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개최지 선정 1차 투표서 29표 획득…엑스포 유치 불발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5대 그룹 총수, 지지 활동 선봉장
175개국 고위급 인사 3000여명 면담…목발 투혼 등 진풍경도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각 사.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각 사.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신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 같이 전했다. 재계가 부산엑스포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방증하는 발언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 그룹 총수들이 전면에 나섰던 부산엑스포 유치전이 막을 내렸다. 5대 그룹을 중심으로 재계는 막판까지 총력전을 벌였지만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야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엑스포 유치 불발이 실패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치 과정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신시장 발견, 공급망 강화와 같은 성과가 나와서다. 이에 우리 기업의 해외 확장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1차 투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는 119표를 얻어 개최지로 선정됐다. 한국 부산은 29표를 얻는 데 그쳤다. 

부산은 후발주자라는 한계로 인해 유치전 시작부터 열세였다. 사우디가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BIE 회원국 다수의 표를 선점한 까닭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재계 총수들이 측면 지원에 나서면서부터다. 

지난해 6월 민간유치위원회를 꾸린 뒤 재계는 부산엑스포 유치를 0순위에 놓았다. 12대 주요 그룹은 18개월 동안 총 175개국의 정상과 장관 등 고위급 인사 3000여명을 만나 '부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이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차지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삼성은 네팔과 라오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등을 공략했고 SK는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리투아니아, 몰타 등을 상대로 지지를 요청했다. 현대차는 페루, 칠레, 바하마, 그리스 등을, LG는 케냐와 소말리아, 르완다 등을 각각 맡아 유치전을 펼쳤다. 롯데는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표심을 공략했다. 

회원국 주요 인사와의 접견 외에도 '부산엑스포'를 알리는 홍보전도 이뤄졌다. 삼성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마드리드 등 주요 도시레서 옥외광고와 홍보영상을 게재했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도시에 특별히 제작된 자동차를 투입했고, LG그룹은 세계 각 국 도시 시내버스를 활용했다. 

우리 기업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총수들이 유치전 선봉장을 맡아서였다. 경영 일정을 쪼개 국내외에서 유치 활동을 벌였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최태원 회장은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직접 방문했거나 국내외에서 면담한 국가는 180여개에 달한다. 각 국 정상, BIE 대사 등 고위급 인사와 면담한 횟수도 1100회에 이른다. 아킬레스 건 파열로 목발을 짚은 채 부산엑스포 유치 협력을 도모하고자 부산 출장을 감행하는가 하면, 지난달부터는 BIE 본부가 있는 파리에 상주하며 각 국 BIE 대사들을 교섭 활동을 벌였다.

최 회장의 의지에 힘입어 SK그룹도 부산엑스포를 현안으로 올려놨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50명이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지난달 그룹 핵심경영전략회의인 CEO세미나를 파리에서 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환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환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이재용 회장도 황금 인맥을 활용, 힘을 보탰다. 이 회장은 매주 목요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 의혹 재판에 출석하고 있어 해외 사업 현지 전검도 여의치 않은 상황. 그러나 시간을 쪼개 출장길에 올랐다. 최근 남태평양 쿡 제도에서 열린 태평양도서국포럼(PIF)에 참석한 데 이어 영국, 프랑스에서 부산 지지를 당부했다. 삼성 사장단, 지역 총괄장·법인장 등도 50여개국 주요 인사와 600회 이상 면담하며 이 회장을 보좌했다. 

정의선 회장은 그룹 전담조직을 가장 먼저 꾸린 총수답게 다보스포럼, G20 정상회의, BIE 총회 등에 맞춰 홍보활동을 벌이는 한편, 주요 임원들과 함께 회원국 설득 작업을 벌였다. 정 회장의 의지는 투표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미자막까지 지지를 호소하며 현장을 지켰다. 

상대적으로 대외활동이 적었던 구광모 회장 또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뛰었다. 폴란드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엑스포 유치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신동빈 회장 역시 다양한 인적 자산을 활용했다. 자신이 설립한 민간외교 단체 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는 물론, 일본 내 인맥을 가동했다. 

이렇게 총수부터 주요 임원까지 우리 기업인들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개최한 회의는 총 1645회, 이중 절반이 주요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급이 참석했다.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덕분에 우리 기업은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을 통해 "한국 산업의 글로벌 지평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며 "각 나라는 소비재부터 첨단기술, 미래 에너지 솔루션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한국과 파트너십을 희망했는데, 기업들이 글로벌 인지도 강화,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등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번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정부, 경제계, 국민이 모두 '원팀'이 돼 열정과 노력을 보여줬다"며 "세게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 역시 향후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에 교두보가 되고, 엑스포 유치를 위한 노력과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리더를 넘어 글로벌 리딩 국가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유치 활동은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과의 만남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면서 "경영계는 유치 활동에 전념한 값진 경험과 정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경제주체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유치 과정에서 우리 기업은 기술과 사업 경험을 전수하며 각 국에 지원을 약속한 터다. 이로 인해 제조, IT, 친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물꼬를 텄다. SK는 동남아 선도 국가들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수소,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협력을 논의했다. EU 회원국과는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해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아프리카에서는 희토류 등 광물자원 개발을 논의했다. 디지털 경제 구축을 원하는 국가와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삼성은 해외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며 스킨십을 확대할 계기를 마련했다. 사모아, 통가, 피지 등 남태평양 국가에 삼성 사회공헌활동을 새롭게 도입하는 사회공헌활동을 새롭게 도입했다. 아프리카 레소토에 삼성 서비스센터를 신규 출점, 아프리카 공략에도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업들이 사업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국가를 맡아 유치전을 벌였던 만큼, 향후 협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우리 기업들의 기술력과 노하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신사업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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