국제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기업 감싸기에 적극 나서면서 구글·넷플릭스 측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구글은 ‘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이날 한국 공식 블로그를 통해 “개정안이 입법화된다면 한국 창작자에 대한 지속적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난드 부사장이 글을 올린 건 지난 20일, 공교롭게도 델 코소 대사 대리의 발언이 반대 발언이 나오기 전날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꾸준히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딘 가필드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아 “(한국 국회의) 입법 과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사업 규모를 축소시키고 혁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될 위험이 있어 다른 국가에서는 망 사용료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망 사용료를 한국 외에 지불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 뒤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인 오픈커넥트어플라이언스(OCA)를 적용할 것을 종용했다.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디지털 경제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의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왼쪽부터) 토마스 볼머 넷플릭스 콘텐츠 전송정책 부문 디렉터,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조대근 서강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고낙준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이용자정책과장, 김준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 사진. 최문정 기자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디지털 경제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의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왼쪽부터) 토마스 볼머 넷플릭스 콘텐츠 전송정책 부문 디렉터,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조대근 서강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고낙준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이용자정책과장, 김준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 사진. 최문정 기자

구글·넷플릭스가 총대를 매고, 미국 정부가 지원사격을 가세하면서 국내 CP 사이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망 안정화 의무에 이어 사용대가를 법제화하면 도리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애초 혁신을 저해할 규제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법안 자체에 우려를 표했던 것이지, 현 시점에서 망 사용료를 내느냐 마느냐는 국내기업들에 중요하지 않다”며 “국내기업들이 걱정하는 건 빅테크들은 버티면 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기업들이 법안의 실효성에 부정적인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CP들의 망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020년 12월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글로벌 CP들은 망 안정성 유지 의무가 부과됐음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이용자 수와 트래픽양 등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CP들은 망 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의무를 진다. 직전연도 10월부터 12월까지 일평균 이용자수 100만명 이상, 국내 발생 트래픽량이 국내 총 트래픽량의 1% 이상인 사업자는 과다한 트래픽 발생에 따른 서비스 장애를 예방할 책임을 있다. 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기술을 적용하고 서버 용량을 늘리는 식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부는 장애가 발생하면 해당 기업을 조사해 의무를 다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지난해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가 의무사업자로 선정됐지만 이들은 여러 번 서비스 장애를 일으켰다. 네이버, 카카오는 장애 사실을 고지하고 적극 대응한 반면, 구글은 늑장대응으로 빈축을 샀다. 웹 콘텐츠를 지원하는 웹뷰 오류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앱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7시간이 넘도록 ‘먹통’이 됐지만 구글은 하루가 지나서야 “업데이트를 해 달라”는 공지를 올렸다. 게다가 4시간 이상 장애가 발생했음에도 ‘무료 서비스’였던 탓에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구글과 넷플릭스는 ‘서비스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지난해 10월부터 12월 국내 트래픽 발생량을 조사한 결과, 구글 27.1%, 넷플릭스 7.2%, 메타(옛 페이스북) 3.5%, 네이버 2.1%, 카카오 1.2% 순으로 집계됐다. 국내 CP들의 트래픽을 다 합쳐도 해외 CP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더욱이 해외 CP들의 트래픽 양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ISP의 통신망에 부담을 주는 구글·넷플릿스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버티는 반면, 메타와 국내 CP들은 통신사에 이용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특히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카카오·네이버가 내는 사용료는 연간 1000억원 수준에 달한다.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트래픽을 훨씬 많이 쓰는 해외기업이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항변했다. 

그렇다 보니, 역차별을 겪던 국내 IT기업 사이에서는 법안이 유명무실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IT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서비스를 이용해 수익을 올린다면 응당 책임도 져야 하는데, 구글·넷플릭스는 권리는 요구하면서 의무는 다하지 않겠다 생떼를 부리고 있다”며 “저들에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이 마련돼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법의 취지가 흐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최근 망 사용료와 관련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국내 CP들의 속사정과 무관치 않다. 

