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공급’ 목적 자금 지원, 금리인상 기조와 ‘충돌’
한은은 금리인상 기조 불변 재확인…인상 폭 관건 될 듯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국내 기준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의 올해 마지막 회의가 이달 중순에 열리는 가운데 연내 최종금리 수준을 가늠할 이번 회의 결과에 벌써부터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단 금리인상 기조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여전히 5~6%대 수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다소 큰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이제는 금리인상에 다소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일단 시장에서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FOMC 정례회의, 그리고 내일 공개되는 국내 10월 물가상승률에 따라 금리인상 폭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다소 완화된 경제 지표를 근거로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에 따라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 인상 폭을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마지막 한국은행의 금통위 회의가 오는 23일 개최되는 가운데, 그간 한은이 유지해온 ‘흔들림 없는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한 금융당국 수장, 금통위원들은 지속해서 물가상승률을 잡기 위해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수장들은 ‘고통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금리는 올릴 것(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며 한은과 시각차는 없다(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이같은 입장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최근 금융시장의 환경은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수준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국내 경제‧금융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했다는 이유에서다.
레고랜드 후폭풍, 통화정책에도?
가장 강력한 변수는 역시 최근 불거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에 따른 ‘채권시장 리스크’다. 유동성 위축으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커지면서 한은을 포함한 금융당국이 시중에 자금을 푸는 방식의 유동성 공급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이 같은 정책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은을 포함한 금융당국은 유동성 공급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은행 채권 시장 및 단기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채와 공공기관채를 포함한 9개 공공기관 발행 채권을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포함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조치로 적격담보증권으로 은행채를 활용해지면서 현금 확보가 용이해져 기업 대상 자금 공급도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은행은 원활한 자금시장 및 위축된 유동성 회복을 위해 증권사‧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RP란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다시 매입하는 조건으로 채권을 판매한 뒤, 기간에 따라 이자를 붙여 재매입하는 채권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한은이 RP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동성(자금)이 풀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은은 내년 1월 31일까지 6조원 규모의 RP매입을 진행한다. 특히, 현시점에서는 3개월 한시적 운영이지만, 금융시장의 경색 정도에 따라 재연장 가능성도 시사하는 등 금융시장의 유동성 심리 개선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자금시장의 경색을 풀기 위한 각종 대응책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시장에 돈을 푸는 행위로 귀결된다. 자금을 회수하는 긴축재정을 통해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겠다는 일련의 기조와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장 오늘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단의 만남에서도 이처럼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은행을 포함한 금융업계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강조됐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되면서 시중금리가 꾸준히 상승하는 과정에 일련의 자금경색이 발생한 것”이라며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 당국 대응 기조와 자금경색에 따른 유동성 공급 방안이 상충하는 데 따른 문제는 향후에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인상은 확실, 인상폭은 ‘설왕설래’
시장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p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앞서 언급했던 대로 자금시장의 경색이 심각한 만큼 금리인상 폭에는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은행을 포함한 상당수 전문가는 채권시장의 경색과는 관계없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한 일련의 대응책이 단기적 성향의 정책일 뿐, 장기적 관점에서 금리인상을 멈추거나 속도를 조절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창용 총재도 지난 27일 진행된 금통위에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중심으로 신용 경계감이 높아진 것은 미시적 측면의 상황으로 최근 제시한 일련의 자금시장 안정 방안 역시 단기적 정책”이라며 “(기준금리 등) 거시적 관점의 통화 정책을 바꿀 만한 전제조건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채권시장의 리스크에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바꿀 가능성을 차단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한번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이 유력한 미국 연준의 11월 정례회의도 변수로 손꼽힌다. 오는 3일(현지시간) 11월 회의 결과가 발표될 예정인데,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 연준이 이번 달까지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이후 12월 회의에서부터 속도 조절 시그널을 시장에 보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큰 폭의 금리 역전이 외국인 자본 유출 등 부정적 여파로 이어질 가능성도 여전한 만큼, 이에 대비하기 위한 빅스텝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창용 총재의 빅스텝 시사 발언이 채권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라면서도 “사상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달의 전제조건이 이번 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빅스텝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금융위기설에 속도조절론도 ‘탄력’
다만, 일각에서는 자금시장 경색이 제2의 IMF, 제2의 금융위기 사태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있다며 적어도 금리인상 폭은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진행형인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에 이어 자금시장 경색이라는 새로운 리스크가 더해진 만큼 기존의 강도 높은 긴축은 더 큰 부정적 여파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미국 연준에서도 최근 들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소위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점도 변수 중 하나다. 당장 11월 FOMC 회의에서는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이 높지만, 만약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속도 조절 가능성을 언급할 경우 당장 11월 금통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FOMC에서 자이언트스텝이 결정될 경우, 미국 기준금리는 4%(상단 기준)에 도달하면서 3%인 한국 기준금리와 1%p차이로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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