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신규 채용 약속…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5대 그룹 포함

직접 채용 규모, 28만7000명…고용 유발 효과 수 백만명 전망

정부 지원 차원의 고용, 선순환 효과 불분명…‘생색내기‘ 지적도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늘어난 경영 부담에 신규 채용 위축 우려

국대 주요그룹이 29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데일리임팩트
국대 주요그룹이 29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데일리임팩트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국내 주요 그룹들이 향후 5년 간 최소 29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위축된 국내 고용시장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실현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고용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교롭게 그룹들의 고용 약속이 쏟아지던 날 대법원이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근거로 월급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내 대기업들 상당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태다. 신규 일자리 창출과 고용 유지 양쪽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일자리의 수만 맞추는 ‘형식적 호응’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5일과 26일 이틀 사이 주요 그룹들은 경쟁적으로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SK·현대차·LG·롯데·포스코·한화·GS·현대중공업·신세계·두산까지 계획을 확정한 그룹은 11곳에 달한다. 

이들이 확정한 국내외 투자액은 1060조6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607조원)보다 400조원 이상 많고,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2057조4478억원)의 약 52%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투자액의 87% 가량은 국내에 투입되는 만큼 ‘민간이 끌고 정부가 지원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구상에 확실히 힘을 실어주겠다는 화답으로 해석된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원 수를 적시한 경우만 헤아려도 전체 채용 규모는 28만7000명에 이른다. 스타트업 육성, 협력사를 비롯한 관련업계 지원에 따른 고용 유발 효과까지 고려하면 직·간접 고용 효과는 수 백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고용시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비금융업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874곳 직원 수는148만3000명으로 2019년(149만7000명)보다 1만4000명 적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은 체급을 줄여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전경련 조사 결과, 상장사 10곳 중 3곳(26.7%·500개사)은 2년 연속으로 직원 수가 줄었다. 2019년(50만8000명)과 비교해 7만2000명이 감소했다. 고용인원이 감축됐다는 건 ‘최후의 방법’을 꺼내들 정도로 기업의 경영상황이 어려웠다는 뜻이다. 조사 대상 상장사의 11.2%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하락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악화된 것이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 세계적인 공급망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같은 악재가 겹쳐 경영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대기업들이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계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고용은 시장상황과 연동돼 움직이기 때문에 ‘~안에 O만명’처럼 예단해 구체적 수치를 내놓기 어렵다”면서 “새 정부 출범 초기 힘을 실어줘 혹여 있을지 모를 ‘외풍’을 막자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영계에서는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는 시각이 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차를 맞아 9개 그룹이 421조원 투자·26만5000명 채용을 약속했었다. 당시 삼성은 3년 간 4만명 채용을 약속한 뒤 지난해 목표치를 달성했다. 신규 채용 규모가 컸음에도 전체 임직원 수가 극적으로 늘지 않았다. 신규 채용한 만큼 인력 조정이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일례로 삼성의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는 2018년 10만3011명에서 2020년 10만9490명으로 약 6400여명 증가했다. 그룹들이 인력 재배치와 같은 중·단기 경영계획에 따라 ‘예정된’ 채용을 묶어서 발표한 뒤 ‘생색’을 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용의 질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까지 두고 청년 일자리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히면서 9개 그룹이 연이어 고용안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 선순환에 긍정적 역할을 기대했다. 실제 지표만 보면 상황은 개선된 듯 보였다. 5년 간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127만개에 달했다. 

다만 일자리의 양과 질은 비례하지 못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국 15세 이상 일반 취업자 수는 2017년 2672만5000명에서 2021년 2727만3000명으로 5년 동안 54만8000명 증가했다. 이 기간 주 40시간 풀타임 취업자를 의미하는 전일제 환산(FTE) 취업자 수는 2017년 2859만6000명에서 2021년 2652만3000명으로 5년 사이 207만3000명 줄었다. 

전일제 환산 방식(FTE)은 주 40시간 일한 사람을 취업자 1명으로 보고 계산하는 고용지표다. 주 20시간 일한 사람은 0.5명, 주 60시간 이상 일한 사람은 1.5명으로 계산한다. 주 20시간 일한 사람과 주 40시간 일한 사람을 똑같이 1명으로 보는 일반 고용률보다 고용 상황을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1995년 이후 FTE 고용률을 일반 고용률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 수 중가에도 FTE 취업자 감소폭이 더 크다는 건 주 40시간 미만 일자리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FTE 고용률은 문재인 정부 5년 간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2018년 63.0%에서 내려가던 지표는 2020년 58.6%, 2021년 58.8%를 기록하며 2년 연속 50%대에 머물렀다. FTE 고용률이 50%대로 내려간 것은 통계 분석을 시작한 1981년 이후 처음이다. 

일반 고용률과 FTE 고용률이 역전되는 현상도 발생했다. 1981년 이래 최초다. 15∼29세 일반 고용률은 2018년 42.7%에서 2021년 44.2%로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FTE 고용률은 41.8%에서 40.9%로 하락했다. 60세 이상에서도 일반 고용률이 2015년 39.0%에서 2021년 42.9%로 상승한 반면 FTE 고용률은 38.2%에서 37.1%로 하락했다. 일반 고용률과 FTE 고용률 격차가 5.8%포인트까지 벌어진 것은 단기 노인 일자리가 대폭 늘었음을 시사한다. 일자리의 수를 늘리는 데 치중해 선순환 효과를 일으킬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규 채용에 영향을 줄 돌발 변수까지 발생했다. 대법원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인건비를 경감해 온 기업들은 경영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재계에서는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기업 노조들이 단체협약 개정을 요구할 것으로 본다. 회사와의 협상이 틀어질 경우, 대법원 판결을 명분 삼아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특히 채용을 확정한 그룹 중에는 임금피크제를 이미 시행 중인 곳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는 만 57세부터 연 5%, 현대차는 만 60세에 10% 삭감한다. LG그룹도 만 58세부터 연 10% 가량 임금을 줄인다. 노동계가 임금피크제 무효화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룹들이 실제 신규 채용이 얼마나 활발히 진행될지 미지수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 증대를 고려해야 할 때, 일자리를 새로 만들고 지켜야 할 상황에 놓였다”면서 “일단 신규 채용에 영향을 줄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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