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시장 점유율 50% 확보…독주 체제 굳혔지만
삼성·마이크론, HBM3E 대열 합류…경쟁 본격화
생산력 확대 기반으로 시장 지배력 강화 필요성
웨스턴디지털 합병 반대로 양사 관계 껄끄러워져
"상호 윈-윈 가능하지만…실제 협업 성사는 쉽지 않을 듯"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회사 전경. /사진=SK하이닉스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동맹을 맺을까.

SK하이닉스는 현재 HBM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으로 기업들이 서버 등 관련 인프라 구축 속도를 올리면서 HBM 수요가 폭증했다.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뒤 10년여 간 투자를 지속했던 SK하이닉스는 덕분에 '만년 2위' 설움을 벗고 HBM 주도권을 쥐었다.

다만 SK하이닉스 천하가 계속될지 미지수다. 삼성전자가 고용량 HBM3E 개발을 마치고 고객사에 샘플 공급을 시작했고, 마이크론은 가장 먼저 HBM3E 양산을 시작했다. SK하이닉스가 경쟁사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선 시장 지배력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회사는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키옥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6일 외신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와 협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지지통신은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에 협업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미에현 요카이치, 이와테현 키타카미에 위치한 키옥시아 공장을 HBM 생산라인으로 활용하자는 게 SK하이닉스의 제안이었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협업을 제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양사의 특수한 관계가 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SI(전략적 투자자)다. 지난 2017년 일본 도시바가 누적된 적자로 낸드플래시 메모리 사업부를 키옥시아로 분사시키자, 미국 대형 사모투자펀드인 베인케피탈을 중심으로 한미일 컨소시엄이 꾸려졌다. SK하이닉스는 이 컨소시엄에 참여해 약 4조원을 투자했다.

SK하이닉스가 확보한 키옥시아 지분은 2가지 용도로 나뉜다. 3분의 2는 베인케피탈의 재무적투자자(LP)로 확보한 것으로 매각을 염두했다. 나머지 3분의 1은 중장기적 협업 관계를 위한 전략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사업부 인수 후 매각설이 돌 때마다 '키옥시아 투자금을 회수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도 키옥시아 지분을 들고 있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양사 모두 윈-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협업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HBM은 일반 D램보다 6배 이상 가격이 높다. 지난해 영업손실이 2500억엔(약 2조 3000억원)에 달했던 키옥시아로선 수익성을 꾀할 수 있다.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HBM으로 전환하면 첨단 반도체 기술력도 확보 가능하다.

SK하이닉스 역시 손해볼 게 없는 딜이다. 반도체 한파로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적자는 7조7303억원에 달했다. 이에 올해 안정적 운영을 최우선하기로 하고, 투자비용 증가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HBM과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인 TSV 투자를 늘리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키옥시아의 공장을 활용하면 증설 없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HBM은 대용량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 AI 서버에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필수적으로 탑재된다. AI 서버 시장은 향후 5년간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AI 관련 산업 생태계 참여자가 급격히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예상보다 더 빠르게 AI 서버 시장이 개화할 수 있다. 이에 HBM 시장은 연평균 60~80%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폭발적 성장세가 본격화 돼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의 비중이 10% 중후반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HBM 바람의 수혜자는 SK하이닉스였다. 지난해 HBM3 매출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물량은 지난해 3분기 이미 완판됐고, 고객사의 요청에 내년 양산분에 대한 추가 공급을 논의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이로 인해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의 50%를 확보할 수 있었다. 

HBM 제품 전환 속도가 매우 빠른 점을 고려해 전열도 정비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사장급 조직인 AI 인프라를 세우고 부문별로 흩어져 있던 HBM 역량을 결집시켰다. AI 인프라  조직 아래 HBM 비즈니스, AI 앤 넥스트 조직을 신설하고 기존 GSM(글로벌 세일즈 앤 마케팅) 조직을 같이 편제했다. 특히 AI 앤 넥스트는 GSM를 총괄했던 김주선 사장이 직접 관리한다. 차세대 HBM 기술 확보와 고객사 발굴을 동시에 진행해 시장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GPU를 선점한 엔비디아와 손잡으면서 HBM 시장에서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세대 제품인 HBM3 샘플을 엔비디아 측에 넘겼고, 최근 성능 검증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5세대인 HBM3E 12단 초기 샘플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HBM3뿐 아니라 HBM3E까지 내년도 생산능력이 현시점 기준으로 이미 솔드아웃 됐다. 상당수의 고객, 잠재 고객들과 프라이머리 벤더(주요 공급자)로서 2025년까지 추가 공급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양산 품질, 성능 등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환경"이라고 자신했다.

