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데일리임팩트 민경보 논설위원] 국제사회가 더는 두고볼 수 없다며 80개국이 넘게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나라 ‘탄소중립위원회’는 8월 5일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으나, 언론·NGO·경제단체는 비판일색인 데다 심지어 영국 시나리오를 베꼈다고 무안을 주었다.

정책이라는 것이 좋은 것은 베끼고 다듬질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법은 일본 법을 거의 그렇게 했고, 일본은 독일 법을 그렇게 했다. 그러지 않은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일로 얼굴 붉히지 말고, 벤치마킹했다면 어떨까 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내놓은 대안은 숫자 크기만 달랐지 특별한 건 없었다. 그보다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최대공약수를 찾아 ‘2030로드맵’을 충실하게 완성해야만 한다.

2017년을 기준으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4.4% 감축하겠다고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했으나 1년도 지나지 않아 EU, 미국 등이 ‘IPCC1.5℃ 특별보고서’를 근거로 상향된 NDC(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7월 14일 EU는 ‘Fit for 55’(1990년 기준 2030년 55% 감축)를 발표하면서, 미국(51.1%)을 비롯한 이름깨나 있는 나라가 너도나도 더 높아진 감축안을 내놓게 됐는데, 우리는 아직이다. 하는 짓들을 보면 탄소 감축을 놓고 하는 무슨 경매장 같지만, 기후변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경제환경이다. 더구나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노골적인 무역장벽을 쌓으려고 한다.

이러는 와중에 8월 18일 한밤중 여당 단독으로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통과시킨 ‘탄소중립기본법안(‘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24일 법사위를 거쳐 31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간 ‘탄소중립위원회(5월 29일 출범 당시 명칭)’ 민간 공동위원장인 윤순진 서울대 교수(정부측 위원장은 국무총리)는 탄소중립 관련 법안이 국회 환노위에 머물러 있어 근거 법 없는 위원회 운영(현재 대통령령)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윤 교수는 법이 계류 중인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환노위에 제출된 ‘탄소중립 관련 법안’이 무려 8개나 되지만, 그중 정부 입법안은 없었다. 이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은 폐지된다. 그렇게 근거 법 타령을 한 위원회는 법안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이나 주장을 그간 왜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법 제정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이 법의 성격은 규제법인 만큼 토론에 토론을 거듭해서 정권이 바뀌어도 건재할 법을 만들자.”라고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민간 위원장이 오히려 법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말이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개명한 주최 측은 산업계의 고민이 예상을 넘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간 산업계에 탄소 저감에 대한 압박은 있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NDC가 거듭 상향되는 멀미나는 상황을 보면서 당국은 한 번도 진지하게 산업계와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 모르긴 하지만 지금의 산업계는 국내 생산량을 줄이거나 해외 이전밖에 달리 뾰족한 방안이 없을 것이다. 위원회는 탄소감축 목표치 제시만 하지 말고 우리 산업의 특수성을 살펴서 다양한 감축 방법론을 연구해보자며 산업계를 껴안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한다.

정부는 아직 발표하지 못한 2030년 감축안을 11월에 열리는 COP26(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시해야만 하는 숙제가 있다. 법안에서 목표하고 있는 35% 감축안으로 어떻게 설득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으나, 환경부 차관이 30%안을 주장했다는 ‘법안심사 회의록’을 보면 위원회의 앞날이 걱정된다. 법사위의 어느 의원이 “위원회의 성격이나 위치가 독립위원회(금융위, 공정위처럼)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탄소중립은 이 시대는 물론 미래세대가 먹고사는 문제이다. 촘촘히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영국은 2035년에 내연기관 자동차(휘발유, 경유, 하이브리드)를 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부터 몇 % 줄이겠다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줄이겠다는 목표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에게 알아듣게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는 위원회가 돼야 한다.

탄소중립의 실체는 에너지 전환이다. 화석에너지(석탄, LNG)를 멈추게 하면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만 남게 되는데, 원전을 멈추라고 여당과 환경단체가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마저 스톱시키면 우리 산업은 급격히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온실가스의 부문별 배출현황은 나라마다 산업구조에 따라 다르므로 협정 이행을 위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협정조항이 있다. 그러기에 정치 프레임이 배제된, 오로지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틀에서 국가 총에너지를 다시 점검하고, 기후변화 외교협상력도 키워야 한다.

입으로는 탄소중립을 외치면서 신도시·신공항·신도로를 건설하고 계획하는 정치권력은 이를 녹색성장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법 제정 이전에 결정된 것이라고 우길 것이다. 앞으로 녹색성장이 탄소중립과 부단히 타협하려 할 텐데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큰 숙제다.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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