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 달성…양적 성장은 성공
메모리반도체·스마트폰·5G·디스플레이 등 사업 경쟁력 ‘흔들’
M&A·글로벌 협력 등에서 역할 기대…‘자가격리 7일’에 발목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국내에 발이 묶였다.
이 부회장은 재판 휴정기간을 이용해 해외 출장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데다 비자 발급 및 격리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당분간 국내에 머무르며 현안을 챙기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80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며 정체의 늪에서 벗어난 만큼, 올해 뉴삼성 기반을 공고히 할 계획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공급망 문제 등과 관련해 해외사업장 관리가 중요해진 점을 고려해 ‘기업 최고 경영인에게는 활동의 제약을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국내 경영에 머무르며 뉴삼성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설 연휴를 이용해 해외 출장에 오를 것으로 봤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으로 매주 목요일 재판을 받고 있다. 다만 3일 재판이 휴정되면서 오는 13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때문에 이 부회장이 유럽, 중국 등 전략적 협업이 필요한 시장을 중심으로 현지 상황을 살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었다. 지난해에도 재판이 없는 기간을 이용해 캐나다와 미국, 아랍에미리트(UAE)에 다녀왔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매출 279조6000억원을 달성했다. 반도체 초호황기였던 2018년(243조7711억원)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창사 이래 최대치다. 수익성도 좋았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51조6300억원, 2018년(58조8867억원)과 2017년(53조6450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2012년 매출 201조1036억원, 영업이익 29조493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200조·영업이익 30조 시대를 연 이후 2017~2018년을 제외하면 매출 200조원 중반, 영업이익 20~30조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에 양적 성장을 이뤘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질적 성장에서 삼성전자는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2년 사이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기존 주력사업에서 경쟁사들의 추격을 허용하며 경쟁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매출의 70% 가량이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에서 나온다. 그러나 메모리반도체에서는 미국 마이크론이 176단 이상 3D 7세대 낸드를 출시한 데 이어, 4세대 10나노(㎚·1㎚는 10억분의 1m, 4세대 10나노는 1a으로 표시) D램 양산에 성공하며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다. 극자외선(EUV) 공정 기반 4세대 10나노(1a) D램 양산도 SK하이닉스가 선수를 쳤다. 스마트폰마저 연간 출하량 3억대 수성에 실패한 뒤 매출100조·점유율 20%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양자점 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 전환,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사업 확대 등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계 일류 기술회사임을 강조해 온 것과 달리 사업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경영 전문가는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고 뉴삼성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삼성전자의 ‘다음’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면서 “현대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SK는 친환경, LG는 전장·IT 등 중장기 성장 엔진이 가동되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성장 동력을 본격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터다. 지난해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가전과 모바일·IT, 반도체로 운영되던 조직을 10년 만에 DX와 반도체로 재편하고, 각 부문 수장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특히 기술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겨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굵직한 투자에도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원 규모의 제2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결정하고 글로벌 빅테크 공략에 나섰다.
인수합병(M&A),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등도 이전보다 적극 나설 태세다. 한종희 부회장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저희는 훨씬 빨리 뛰고 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 같다”며 “CES 행사장에서 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메타버스 등 다양한 분야를 면밀히 살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업에 제한을 두지 않고 과감한 협업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M&A는 물론,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 등 미래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한 개방적 협력이 강화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조 단위가 오가는 M&A는 총수의 교통정리가 필수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경우에 따라서는 M&A로 인해 단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사적 관점에서 수익을 맞추기 위해 사업부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며 “이를 조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가용하는 게 총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M&A가 전무했다. 주력인 반도체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나 반도체 설계 분야 전문기업을 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도체 M&A의 경우, 경쟁당국의 승인이 까다로워진 까닭에 M&A 효율성을 검토하고 한편, 경쟁당국의 승인 여부 등 변수를 고려하는 건 이 부회장의 몫이다.
실질적인 사업 운영에서도 이 부회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일단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에 들어갈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2020년 ASML 네덜란드 본사를 찾아 최고 경영진과 만났다. 이 회동 이후 삼성전자는 EUV 물량을 다소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원가 관리 역시 이 부회장이 측면 지원을 할 수 있는 분야다. 공급망 문제가 장기화된 가운데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상승해 원가 압박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중국 공장에서 만든 반도체 등을 국내에서 후공정을 한 뒤 해외시장에 수출한다. 중국 생산망을 점검하고 현지 협력사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경영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더욱이 중국 시장은 ‘고객’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3분기까지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30%가 중국에서 나왔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보폭이 확대될 필요성이 더 커진 셈이다.
이 부회장이 챙길 현안은 쌓였지만 오미크론 확산으로 자가격리 면제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출국이 어려워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해외 입국자에 대해 유전자증폭(PCR) 음성 확인서 기준을 48시간으로 강화하고, 입국 후 7일 격리하도록 했다. 격리 면제 조건 역시 ‘중요 사업상 목적’에 한해 허용된다. 현지 시장 파악이나 사업장 점검 등 계약 체결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경우, 자가격리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자가격리 문제로 해외 경영에 발이 묶인 총수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 기업인에 대해서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국가별로 방역에 중점을 두는 방향이 다르므로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순 없지만, 코로나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은 분명하다”며 “국내기업 상당수가 해외시장 비중을 높이고 있고, 이들의 활력이 내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기업인의 해외 경영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각 국과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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