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선사업부 직원들이 해군 기밀 자료 촬영 후 사내 공유
방사청, 2025년 11월까지 감점 적용…권익위에 민원냈지만
“방위산업, 국가안보와 직결…보안 위반 엄중 제재 필요” 판단
입찰 조건 변경 등 의혹 제기…방사청 수주 사실상 막힐수도

한화오션이 전시한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모형.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전시한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모형. /사진=한화오션.

[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HD현대중공업이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건조 사업 입찰 참여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KDDX는 대한민국 해군과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추진하는 경하 배수량 7100톤급 국산 구축함이다. 선체부터 전투체계, 각종 무장 등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될 예정인 ‘한국형 미니 이지스함’으로 총사업비만 무려 7조8000억원에 달한다. 방사청은 오는 2030년까지 6000톤급 6척을 발주할 예정인데, 올해의 경우 1조원 이상의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 입찰을 앞두고 있다. 대형 계약인 만큼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은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다만 HD현대중공업은 11년 전 보안사고로 인해 수주전에서 불리한 위치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게다가 방사청이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어, 수주 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2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권익위는 지난 21일 HD현대중공업이 제출한 고충 민원에 대한 기각 의결서를 발송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14일 해군 차기 호위함인 울산급 배치3(Batch Ⅲ) 5·6번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경쟁업체인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선정되자 이에 불복,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신청했었다. 

HD현대중공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는 보안사고로 감점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직원 9명이 KDDX를 포함한 해군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해 이를 회사 내부망에 공유, 검찰로부터 유죄 판정을 받았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으로부터 보안사고를 이유로 감점 1.8점을 적용받았다. 

방사청의 함정산업 제안서 평가는 대부분 1점 미만으로 당락이 결정된다. 2점 가까이 점수가 깎이면 입찰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에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점수 차이는 불과 0.1422점이었다. 

문제는 감점 적용이 내년 11월까지 유지된다는 점이다. 최소 2년 동안은 방사청 수주전에서 불리한 위치를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8월 법원에도 해당 결정에 불복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당했다.

그러자 방사청의 계약심의위원회를 앞두고 HD현대중공업은 감점 적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제출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HD현대중공업에 적용되는 기존 보안사고 감점 기준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지 않고 소급입법에도 해당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과도하거나 불합리하지도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의 보안사고 감점 기준이 과하며, 입찰이 제한되면 함정 사업의 독점으로 해군력이 약화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권익위는 “방위산업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항인 만큼 보안의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엄중한 제재가 필요하다”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 2023년 6월 마덱스에서 한화오션이 전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왼쪽 첫 번째)과 울산급 배치-Ⅲ(FFX, 왼쪽 두 번째), 합동화력함(왼쪽 세 번째) 모형. 사진=한화오션
지난 2023년 6월 마덱스에서 한화오션이 전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왼쪽 첫 번째)과 울산급 배치-Ⅲ(FFX, 왼쪽 두 번째), 합동화력함(왼쪽 세 번째) 모형. 사진=한화오션

권익위의 고충 민원 기각으로 HD현대중공업의 수주 전선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방사청이 계약심의위원회를 진행하면서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부정당 단체로 지정하는 것은 물론, 최대 5년까지 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도 시야에 넣고 있다. 방위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군사기밀(Ⅱ·Ⅲ급)을 불법으로 탐지·수집하거나 청렴 서약을 위반했을 경우 5년간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2013년 유출됐던 KDDX 도면의 경우 Ⅲ급 군사기밀에 해당한다.

최근 방위사업청 고위 간부가 지난 2020년 5월 KDDX 사업 기본설계 입찰 직전 HD현대중공업(당시 현대중공업)에 유리하게 입찰 조건을 바꿨다는 의혹이 불거진 점도 악재다. 해당 입찰에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0.056점 차이로 제치고 선정됐다.

경찰은 현대중공업이 기밀 자료를 외부 서버에 관리하는 과정에서 외부업체와 당시 현대중공업 임원이 계약한 자료 등을 확보해 임원 등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최근 왕정홍 전 방위산업청장의 경우 직권을 남용해 방사청의 벌점제도를 변경하도록 외압을 가하고 입찰을 방해한 혐의로 입건됐다. 

HD현대중공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화오션은 의혹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울산지검에 KDDX 관련 수사기록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라며 “수사 자료를 통해 현대중공업 임원 관여 여부를 따져 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방사청 최고위급 간부와 당시 현대중공업 임원이 관여한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HD현대중공업은 국내 방위산업 관련 수주에서 기회를 잡기 어려워진다. 방사청 입찰 참여 제한을 물론, 그간 수주했던 계약 역시 해지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일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수주 공백 장기화를 메우기 위해 특수선 수입에 의존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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