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전문가 로슬린 레이튼 박사 인터뷰

SKB와 넷플릭스 ‘상호무정산’ 합의 없어

“인터넷은 양면시장”… 넷플릭스는 이기적

로슬린 레이튼 박사가 23일 국내 언론과 화상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최문정 기자
로슬린 레이튼 박사가 23일 국내 언론과 화상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최문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최문정 기자]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콘텐츠 전송에 있어 망 이용대가 지급을 두고 송사를 벌이는 가운데, 넷플릭스의 핵심 주장을 전면 반박하는 해외 전문가의 지적이 제기돼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23일 로슬린 레이튼 박사는 국내 언론과 화상인터뷰를 갖고,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의 핵심 쟁점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레이튼 박사는 네트워크와 경제학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통신 분야 컨설팅 업체 '스탠다드 컨설트'의 수석 부사장이며 약 50개국의 규제 이슈를 연구하며 당국에 대한 정책 조언 역할을 맡기도 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레이튼 박사는 지난 2월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기고문을 내며 한국의 망 이용대가 소송 사례에 대한 심층 분석을 내놓을 만큼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전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라며 “이번 공동 인터뷰 역시 레이튼 교수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해 성사됐다”라고 귀띔했다.

레이튼 교수는 이날 넷플릭스의 핵심 주장을 모두 반박했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SK브로드밴드와 자사는 ‘상호 무정산(Bill & Keep, 빌앤킵)’이 가능한 관계이다”, “자사의 오픈 커넥트  얼라이언스(OCA)를 도입하면 망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음에도, SK브로드밴드 측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등을 이유로 망 사용료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한 ‘망 중립성’의 개념을 통해 망 사용료 지불이 이중 요금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SKB와 넷플릭스는 빌앤킵 적용 대상 아냐”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가 최근 SK브로드밴드와의 항소심에서 제시한 상호 무정산의 원칙이 양사의 사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레이튼 박사는 “통상적으로 상호무정산 원칙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선제조건들이 있다”라며 “가장 먼저, 상대방끼리 유사한 수준의 트래픽을 교환해야 하고, 각자가 상호무정산의 원칙을 적용하기로 합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즉,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의 거래에 있어 상호무정산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한, 이 규정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넷플릭스 측에서 상호무정산의 원칙이 인터넷 세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이는 전화 통화와 같이 정보를 보내고 받는 쪽이 서로 유사한 수준의 데이터를 처리할 때만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경우,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의 망에 트래픽을 전송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전송하는 것이 없으므로, 등가의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OCA는 ‘넷플릭스 전용’... 오히려 경쟁 저해 요소 있어

넷플릭스 본사 전경.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본사 전경. 사진. 넷플릭스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의 자체 콘텐츠 전송 프로그램인 OC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OCA는 넷플릭스가 자체 개발한 트래픽 분산 시스템으로, 미리 트래픽 폭증 시간을 예상해 가까운 서버에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적체 현상을 줄이고, 통신망 부담을 줄여주는 기술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16일 항소심 재판에서 “OCA라는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있지만 SK브로드밴드는 착신 독점력을 이용해 통행세를 받아내려고만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레이튼 박사는 “OCA 운영은 상당한 에너지와 유지·보수비용, 인력 등의 비용이 들어간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넷플릭스가 자사의 OCA를 설치하겠다고 하는 것은, 다른 콘텐츠 사업자와 비교하면, 경쟁 저해 요소도 있다”며 “OCA는 오로지 넷플릭스 콘텐츠 전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콘텐츠 사업자는 네트워크 사업자의 망에서 OCA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레이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사업자가 스트리밍으로 1달러의 수익을 낼 때마다, SK브로드밴드와 같은 인터넷 사업자는 최종 사용자나 콘텐츠 사업자에 0.48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레이튼 박사는 “망 사업자들은 넷플릭스 이용자 1명 당 매달 12달러(약 1만2000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인터넷은 양면시장”... 망사용료 이중과금 아냐

마지막으로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의 망 중립성 개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망 중립성 개념은, SK브로드밴드가 이미 인터넷 서비스 사용자로부터 이용 요금을 받았기 때문에,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를 받는 것은 동일한 서비스에 대한 이중 부과라는 개념이다.

레이튼 박사는 “인터넷 산업은 양면시장의 원칙이 적용된다”라며 “신문사를 예로 들자면, 한쪽에는 광고료를 지불하는 광고주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구독료를 지불하는 독자들이 있다. SK브로드밴드와 같은 망 사업자는 신문사와 같은 중간 사업자에 해당한다”라고 정리했다.

아울러, 레이튼 박사는 모든 인터넷 사용자가 넷플릭스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인터넷 가입자 수는 약 2300만명 정도이지만,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500만명에 불과하다”라며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 나머지 망 사용자들도, 넷플릭스 콘텐츠 스트리밍에 부과되는 여러 가지 요금을 함께 지불하고 있는 셈”이라고 짚었다.

레이튼 박사는 “한국은 3G, 4G, 5G 등 망 기술에서 여러모로 1위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리더격 국가이자 디지털 사회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나라”라며 “. 많은 세계의 정책 입안자들은 넷플릭스를 일종의 ‘깡패’(Bully)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의 도전을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넷플릭스는 지난해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 지급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16일엔 1차 변론기일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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