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제한' 50년 만기 주담대로 인한 세대 간 갈등 증폭
이미 ‘빚투 채무 탕감’ 등 청년 정책, 역차별 논란 촉발하기도
"청년 위주 정책에 건전성 악화 우려, 실효적 대안 찾아야"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 사진=DB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 사진=DB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최근 대출 시장을 둘러싼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가 세대별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약계층 지원, 리스크 관리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에도, 은행 영업 현장에서는 역차별을 호소하는 대출 차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며 우려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실제로 정권 출범 초, 금융당국은 청년층에 치우진 각종 금융정책으로 인해 소위 ‘모럴헤저드(도덕적해이)’ 이슈를 자초한 바 있다. 여기에 최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가입에 나이 제한을 두는 방안을 당국 차원에서 검토 중인 것이 알려지며 4050세대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이같은 금융당국의 정책 결정이 실질적인 가계부채 관리보다는 오히려 역차별 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단고 지적한다.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혼란 더하는 주담대 ‘나이 제한 조치’

2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현재 최장 50년 만기의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공급 중인 대다수 시중은행들은 해당 상품의 나이 제한 및 공급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당장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50년 만기 주담대를 도입한 NH농협은행이 다음 주 중 상품 공급을 잠정 중단한다. NH농협은행 측은 “내부적으로 설정한 한도(2조원)가 이달 말쯤에는 거의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한도 소진 이후, 판매 재개 여부는 일단 상황을 봐가며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오는 28일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잠정 중단할 것으로 알려진 BNK경남은행뿐 아니라 일부 시중은행들도 현재 관련 상품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현재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공급 중단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다만, 기존 40년 만기를 10년 늘려 공급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대출 취급이 중단이 아닌, 만기를 줄여 실수요자들에게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상당수 은행은 50년 만기 주담대 공급을 중단하기보단, 나이 제한을 두는 방안에 보다 무게를 싣고 있다. 대출 공급 축소가 자칫 최근 다시 꿈틀대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다시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침체된 시장의 활성화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은행권의 입장에선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은행권 역시 자금 공급을 통한 지원사격에 나서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여전하다.

이미 만 34세 이하만 신청할 수 있도록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신한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은행들은 현재 나이 제한 조치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정책금융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이 이미 만 34세 이하 차주에게만 공급되고 있는 만큼, 나이 제한에 큰 거부감은 없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상품을 대상으로 나이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은행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및 주담대 현황. / 디자인=김민영 기자.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및 주담대 현황. / 디자인=김민영 기자.

50년 주담대로 촉발된 ‘역차별 논란’

한편, 이 같은 은행권 내 움직임에 차주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실제로 50년 만기 주담대 공급이 시작된 지난 7월 한 달간, 우리은행을 제외한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의 50년 만기 주담대 공급 규모는 1조2000억원 수준에 달했다. 은행업계에서는 이달 공급 규모까지 합산할 경우, 두 달간 50년 만기 주담대 공급 규모는 2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담대의 나이 제한 결정이 역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연체율과 같은 건전성 악화 우려가 있는 젊은 층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면서도, 오히려 상환능력이 충분하고 연체율도 낮은 4050세대의 내 집 마련 기회는 정부가 오히려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40대와 50대의 주담대 연체율은 각각 0.21%와 0.20%로 집계됐다. 반면, 2030세대의 주담대 연체율은 평균 0.31%로 4050세대의 평균 연체율(0.205%)보다 0.1%p 가량 높았다.

한국은행도 이같은 2030세대의 부실 대출 문제가 전체 대출 시장의 건전성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한은 측은 “지난 2020년 이후 취급된 가계대출 가운데 2030세대의 차주 비중이 과거보다 높은 점이 눈에 띈다”며 “여기에 같은 기간 가파르게 상승한 가계대출 연체율 악화 또한 이같은 취약 차주 급증과 무관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은행 영업점 현장에서는 나이 제한 조치가 확대되기 전에 주담대를 받으려는 4050세대의 문의 또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내 집 마련을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를 신규 집행한 고동진(42) 씨는 “적당한 매물이 있어 50년 만기 상품으로 대출을 받아 이를 매입했다”며 “이전 대비 금리는 다소 올랐지만, 차주들의 입장에선 월 상환액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50년 만기 상품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내년쯤 주택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박도윤(43)씨는 “솔직히 대출 만기가 50년이라 하더라도 누가 50년간 원리금을 상환하며 주담대를 이용하느냐”며 “마치 젊은 세대만 바라보며 정책을 펼치는 것 같아 40대의 입장에선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간 금융당국이 내놓은 일부 정책은 세대 간 역차별 논란을 야기한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그간 금융당국이 내놓은 일부 정책은 세대 간 역차별 논란을 야기한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갈등 자초한 당국, 정교한 정책 필요해

문제는 이 같은 당국 발 금융정책으로 촉발된 세대 간 차별 논란이 비단 이번뿐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나친 채무로 재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청년 부실 차주들을 위한 이자 금리 감면 등의 지원방안을 담은 ‘청년 특례 채무 조정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도입 이후 ‘가상화폐’ 등 투기성 자산에 사용된 자금까지 변제해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특정 연령대만 우대한다는 역차별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특히, 이 같은 기조는 금융당국을 넘어 은행업권으로까지 확산하기도 했다. 실제 주요 시중은행들은 청년층의 △주거 및 생활안정 △자산증대 △청년 사업가 재기 지원 등을 돕겠다며 수십조원의 재원을 활용한 청년 맞춤형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당시에도 이같은 논란에 대해 금융당국에서는 “세대별 역차별 논란을 인지하고 있다”며 “논란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책을 가다듬을 계획”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다만, 이후에도 세대 간 역차별 논란을 해소할 별다른 조치는 사실상 전무했다는 것이 금융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당장 이번 주담대 나이 제한 조치가 역차별 등 논란만 가중할 뿐, 실질적인 가계부채 관리에 별다른 도움을 주진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 내 공통된 시각”이라며 “DSR 산정 만기 조정, 추가적인 정책상품 공급 개발 등의 다른 조치를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실효성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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