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에 정부‧금융업계 ‘100조원 육박’ 유동성 공급

돈줄 공급에도 ‘은행채↑-회사채↓’…금리도 위험수위

근본적 해결 위한 국책은행 등 당국의 적극 대응 필요

국내 대기업들이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어서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레고랜드 사태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자금시장의 경색은 해소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레고랜드 사태가 발발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이에 대한 후폭풍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 발 자금경색으로 시중의 자금 유동성이 메말라버린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해 정부와 금융업계가 내놓은 대책이 큰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동성 공급에도 회사채와 국채 간 금리차, 기업어음(CP)금리가 위험수위에 도달한 반면,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분류된 은행채의 발행 수량은 증가하고 있다는 지표가 공개되기도 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정부 대책이 시장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이같은 기조가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최근의 긴축 재정 움직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이러한 시장의 자금경색 기조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동성 완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나아가 유동성 공급에 중심에 서 있는 금융업계의 리스크 가능성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부터 본격화된 강원도 레고랜드 발(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로 국내 채권 및 자금시장의 리스크가 커지는 가운데, 이후 금융당국이 내놓은 각종 유동성 완화 조치가 실질적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레고랜드 사태 이전부터 기준금리 인상, 강달러 기조 등 금융환경의 불확실성 여파로 채권시장 내 리스크 우려는 존재했었다. 잠재적 시한폭탄이었던 채권시장의 리스크가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터지면서, 국내 채권 나아가 자금시장 전반에 직격탄을 가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구혜정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구혜정 기자

자금 경색에 유동성 ‘100조원 투입’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이 증폭되자, 금융당국은 즉각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 조치를 지속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주요 금융당국의 수장들은 일련의 회사채 시장 및 단기 금융시장의 불안심리 확산, 그리고 유동성 위축을 막기 위해 기본적으로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조치를 공개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에 20조원을 긴급 투입했다. 일단 1조6000억원 규모의 가용재원을 우선 투입, 시공사 보증 PF-ABCP 등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을 재개했다.

추가 펀드 자금요청(capital call) 작업에도 속도를 냈다. 기존 연내 집행 예정이던 ‘캐피탈 콜’의 본격적 시행 시점을 기존 내년에서 이달 초로 앞당기고 필요시 추가적인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유동성 완화 조치에는 금융권의 역할도 강조됐다. 실질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주체가 금융사인 만큼,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자금 경색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수 있는 당국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국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유동성 공급 및 완화를 위해 총 95조원 규모의 금융시장 안정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시장 유동성 확대에 약 75조원을 지원하고 △채권시장안정펀드 및 증권시장안정펀드 참여(12조원) △금융그룹 내 계열사 자금공급(10조원) 등도 약속했다.

특히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한목소리로 자금시장 위축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온 은행채 발행은 당분간 자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은행채 발행을 줄여 상대적으로 위축된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계 전반에 자금이 돌 수 있게끔 유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실제로 기업어음(CP)‧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등의 조치는 이미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라며 “단기자금시장에서 은행권이 시장안정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공격적 유동성 지원, 효과는 ‘글쎄’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발표된 이후에도 정작 자금시장의 현실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위 ‘50조원+ɑ’로 일컬어지는 정부 차원의 유동성 공급에도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둔화, 부동산시장 위축 등의 여파가 지속되는 한 시중 자금 경색 현상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은행채와 회사채 현황이다. 당초 발행 감소를 기대했던 은행채는 오히려 발행 규모가 늘어난 반면, 회사채는 발행 규모가 감소하며 정책의 기대효과와는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일리임팩트가 금융투자협회에 확인한 11월 은행채 발행 규모는 20조6900억원 수준(18일 기준)이다. 이는 전월 대비 오히려 1300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두 달 전인 9월 발행액(25조8800억원)에 비해서는 5조원 이상 감소한 수치지만, 레고랜드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발행액이 전월 대비 늘어났다는 점은 주목해볼 대목이다.

특히, 아직 11월이 보름 가까이 남았다는 점을 비춰보면 21조원대까지 발행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1월 18일까지 올해 발행된 은행채 규모는 186조5700억원 수준이다. 상반기에는 86조 가량이 발행됐고, 하반기에는 이미 발행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섰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특히, 올해 은행채 발행규모는 지난해 전체 발행액(183조2123억원)을 넘어서기까지 했다”라며 “상환액의 증가로 순발행은 이달 1.23조원 마이너스 전환됐지만, 은행채 발행 자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부분은 그만큼 은행권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은행채의 발행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반면, 발행 확대를 기대하고 있는 회사채의 경우 좀처럼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기준, 이번 달 회사채 발행규모는 1조2976억원 수준이다. 이는 전월 대비 2조4000억원 가량 감소한 수치다.

특히 올해 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71조8430억원 수준인데, 상반기에 50조원 가까운 발행(49조7393억원)된 이후, 하반기에는 이에 절반 수준인 22조원 규모의 신규 발행에 그치고 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정책금융기관 역할 강화 주문도

채권시장의 금리 추세 역시 정책 효과를 논하기에는 다소 아쉽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레고랜드 사태 이후 4.50% 수준까지 급등했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후 정부의 잇단 유동성 공급 지원책의 여파로 3.80%(18일 기준) 수준까지 하락했다.

반면, 지난 14일 1.57%p 수준이었던 회사채 스프레드(회사채 AA-)와 국고 3년의 금리 차이는 지난 21일 기준 1.66%p로 확대됐다. 특히, 지난달 말 4.63% 수준이었던 기업어음(CP)의 금리 또한 불과 3주 새 5.36%(21일 기준)까지 오르는 등 단기자금시장의 안정화가 아직 기대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금융시장에서는 이처럼 유동성 지원을 위한 일련의 정책에 한계가 명확한 만큼, 금융당국 특히 국책은행의 역할이 한층 강화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 확대 기조가 강화될수록, 자칫 국책은행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국책은행의 운영 기조의 근간에 ‘기업 지원’임을 감안하면 시중은행과는 별개로 더욱 강력한 유동성 공급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힘이 실린다.

실제로 지난 3분기 기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0.05%p 오른 0.8% 수준을 보였고 연체율 또한 전년 동기 대비 0.02%p 개선된 0.27% 수준을 기록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국내 중소기업의 잠재적 부실 리스크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건전성 지표가 관리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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