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섬노조 엔씨소프트 지회, 10일 공식 출범
"가족 경영·수직적 관료 문화·폐쇄적 평가 문제"
게임·IT업계, 장시간 노동 강요해도 보상 불충분
2N서 노조 설립…게임업계, 확산 여부에 '촉각'

엔씨소프트 노동조합이 10일 설립됐다. 노조는 "총수 일가의 가족경영의 피해와 책임을 조직원들에게 전가했다"고 문제 삼은 만큼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 엔씨 노조 홈페이지 갈무리.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가족경영에 기반을 둔 수직 관료적 문화는 실패와 악덕을 덮었고, 그 책임과 피해를 사우에게 전가했다."

엔씨소프트(엔씨)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노조 출범과 함께 이들이 내건 핵심 의제는 '기업 경영의 실패'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엔씨는 넷마블, 넥슨과 함께 3N으로 불리며 국내 대표 게임사로 자리잡았다. 리니지라는 강력한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외형 성장과 사업 영역 확장이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을 게임과 접목하기 위한 연구투자도 활발하다. 특히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관행을 타파하고 성과보상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의 출범은 회사의 경영 전략과 방향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만 책임지나' 뿔난 직원들

10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엔씨소프트지회가 출범을 공식화했다. 지난달 단톡방을 개설하고 노조 설립을 위한 의견을 수렴한 구성원들이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지회 출범에 속도가 붙었다.

지회의 목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의하는 행복한 회사'다. 이를 줄여 별칭도 '우주정복'으로 정했다. 

지회는 출범 선언문을 통해 '경영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가족경영에 기반을 둔 수직 관료적 문화는 실패와 악덕을 덮었고, 그 책임과 피해를 직원들에게 전가했다"며 "고질적인 '상후하박' 조직문화가 회사 핵심 가치, 직원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회는 도전정신과 열정, 진정성이라는 엔씨의 3대 핵심 가치가 훼손됐다고 문제삼았다. 지회에 따르면, 정규직들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권고사직, 대기발령을 한다. 지회는 "직원들은 프로젝트에 고용된 '한시적 정규직' 같다"며 "불투명한 평가로 임원들의 끝없는 임기를 보장해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또 지회는 "직원들의 헌신은 출시와 업데이트를 볼모로 불법적인 연장근로에 동원되며 임원 승진과 보수를 위한 '아인하사드'로 소모되고 말았다"면서 "빛나는 열정은 이 선언문에 담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상명하복 조직문화, 사내 정치 안에서 시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회는 특히 내부의 병폐가 곯아가는 와중에도 경영진이 소통과 쇄신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21년 낮은 자세로 사우들의 걱정과 제안을 듣겠다던 무거운 책임감은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전제한 지회는 "폐쇄적 평가와 보상제도는 영원한 영업비밀이 됐고, 상후하박 원칙은 임금 격차 1등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가져다줬다. 소통 없는 통보, 말과 행동의 불일치, '진정성'마저 직원들의 몫"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지회는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들. 고쳐야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것들. 우리가 주인 되어 정상적인 모습으로 복구하자"고 강조했다. 

지회는 고용 안정, 수평적인 조직문화, 투명한 평가·보상체계를 사 측에 요구하는 한편, 조합원 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사진. 엔씨소프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사진. 엔씨소프트

평균 연봉 1억원의 명암

지회가 지적한 대로, 엔씨는 성장의 과실이 임원에게 집중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엔씨는 지난해 매출 2조5717원, 영업이익 5590억원, 당기순이익 6090억원을 달성했다. 이 기간 직원의 연봉 인상률은 7.6%로, 1인당 평균 1억1400만원을 수령했다. 반면 미등기 임원 78명은 한 사람당 평균 6억9400만원을 받아갔다.

특히 최고 경영진은 수십억대 이상의 고액을 받았다. 엔씨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84억원을 수령, 재계 연봉킹에 올랐던 김택진 대표는 지난해 123억8100만원을 수령했다. 직원 평균 연봉보다 108.6배 높다.

다른 등기 임원들도 고액 연봉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성구 부사장 65억3100만원, 김택헌 수석부사장(최고퍼블리싱책임자·CPO) 57억3800만원, 정진수 전 수석부사장(최고운영책임자·COO) 29억4800만원, 우원식 전 부사장(글로벌최고기술고문·CTA) 25억4000만원을 각각 받았다.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도 64억3100만원을 수령했다.