국내 인터넷기업들은 넷플릭스 측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반대여론 군불 때기에 들어갔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망 사용료 의무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 인터넷산업진흥종합계획안을 전달했고, 이달 들어서는 국내외 관련 전문가를 불러 망 사용료 부과의 부당성을 알리는 세미나까지 개최했다.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에서 넷플릭스 측 전문가로 불린 이동만 카이스트 교수를 비롯해 세미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CP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을 펼쳤다. SK브로드밴드를 콕 집어 서비스 책임을 넷플릭스 같은 CP에 돌리고 있다며 “미친 발언” ”불량배” 같은 격한 표현이 나왔다. 

일단 국회는 법안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글로벌 플랫폼은 그 규모에 걸맞게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 망 사용료 부과 문제와 함께 플랫폼과 제작업체 간 공정한 계약(표준계약서 등)에 대해서도 챙겨봐 달라”고 주문했었다. 

이에 여야는 해외 CP들의 무임승차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간사인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측은 데일리임팩트에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게 여야 모두의 생각”이라며 “시장의 룰을 위반한 기업이 있고 그게 구글·넷플릭스였을 뿐, 처음부터 해당 기업들을 겨냥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내 사업자 역차별, 망 중립성, 계약 자유의 원칙 등 여러 쟁점사안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서 공청회를 열기로 한 것이지, 법안이 무산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국회 과방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의 입장을 취합한 뒤 전문가와 관련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법안을 표결할 계획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가운데) 등 소송인단이 반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 SK브로드밴드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가운데) 등 소송인단이 반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 SK브로드밴드

그러나 통신업계는 다소 신중한 분위기다. 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광범위하게 확대되면서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고, 법안이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감지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법안의 핵심은 결국 ‘불공정의 해소’에 있다”며 “어느 기업은 사용료를 내고 어느 기업은 내지 않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공정을 바로 잡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업계에서는 ‘넷플릭스 방지법’ 또는 ‘망 사용료 의무화법’이라는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넷플릭스를 제외한 국내외 CP들은 망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는데다, 특정기업을 겨냥한 ‘규제법안’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법 취지는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고도 뒷짐 지는 CP들의 무임승차를 막고 공정한 경쟁 체제를 확립하자는 데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본질이 흐려지고 있으니, 법 명칭을 바꿔 여론전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통상 마찰 우려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기업법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해외기업에만 차별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니 내국민 우대라 보기 어렵다”며 “서비스 유지를 위한 시설증설 비용이 발생했다면 인터넷 망을 이용해 수익을 낸 회사가 어떤 식으로든 부담을 나눠지는 게 맞다”고 짚었다. 인터넷 망 특성상, 특정 CP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다른 회사의 트래픽을 소화할 여력이 떨어지므로 인프라 확충 등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기업이 안정적 부품 공급을 위해 협력사 설비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 정부가 법안 저지를 위해 실력 행사에 나설지 미지수다. USTR 무역장벽보고서는 매년 발행하는 것으로, 미국 기업들과 이익단체들의 입장을 반영해 작성된다. 지난해 구글 갑질을 막기 위해 마련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도 무역장벽으로 거론됐으나 법안 통과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가 한국만 문제 삼기엔 모양새가 좋지 않다. 세계적으로 해외 CP들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 세계 통신업계에서는 CP들에 망 사용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전 세계 750여개 통신사가 소속된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글로벌 CP들이 망 투자에 대한 비용을 분담해야 하며, 이를 위한 펀드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유럽 4대 통신사인 도이체텔레콤과 오랑쥬, 텔리포니카, 보다폰 역시 유럽연합 의회에서 망 사용료 부과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넷플릭스의 안하무인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망 사용료 논쟁의 불을 붙은 것은 넷플릭스이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와 망 사용에 따른 비용 납부를 놓고 갈등을 겼던 넷플릭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재정이 진행되는 동안 돌연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넷플릭스가 1심에서 패한 뒤 항소하자, SK브로드밴드도 맞소송에 나섰다. 사법적 판단을 받겠다며 넷플릭스가 버티기에 들어가자 결국 국회는 해외 CP들의 행태를 저지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고, 개정안 추진으로 이어졌다.

통신업계 사정에 정통한 IT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넷플릭스의 대응이 글로벌스럽지 않았다는 게 안타깝다”며 “결자해지라고, 원만히 매듭지을 수 있는 문제를 키운 당사자가 도리어 차별 운운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에 이어 세계가 주목하는 법안이 됐고, 구글·넷플릭스가 국내법을 패싱하고 있어 국회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법안 처리가 늦어질 순 있어도 무산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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