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반도체 수출 통제…중국 내 첨단 기술·장비 반입 제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개별 심사 받아야…中 사업 부담 가중

“당장 영향 없겠지만…불확실성 증대·기술 유출 등 역효과 우려”

미국이 중국으로의 첨단 반도체 기술 수출을 전면 통제하기로 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미국이 중국으로의 첨단 반도체 기술 수출을 전면 통제하기로 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당장 중국사업에 큰 영향을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장기적으로 어떤 변수가 될지 확신할 순 없기 때문에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반도체업계 관계자)

미국이 반도체 기술장벽을 한층 높였다. 중국으로의 반도체 첨단 기술과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다만 외국기업의 경우, 사안별로 심사해 수출 허가를 결정할 예정인 만큼,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반도체 첨단 장비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만큼 장비 수혈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국과긔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 안팎에서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수출 절차가 늘어나는 데 따라 사업 계획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은 개별 기업에 대한 수출 제재를 넘어 반도체 기술 자체를 틀어 막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뿌리째 흔들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피력한 셈이다. 향후 제2, 제3의 조치가 이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1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지난 7일(현지시간)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오는 21일부터 미국 기업이 18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 기술을 사용한 14나노 이하 로직칩을 중국에서 생산하려면, 미국정부로부터 관련 기술과 장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 첨단 기술이 쓰이는 공장이 중국기업 소유라면 거부 추정 원칙에 따라 수출이 사실상 전면 통제된다. 

모든 반도체 기업의 첨단 기술과 장비 도입이 막힌 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해 외국기업은 기업은 사안별로 심사해 수출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반도체 업계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워낙 큰 까닭이다. 지난해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모는 502억달러로 약 39%를 차지했다. 중국이 미국과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홍콩을 통한 우회 수입을 늘린 점을 고려하면  전체 반도체 수출액에서 중국의 비중은 60%에 달한다. 

국내기업들은 중국에서 적잖은 물량을 생산 중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를 만드는데, 전체 물량의 40% 가량을 책임진다. SK하이닉스 역시 우시(D램), 다롄(낸드)에서 만드는 메모리반도체 생산량이 상당하다. D램은 40% 이상, 낸드 역시 20% 이상이 중국에서 제조된다. 

정부에서는 우려할만한 수준의 영향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예외적인 허가 절차를 도입한 까닭에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혹여 발생할지 모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한·미 공급망·산업대화(SCCD) 산하 수출통제 워킹그룹을 통해 정례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국내 반도체기업들도 현재로선 우려할만한 영향을 없을 것이라며 입을 모으고 있다. 일단 중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에 첨단 기술과 장비를 적용하지 않는 데다, 중국시장을 겨냥한 제품이라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정부가 긴밀한 협의를 바탕으로 (피해가 없도록) 조율하고 있으므로 좋은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면서 “심사 과정이 추가되고 절차가 까다로워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와 다른 거라서 영향이 적을 것 같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도 데일리임팩트에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국제 질서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정부와 보조를 맞춰 중국 생산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통해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받을 영향이 제한적이리자도 장기적으로 사업 운영에 부담을 가중시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통해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받을 영향이 제한적이리자도 장기적으로 사업 운영에 부담을 가중시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반도체 규제가 어디까지 강화될지 가늠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읽힌다. 사안별로 심사를 하더라도 미 상무부의 방침이 국내 기업에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의 역할이 크므로 미국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거란 생각은 지극히 단편적인 관점“이라며 “궁극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게 목적이고, 그러자면 최첨단 반도체 기술이 미국으로 모여들게 해야 한다. 이번 조치를 이런 구상의 본격화하는 시작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사이익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가 다시 벌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YMTC(양쯔메모리)는 지난 5월 192단 낸드 성능 검증을 마친 데 이어 올 연말 232단 낸드 양산을 계획 중이다. CMXT(창신메모리) 또한 17나노 공정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D램 공정에서 15나노 비중이 50%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CMX 기술 추격 속도가 매섭다. 아직까지 D램은 5년, 낸드는 2년 안팎으로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YMTC의 128단 낸드는 올해부터 아이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YMTC가 브랜드 관리에 예민한 애플이 공급사로 선정할 정도의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이번 조치로 중국이 메모리반도체 기술력 고도화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감지된다. 

이에 대해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미국의 견제 속에서도 중국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을 지난해 21%에서 올해 상반기 32%로 늘렸다. 무엇보다 기술 유출 시도가 빈번해질 게 자명하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큰 돈을 들여 국내 기술 인력을 빼가고 있다. 전·현직 임직원을 회유해 핵심 기술을 빼가려는 시도 또한 눈에 띄게 증가했다. 

사업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점도 걱정거리다. 장비 반입을 위한 심사에 시일이 소요되는 까닭에 사업 운영 계획을 탄력적으로 짜야 한다. 최근 반도체 업황 변동 주기가 짧아졌지만, 이에 맞춰 대응키 어려워진 셈이다.

기업의 자율적 운영이 제약받는 점 역시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시스템반도체 비중을 점차적으로 늘린다 해도 당분간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익을 내줘야 한다. 중국공장을 전면 철수하지 않는 한, 투자 효율성을 고려해 증설 등을 나서야 할 시점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략적 경영 판단대로 투자를 추진할 수 없어, 사업 부담이 가중된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또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미국이 현재보다 낮은 수준으로 통제 조치를 완화할 것 같진 않다“면서 “중국 뿐만 아니라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타격을 주기에, 가뜩이나 위축된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방증하듯 반도체 관련 주가가 급락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10일(현지시간) 3.5% 가량 떨어졌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1.42%, 1.10% 하락했다. 전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 또한 8.33% 급락했다. 하루 사이 전 세계 반도체 시가총액 2400억달러가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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