임직원 간 임금 격차가 노조 설립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리더스인텍스의 분석 결과, 지난해 국내 주요 대기업 경영진과 직원의 평균 연봉 격차는 15.5배인데,  엔씨의 격차를 이를 훨씬 웃돈다. 엔씨 직원(4789명)의 20% 가량이 지회에 참여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직원들에게는 엄격한 평가가 일부 경영진에게는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점도 문제다. 주총에서도 가족 경영에 대한 개선 요구가 제기됐다.

실제 김 대표의 배우자인 윤송이 최고전략책임자(CSO)는 2012년부터 북미 사업을 이끌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엔씨웨스트는 6년 연속 적자를 낸 것은 물론 매출 규모도 키우지 못했다. 지난해 엔씨의 북미·유럽 매출은 1650억원으로, 아시아의 4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김 대표의 동생인 김택헌 CPO 또한 경영자로서 역량에 의문부호가 달린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클렙을 지휘하며 사업 확장을 꾀했지만 현재 성적표는 초라하다. 팬 플랫폼 유니버스는 서비스 초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충성 이용자 확보에 실패, 결국 매각됐다. 그럼에도 김 CPO는 리니지2M, 리니지W 개발 총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45억원의 성과급을 챙긴 데 이어, 엔씨 아메리카 LCC 지휘봉을 잡게 됐다. 엔씨 아메리카 LCC는 향후 북미사업의 전초기지 역할 을 할 것으로 점쳐지는 회사다.  

하지만 김 대표는 "윤 CSO는 오랫동안 AI 기술 조직을 이끌어 왔고, 최근 미국서 열린 GDC에서 디지털 휴먼 기술을 발표하는 등 회사에 기여했다"며 "김 CPO 역시 모바일 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매출 증대를 주도했다"고 반박했다. 

게임·IT업체 대상 실태조사. 자료.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게임·IT업체 대상 실태조사. 자료.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고강도 노동에도 보상은 적어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2018년부터 수평적 조직문화와 명확한 성과보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포괄임금제 폐지와 크런치 모드 개선이다.

게임회사에선 신작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로 불리는 집중 근무가 다반사다. 넷마블이 '구로의 등대'라는 악명을 떨쳤던 배경에도 크런치 모드가 있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대형 게임사는 사실상 사옥 안에서 의식주가 해결되는 수준의 복지를 제공한다. 집에 갈 틈이 없을 정도로 고강도의 노동을 이어지기 때문"이라며 "신작 출시나 업데이트를 앞두면 수개월 간 야근, 밤샘근무는 밥 먹듯이 한다"고 설명했다. 

게임사들이 과중한 업무에도 평가·보상은 인색했다. 시간외근로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유지했던 탓이다. 주 52시간을 초과 근무해도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넥슨, 스마일게이트에서 노조가 만들어진 이유다. 

이후 게임업계의 관행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노조 설립까지 가는 사례는 드물었다. 엑스엘게임즈, 웹젠까지 포함해 지난해까지 노조가 설립된 게임사는 4곳에 불과했다. 중견 이하 게임사의 수가 적지 않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운 업계 특성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없게 했다. 개발자 A씨는 데일리임팩트에 "프로젝트별로 움직이는 경우가 상당한데,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오퍼를 넣기 마련"이라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다음 일감을 받기 수월하다.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귀띔 했다. 

게임업계 내부에서 자정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넥슨, 넷마블, 엔씨, 위메이드, 펄어비스, 웹젠 등이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으로 근로환경 개선을 꾀하기도 했다. 지난해 넥슨과 넷마블, 엔씨가 전담조직을 꾸려 내부 안전보건조치를 강화했다. 이와 별도로 엔씨는 주 52시간을 기준으로 월 최대 근로시간인 208시간을 초과한 직원은 회사에 들어올 수 없는 게이트오프를 도입했다. 

하지만 업계의 관행은 여전하다. 화섬노조 IT위원회가 게임·IT업체 111곳을 조사했더니, 84곳이 포괄임금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포괄임금제를 채택한 회사의 88.1%가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학연·지연·혈연 등 사적 관계로 얽힌 패밀리 문화, 소수에 집중된 성과 등으로 직원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엔씨 지회 설립을 계기로 노조 설립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정부가 주 69시간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사자 조직화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투쟁의 새 동력이 필요한 민주노총이 게임 등 IT업계의 젊은 피를 수혈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화섬노조 수도권지부 IT위원회는 "엔씨소프트지회의 출범이 장시간 노동시간과 권고사직 압박에 시달리는 게임업계의 노동환경을 개선해 갈 견인차가 될 것"이라며 지지를 표명했다.  IT위원회에는 네이버지회, 카카오지회, 넥슨지회, 스마일게이트지회, 웹젠지회, 한글과컴퓨터지회, 포스코ICT지회, LIG넥스원지회 등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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