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클라우드 AI 임원 이어 리더급까지 줄줄이 SKT행
하이퍼클로바X 출시 한 달 연기…결국 연쇄이탈 차단 나서
"계획적 빼가기 정황 포착" VS "당사자 선택" 주장 엇갈려
양사 모두 올해 AI성과 공언…합의점 찾기 쉽지 않을 듯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실용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사진=이지미투데이.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활성화에 따라 관련 인재 쟁탈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 네이버가 SK텔레콤의 스카우트를 막기 위해 고강도의 대응에 나서 주목된다. /사진=이지미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국내 정보통신(ICT) 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 네이버와 SK텔레콤이 갈등을 빚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에서 인공지능(AI) 개발을 담당하던 핵심 전력들이 연달아 SK텔레콤으로 이직해서다. 네이버는 해당 인력들의 이직에는 'SK텔레콤의 영향'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강경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인력 빼가기를 멈추지 않을 경우, 해당 인물들에 대한 가처분 신청은 물론 민형사상 소송까지 고려하겠다는 방침이다. 

SK텔레콤은 이 같은 네이버의 강력 대응에 "원만한 해결을 바란다"면서도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다.

생성형 AI, 챗GPT로 인해 AI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관련 인재 수급난이 본격화되는 모습, 테크기업을 표방하며 한국형 AI 기술 개발에 공들였던 IT기업과 타 업종 기업 간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SK텔레콤에 내용증명 날린 네이버클라우드

21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 15일 SK텔레콤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자사의 AI핵심 인력 스카우트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네이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내용증명을 보낸 건 맞다"며 "리더급 이상 책임자 수 명이 이직하면서 연쇄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네이버클라우드 인력의 연쇄 이탈이 시작된 건 지난 4월경. 클로바CIC 대표로 초거대 AI인 하이퍼클로바X 개발을 지휘하던 정석근 전 네이버 최고전략책임자(CSO)가 돌연 SK텔레콤 아메리카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정 전 대표는 두 달 뒤 SK텔레콤 본사로 이동, 글로벌·AI 테크 I사업부를 맡았다. 그를 따라 네이버 임원 1명도 SK텔레콤으로 이직했다. 이후 4~5명의 리더급이 연달아 네이버 클라우드에 사직서를 내고 'SK텔레콤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네이버 측은 해당 인물들이 AI 개발과 기술 고도화를 추진했다는 점, 한꺼번에 여러 명이 같은 회사로 가기로 한 점, 이직 후 SK텔레콤에서 같은 업무를 맡기로 한 점 등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자체적으로 조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 SK텔레콤 측이 계획적으로 인력을 빼가려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게 네이버클라우드의 주장이다. 

데뷰2023에서 ‘서치GPT 프로젝트’에 대해 김용범 네이버 서치US 치프 사이언티스트가 설명하고 있다./사진. 네이버.
데뷰2023에서 ‘서치GPT 프로젝트’에 대해 김용범 네이버 서치US 치프 사이언티스트가 설명하고 있다./사진. 네이버.

 

"법적 대응 불사...그러나 소통 채널은 열어놓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일단 SK텔레콤과 소통을 하되, 원만한 해결이 되지 않으면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중요한 프로젝트 공개를 수개월 앞두고 핵심 인물이 빠져 타격이 적지 않다"며 "재발 방지 약속 같은 부분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정경쟁방지 등에 위반된다고 보고 SK텔레콤으로 이동하는 인력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와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 중이다. 다만 네이버클라우드는 SK텔레콤과 소통 채널은 열어두기로 했다.

SK텔레콤도 조기 진화에 나섰다. 인사 담당자가 이미 네이버클라우드에 '이번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제안한 상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네이버 측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다"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우리가)설명을 하면 할수록 구구한 억측이 나올 수 있고, (이직) 당사자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기에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 이외에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IT업계는 이직이 잦은 분야 중 하나로 꼽혀왔다. 회사를 떠났다가 여러 곳을 거치며 업무 역량을 높인 뒤 '유턴'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직과 전직에 유연한 환경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네이버클라우드의 대응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AI 인력 풀이 좁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직 공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AI 관련 커리큘럼을 개설하려 해도, 이를 가르칠 교수를 영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국내 AI 인력 풀은 매우 협소하다"고 전했다.

AI, 미래 먹거리 핵심 기술…'인력 쟁탈' 심화

두 회사가 전문 인력 이직을 둘러싼 갈등을 잡음 없이 조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네이버가 AI에 사활을 걸고 있어서다. 

