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 달성…양적 성장은 성공

메모리반도체·스마트폰·5G·디스플레이 등 사업 경쟁력 ‘흔들’

M&A·글로벌 협력 등에서 역할 기대…‘자가격리 7일’에 발목

지난해 12월 9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최문정 기자
지난해 12월 9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최문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국내에 발이 묶였다. 

이 부회장은 재판 휴정기간을 이용해 해외 출장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데다 비자 발급 및 격리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당분간 국내에 머무르며 현안을 챙기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80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며 정체의 늪에서 벗어난 만큼, 올해 뉴삼성 기반을 공고히 할 계획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공급망 문제 등과 관련해 해외사업장 관리가 중요해진 점을 고려해 ‘기업 최고 경영인에게는 활동의 제약을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국내 경영에 머무르며 뉴삼성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설 연휴를 이용해 해외 출장에 오를 것으로 봤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으로 매주 목요일 재판을 받고 있다. 다만 3일 재판이 휴정되면서 오는 13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때문에 이 부회장이 유럽, 중국 등 전략적 협업이 필요한 시장을 중심으로 현지 상황을 살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었다. 지난해에도 재판이 없는 기간을 이용해 캐나다와 미국, 아랍에미리트(UAE)에 다녀왔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매출 279조6000억원을 달성했다. 반도체 초호황기였던 2018년(243조7711억원)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창사 이래 최대치다. 수익성도 좋았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51조6300억원, 2018년(58조8867억원)과 2017년(53조6450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2012년 매출 201조1036억원, 영업이익 29조493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200조·영업이익 30조 시대를 연 이후 2017~2018년을 제외하면 매출 200조원 중반, 영업이익 20~30조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에 양적 성장을 이뤘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질적 성장에서 삼성전자는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2년 사이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기존 주력사업에서 경쟁사들의 추격을 허용하며 경쟁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매출의 70% 가량이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에서 나온다. 그러나 메모리반도체에서는 미국 마이크론이 176단 이상 3D 7세대 낸드를 출시한 데 이어, 4세대 10나노(㎚·1㎚는 10억분의 1m, 4세대 10나노는 1a으로 표시) D램 양산에 성공하며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다. 극자외선(EUV) 공정 기반 4세대 10나노(1a) D램 양산도 SK하이닉스가 선수를 쳤다. 스마트폰마저 연간 출하량 3억대 수성에 실패한 뒤 매출100조·점유율 20%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양자점 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 전환,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사업 확대 등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계 일류 기술회사임을 강조해 온 것과 달리 사업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경영 전문가는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고 뉴삼성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삼성전자의 ‘다음’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면서 “현대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SK는 친환경, LG는 전장·IT 등 중장기 성장 엔진이 가동되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성장 동력을 본격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터다. 지난해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가전과 모바일·IT, 반도체로 운영되던 조직을 10년 만에 DX와 반도체로 재편하고, 각 부문 수장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특히 기술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겨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굵직한 투자에도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원 규모의 제2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결정하고 글로벌 빅테크 공략에 나섰다. 

인수합병(M&A),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등도 이전보다 적극 나설 태세다. 한종희 부회장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저희는 훨씬 빨리 뛰고 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 같다”며 “CES 행사장에서 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메타버스 등 다양한 분야를 면밀히 살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업에 제한을 두지 않고 과감한 협업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M&A는 물론,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 등 미래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한 개방적 협력이 강화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조 단위가 오가는 M&A는 총수의 교통정리가 필수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경우에 따라서는 M&A로 인해 단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사적 관점에서 수익을 맞추기 위해 사업부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며 “이를 조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가용하는 게 총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M&A가 전무했다. 주력인 반도체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나 반도체 설계 분야 전문기업을 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도체 M&A의 경우, 경쟁당국의 승인이 까다로워진 까닭에 M&A 효율성을 검토하고 한편, 경쟁당국의 승인 여부 등 변수를 고려하는 건 이 부회장의 몫이다. 

실질적인 사업 운영에서도 이 부회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일단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에 들어갈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2020년 ASML 네덜란드 본사를 찾아 최고 경영진과 만났다. 이 회동 이후 삼성전자는 EUV 물량을 다소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원가 관리 역시 이 부회장이 측면 지원을 할 수 있는 분야다. 공급망 문제가 장기화된 가운데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상승해 원가 압박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중국 공장에서 만든 반도체 등을 국내에서 후공정을 한 뒤 해외시장에 수출한다. 중국 생산망을 점검하고 현지 협력사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경영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더욱이 중국 시장은 ‘고객’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3분기까지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30%가 중국에서 나왔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보폭이 확대될 필요성이 더 커진 셈이다. 

이 부회장이 챙길 현안은 쌓였지만 오미크론 확산으로 자가격리 면제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출국이 어려워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해외 입국자에 대해 유전자증폭(PCR) 음성 확인서 기준을 48시간으로 강화하고, 입국 후 7일 격리하도록 했다. 격리 면제 조건 역시 ‘중요 사업상 목적’에 한해 허용된다. 현지 시장 파악이나 사업장 점검 등 계약 체결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경우, 자가격리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자가격리 문제로 해외 경영에 발이 묶인 총수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 기업인에 대해서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국가별로 방역에 중점을 두는 방향이 다르므로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순 없지만, 코로나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은 분명하다”며 “국내기업 상당수가 해외시장 비중을 높이고 있고, 이들의 활력이 내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기업인의 해외 경영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각 국과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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