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2월이 이사철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3월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이 집 저 집 이사가 한창이다. 이삿짐센터 로고가 선명한 대형 트럭들이 고층 사다리 세워놓고 부지런히 이삿짐 부리는 모습이 빈번하게 눈에 뜨인다. 우리도 전세로 살고 있던 집(아파트)의 주인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이삿날 아침, ‘이사 가던 날 뒷집아이 돌이는… 장독대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1976년 발표된 산이슬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노라니, 문득 골목도 모르는 요즘 아이들이 장독대는 알려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네 삶을 속속들이 바꿔 놓은 아파트의 위력에 새삼 감탄하면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연보다는 너나없이 아파트 가격의 등락(登落)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현실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먼저 집주인은 2년 전 자기 소유의 성동구 행당동 아파트를 전세 놓고 강남구 도곡동에 전세를 얻어 이사를 나갔다. 물론 하나뿐인 딸 교육을 위해서라 했다. 딸이 재수를 원하면 전세 계약을 연장하려 했지만, 합격한 대학을 그냥 다니겠다고 해서 2년 만에 또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실은 딸도 딸이지만 도곡동 전세금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 강북 리턴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삿날 전세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집주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집 크기를 대폭 줄여가 이삿짐의 거의 절반을 버린 덕분에 이사 나갈 때는 5톤 트럭 2대가 왔었지만 돌아올 때는 1대로 충분했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번에 새로 이사한 집주인 역시 자녀 교육 때문에 행당동을 떠나 강남구 청담동으로 간다고 했다. 집주인은 젊은 맞벌이 부부로 큰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둘째아들이 유치원을 다닌다 했다. “은행 대출 끼고 무리를 해서 아파트를 사긴 했는데,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강북을 떠나야 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 판단이 100% 옳은지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강북 아파트 팔고 남아 있던 은행 빚 갚고 나니 강남 아파트 전세도 가까스로 해결했다며, 이들 부부도 멋쩍게 웃었다.

송복 전 연세대 교수는 2003년 발표한 역작 ‘한국사회의 갈등구조’에서 한국사회 특유의 갈등을 유발하는 주 요인의 하나로 잦은 이사를 꼽았다. 한국인은 노마드 사회적 특성이 강한 미국보다 이사 다니는 빈도가 2~3배 높다는 것이다. 같은 동네 안에서 집을 옮기는 경우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실제 이사 빈도는 더욱 높을 것이라 했다. 끊임없이 옮겨 다녀야 하는 삶 속에서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낯선 타인으로 살다보니, 시민사회의 기본 덕목이라 할 서로에 대한 관심도 이해도 포용도 사라진 현실 속으로 갈등이 침범했다는 진단이었다.

이사 가는 이유야 가족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나, 자녀교육을 명분으로 강남 이주를 감행하는 사례가 여전히 줄지 않는 현실 앞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용과 희생이 따르는지 정확한 진단과 합리적 판단을 더 이상 미루어선 안 될 것 같다. 자녀를 둔 학부모 입장에서는 강남 교육의 성공 사례에 한껏 기대를 걸고 유명 학원이 밀집된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 부모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의 승리가 사교육 번성의 원동력임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지.

하지만 부동산 시장 정보만큼이나 사교육 시장 정보도 부정확하긴 매일반이다. 근거도 빈약하고 증거도 모호한 입소문이 주를 이루는 데다, 실패담은 찾아보기 어렵고 성공담만 흘러 다닌다. 이 약만 복용하면 100% 비만이 치유된다고 광고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마찬가지로 강남에 입성해서 유명 학원에 고액과외를 시키면 SKY 대학 합격은 떼놓은 당상이라 광고하지만 현실이 과연 그런가?

이미 자녀의 대학입시를 끝낸 가족은 강남 입성의 효과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사교육비를 투자한 결과에 대해서도 대개는 함구한다. 사교육을 둘러싼 거의 엽기적 수준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사이, 좋은 약 먹으면 몸에 좋듯이, 사교육에 투자하면 응분의 효과가 있으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채, 남들 다 하는데 내 아이만 안 시키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강남을 향해 간다. 집 팔고 집 크기를 줄여가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채 말이다.

이사하던 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며 2025년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 폐지를 결정한 교육부를 향해, 젊은 부부들을 대신해서 ‘교육부 폐지’를 외치고픈 심정이 드는 걸 보니, 선거철이 분명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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