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먼저였다. 2021년 시작해서 1년 반에 걸쳐 3%포인트 올라 현재 3.5%이다. 반년쯤 늦게, 우리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 오르기 시작한 미국의 금리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4%포인트 넘게 오르며 현재 4.5% 수준에 와 있다. 한은은 물가와 더불어 경기 부진 우려에 지난달 금리 인상을 멈추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금리 차가 벌어지는 것에 민감한 데 그곳 금리 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니 고민이 깊어진다. 미국 연지준의 향후 결정에 영향을 미칠 뉴스 두 건의 시사점을 생각해본다.

      빠른 금리 인상의 부작용, SVB의 파산

지난 금요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실리콘밸리은행, SVB) 파산 소식에 미국 금융시장이 출렁했다. 지나친 위험 감수나 임직원 불법과 같은 원인 때문이 아니라 금리가 빠르게 오른 것이 치명적 삼각파도로 작용했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해 지역의 하이텍 벤처기업들과의 거래가 커지며 빠르게 성장한 SVB는 개인 고객보다는 법인고객(기업)의 예금(즉, 부채)에 의존해서 자금을 조달했다. 은행은 이렇게 조달된 자금을 운용(즉, 대출이나 채권 등의 자산 보유)해 수익을 낸다. 이 은행은 예금으로 조달된 자금을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자산인 미국의 장기국채 등에 투자하며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했다.

미국의 금리가 오르기 시작한 2022년 초 이전 시중 금리가 매우 낮았다. 때문에 장기 국채로 얻는 수익률이 낮아도 예금금리보다는 높았기에 은행은 수익을 냈다. 하지만 금리가 빠르게 오르자 SVB에 예금했던 기업들이 은행예금보다 금리가 높은 상품으로 이탈하며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보유한 장기 채권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손실을 보며 처분해야 했고 이런 추세가 가팔라지며 손실이 커지자 감독 당국이 개입하여 영업을 정지시키고 파산 처리에 들어갔다.

미국 내 유사한 처지의 일부 중견 은행들이 있다고 하나 대형 은행들은 부채와 자산구조가 다변화되어 있어 SVB와는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2008년 금융시스템 전체가 동파되었던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하지만 자산규모가 미국 내 16위의 건실해 보였던 은행의 파산은 무시하지 못할 충격이다. 예금보험이 보장해주는 규모(25만 달러)보다 더 많은 자금을 예치했던 벤처기업들의 피해가 크다는 우려에 당국의 추가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비자물가·임금상승률 경주하듯 상승

SVB파산은 금리가 오른 것에 더해 그 속도가 가팔랐던 게 문제였다. 왜 그렇게 서둘까?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이 향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 잡으면 근로자들이 이에 상응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된다. 소비자물가와 임금 간의 악순환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의 그림은 미국의 소비자물가(빨간 선)와 명목임금(검정 선)이 2015년 1월부터 2023년 1월(소비자물가)와 2월(명목임금)까지 두 변수가 1년 전에 비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여준다. 종축은 퍼센트로 나타낸 증가율, 횡축은 시간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올 1월에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작년 1월에 비해 6.4% 올랐고, 2월 임금은 전년 동월에 비해 4.6% 증가했다. 

소비자물가(CPI)와 평균임금 증가율 추이(2015년 1월~2023년 2월). 그림에 사용된 자료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이며 임금은 시간당 평균 수입(average hourly earnings)이다.   .  
소비자물가(CPI)와 평균임금 증가율 추이(2015년 1월~2023년 2월). 그림에 사용된 자료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이며 임금은 시간당 평균 수입(average hourly earnings)이다.   .  

소비자물가(CPI)와 임금은 대체로 같이 움직인다. 물가가 오르면 생활비가 비싸지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반대로 노무비가 전체 생산비의 큰 부분이어서 임금이 높으면 물건값이 올라 소비자물가가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의 두 변수는 길게 보면 2019년 초까지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2020년 팬데믹 기간 천방지축으로 바뀌기 이전 임금은 매년 대략 3%, 소비자물가는 2% 정도 증가세를 보였다. 2021년 중반부터 CPI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임금상승률을 앞질렀다. 그 후 전자는 하락하고 있으나 후자는 계속 오르는 모습이다.

통화정책 당국은 현 상황을 가능한 한 빨리 종식시키고 싶어 한다. 소비자물가와 임금상승률이 너무 높아서 지금 수준에서 상호작용이 시작되면 물가 불안이 장기화될 개연성이 크다. 연지준의 공식적 목표는 CPI 인플레이션을 2021년 이전과 같이 2%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 소비자물가와 임금 사이 상호 인과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가는 임금 외의 원인들로 인해 올랐다. 임금은 팬데믹이 진정되면서 고용사정이 빠르게 개선되어 구인난이 이어져서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쌍둥이 상승세가 이어지면 인플레이션이 높이 지속되었던 1970년대처럼 고물가와 고임금은 서로에게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이것이 연지준 파월 의장의 최악의 악몽이다. 이를 막기 위해 무리해 보일 만큼 가파른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이러 와중에 SVB 파산은 빠른 금리 인상의 쓰린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린 격이다. 하지만 아직 금융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여 필요한 구제조치를 취하며 금리 인상 행보를 이어갈 것이다. 지난달 금리를 동결했던 한국은행은 다시 또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되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