네이버는 올해 한국형 AI로 성과를 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최수연 대표는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네이버 쇼핑, 지식인, 여행 예약 서비스 등 모든 서비스에 (AI를) 적용해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킬 것"이라며 "B2B 역시 데이터 보호 등 고객 맞춤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이용자의 관심, 취향 등을 반영, 검색을 최적화하고 기업들의 타깃층을 분석해 업무 효율성을 제고할 솔루션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구글, MS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탓이다.

네이버는 국내 검색시장 1위라는 지위를 활용해 사업영역을 넓혀왔다. 하지만 구글의 점유율이 지난해 31.8%까지 상승했다. 챗GPT를 빠르게 고도화시키고 있는 만큼, 구글의 점유율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검색을 통해 이용자를 끌어들였던 네이버의 락인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네이버는 이에 생성형 AI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초대규모 한국어 학습 외에 이미지, 영상을 이해하고 계산기, 지도 등을 활용해 답변하는 AI를 개발 중이다. 한국어 학습량이 적어 외산 챗봇은 사실과 맞지 않거나 질문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답변을 내놓는 '환각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보완한 한국 특화 서비스로 내수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다음달부터 결과물이 공개될 예정이다. 서치GPT로 불렸던 차세대 챗봇 서비스는 최근 '큐:(Cue:)'로 이름을 확정하고 특허청에 상표 출원까지 마쳤다. 기존 하이퍼클로바를 검색 서비스에 맞춘 대규모언어모델(LLM) 오션을 기반으로 개발됐는데,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처럼 챗봇 AI를 탑재한 검색서비스를 표방한다. 8월경 하이퍼클로바X 출시되면 이와 연계해 네이버의 서비스들을 차례로 고도화할 방침이다. 연내 기업용 AI 솔루션도 출시한다.

공격적인 행보지만, 당초 네이버의 계획과는 시차가 난다. 지난 5월 검색서비스의 사용자 환경(UI)과 사용자 경험(UX) 개편이 시작했던 네이버는 인력 유출로 하이퍼클로바X 출시 일정을 한 달 가량 연기했기 때문이다. AI 인력이 추가 이탈한다면 출시 일정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게 네이버의 우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확대경영회의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확대경영회의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최수연 대표와 최태원 회장이 직접 챙기는 '양보하기 힘든' 분야

SK텔레콤도 인력 확보를 멈출 수 없다. 올해 AI컴퍼니로 전환해 가시적 성과를 공언해서다. 'AI를 모든 곳에(AI to Everywhere)’ 라는 전략 아래 사업 확장과 수익성 극대화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연어 처리 기반 AI전문가인 오혜연 카이스트 교수, 딥러닝 알고리즘 기반 컴퓨터 비전과 신호처리 전문가인 김준모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부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며 이사회 전문성을 강화했다.

글로벌 빅테크 수준의 서비스와 기술 역량 내재화도 서두르고 있다. 대화형 AI 서비스인 에이닷 고도화, 그리도 기본 사업의 개선을 위해서다. 

에이닷은 GPT-3 한국어 특화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지난 2월 장기기억 기술, 사진·음성 등 복합 정보를 이해하는 멀티모달 기술을 적용돼 이용자와의 소통 능력이 향상됐다. 현재는 '인간처럼 반응하는' 감성대화 기술을 녹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올해 4월 AI 에이전트 '이루다'로 유명한 스캐터랩에 150억원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스캐터랩과는 초거대 언어 모델(LLM) 개발에도 나선다. 180억 매개변수(파라미터)를 상반기 중 390억개로 향상시킨다는 목표다. SK텔레콤은 에이닷 진화에 맞춰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디지털 전환 수요를 잡기 위해 기존 사업에 AI 기술을 접목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 대표 AI 기업들과 AI 얼라이언스를 결정, 협력 중이다. 

특히 SK텔레콤의 AI사업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각별히 챙기고 있어서다.

최 회장은 2019년 SK이천포럼에서 "AI와 DT(디지털 변혁) 등 혁신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한편, 고객 범위를 확장하고 고객 행복을 만들어 내야 한다"며 "혁신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면 SK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우스랩스 설립, AI반도체 사피온 개발과 같은 성과가 있긴 했지만, 재계 4대 그룹 중 사업 속도가 제일 쳐졌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텔레콤의 무보수 미등기 회장 겸직을 결정하고, AI를 포함한 핵심 사업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또 최 회장은 AI 전담조직인 아폴로TF 구성원과의 타운홀미팅에서 "AI는 그룹의 새 성장동력이다. 플랫폼 기업들과 그들의 규칙대로 경쟁하긴 어려우니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의미 있는 도전을 하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네이버클라우드와 SK텔레콤의 사례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AI 전문성을 지닌 IT 인력을 스카우트하면 인수합병(M&A)처럼 비용 부담 없이 기술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AI 인력태부족의 상황이 도래했다"며 "가장 손쉽고 빠르게 기술을 진보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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