HBM3E 샘플. /사진=SK하이닉스.
HBM3E 샘플. /사진=SK하이닉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독주체제가 계속될 수 있을진 불확실하다. 경쟁사들의 기술 진화 속도는 무섭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36GB HBM3E 개발을 마치고 상반기 양산에 들어간다. 조만간 양산을 앞둔 SK하이닉스의 HBM3E는 8단(24GB)인 데 반해 삼성전자는 12단까지 적층시켜 성능과 용량 모두 50% 이상 개선했다.

게다가 Advanced TC NCF(열압착 비전도성 접착 필름) 기술을 적용해 HBM 적층수를 늘리고, 칩 두께가 얇아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휘어짐 현상'을 최소화 헸다. 또 NCF 소재 두께를 얇게 만들어 D램  간격을 7마이크로미터(um)까지 줄였다. 크기가 다른 범프를 장착해 열 득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수율도 극대화했다. 8단 제품과 동일한 높이에 더 강력한 성능을 갖춘 만큼, 엔비디아의 러브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8단 HBM3E 양산에 들어갔다. 이 제품은 엔비디아의 H200에 들어갈 예정이다. 24GB 8단으로 SK하이닉스와 동일한 용량이지만, 전력 효율면에서 더 개선괬다. 최선단 10나노급(1b) D램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경쟁사 대비  전력 효율이 30% 향상돼 데이터센터 운용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AI 설비 운영부담을 줄이려는 기업들을 적극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HBM3E를 앞세워 시장에 파고든다면 점유율도 달라질 수 있다. HBM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40%, 마이크론 10% 가량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빅테크를 집중 공략할 요량이다. 100여명에 달하는 엔지니어를 투입, HBM3E 조기 양산을 꾀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직접 움직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 경영자(CEO)와 만나 HBM 공급 방안을 논의했다. 엔비디아의 주문까지 확보하면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역전도 노릴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공급 안정성과 비용 절감을 원하는 엔비디아가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할 수 있다"며 "SK하이닉스의 독점 구조가 깨진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HBM 시장 지배력 제고다. 키옥시아 협력설이 나오는 이유다. 곽노정 사장도 "키옥시아와 협력은 언제든 열려 있다. 우리와 키옥시아 간 윈윈을 위해 협력할 좋은 방안이 있다면 언제든 고민할 수 있다"고 밝힌 적 있다. 

단, 키옥시아와의 HBM 동맹이 현실화되기엔 양사간 앙금이 남았다는 게 문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키옥시아 키타가미 공장 남는 부지에 TSV 라인을 세우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으나 키옥시아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웨스턴디지털(WD)과 합병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WD은 지난 2021년부터 키옥시아 인수를 타진해왔다. 지분 가치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됐던 협상은 지난해 초 재개됐다. WD의 낸드 사업을 분리, 키옥시아홀딩스와 지주회사를 설립해 경영 통합을 하기로 하고 협상이 이어졌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경쟁사이기 때문에 간접적 지분을 갖고 있어도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합병만은 달랐다. SK하이닉스 투자금 중 1조3000억원은 전환사채(CB)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동의하지 않으면 합병은 불가능하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키옥시아와 WD의 합병을 두고 당사가 투자한 자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해당 딜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았다. 곽 사장 역시 '투자자 입장에서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산 가치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합병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결국 WD이 키옥시아에 협상 중단을 통보하면서 합병은 무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WD, 키옥시아간 합병 논의가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몸집을 불리면 키옥시아는 낸드 시장 변동성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더욱이 양사의 협력은 긴밀하게 지속되고 있다. 키옥시아, WD는 총 7290억엔(약 6조5000억원)을 투자해 일본 공장 2곳에 8세대, 9세대 메모리 생산 라인을 신설하기로 했다.

키옥시아와 WD이 합병하면 낸드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낸드 점유율은 삼성전자 36.6%,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 21.6%, WD 14.5%, 키옥시아 12.6%다. WD와 키옥시아의 합산 점유율은 27.1%로 SK하이닉스를 5.5%포인트 앞선다. 10조 빅딜을 추진하면서까지 낸드 사업 의지를 드러냈던 SK하이닉스가 합병에 찬성할 리 만무하다. 키옥시아가 SK하이닉스와의 협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협력이 더 절실한 쪽은 SK하이닉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키옥시아가 재기에 실패하면, 일본은 낸드 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정부 차원에서 키옥시아 지키기에 나설 수 있단 뜻이다. 아사히신문은 이와 관련, '니시무라 야스토시 당시 일본 경제산업상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한국 정부 등이 함께 합병을 위해 SK하이닉스를 설득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술 생태계가 잘 구축돼 있고, 정부의 대규모 지원까지 받을 수 있어 키옥시아와 협력은 이점이 많다"면서 "그렇지만 양사의 불편한 관계를 고려하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키옥시아는 일본 반도체의 자존심이다. 자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꿈꾸는 일본 정부는 키옥시아를 존립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SK하이닉스가 입장을 바꿔 합병에 찬성하지 않는 한 키옥시아와 동맹은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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