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취업’ 논란

시민단체·정치권까지 공방 가세…“ESG 경영 강조해놓고 준법 소홀” 지적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취업 논란에 휘말렸다. 책임경영 차원에서 오너경영은 유효하다는 주장과 함께 총수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총수(總帥)’. 전군을 지휘하는 사람 또는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용어다. 

최근 재계 안팎에서 '총수의 귀환'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주인공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다. 세 사람은 ‘책임 경영’을 이유로 회사 경영에 복귀했는데, 복귀 자체가 적절한 지 여부를 놓고 시민단체·정치권까지 가세해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재용, 조용한 ‘경영 복귀’…잇따른 논란에 ‘낭패불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요즘 조용히 주요 사업을 챙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향하며 업무복귀 의지를 드러낸바 있다. 이후 11일 만에 삼성이 ‘240조 투자·4만명 고용’ 계획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경영 복귀의 첫 신호탄을 쐈다.  

이 부회장의 복귀는 재계가 정부에 요청하던 사안이기도 했다. 삼성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CXO연구소가 낸 분석자료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 71개 그룹 계열사 2612곳이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1607조원 수준으로, 같은 기간 국내 명목GDP(한 국가에서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 동안 생산한 재화·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시장 가격으로 평가해 합산한 것) 1924조원의 83.5%에 달했다. 

특히 71대 그룹 중 삼성의 기여도는 그야말로 상당했다. 삼성은 조사대상 그룹 전체 매출액 가운데 5분의1(20.8%) 가량인 333조원을 차지했는데, 삼성전자에서만 166조원이 나왔다. 국내 명목GDP와 견주어 봤을 때 삼성그룹과 삼성전자의 비중은 각각 17.31%, 8.63%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국익을 위한 선택’임을 강조하면서 그에게 ‘반도체·백신 분야에서 역할해달라’고 주문에 나설 정도로 삼성 파워는 막강했던 셈이다. 정부 요청에 화답이라도 하듯 삼성은 주요 경영진과 간담회를 갖고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여전히 잠행 중이다. 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재판에 참석했을 뿐, 현장경영은 자제하고 있다. 진보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 등에서 이 부회장의 복귀를 문제 삼고 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을 저지를 경우, 형 집행이 종료된 날부터 5년간 유죄판결을 받은 행위와 관련있는 기업체에는 취업할 수 없다. 해당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이자 ‘최고 경영자’로 나설 수 없다. 이를 근거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부회장이 규정을 위반했다며 문제를 삼고 있다. 

워낙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다 보니, 정치권까지 공방에 가세했다. 여권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는) 편법이라고 생각하고 일종의 특혜일수 있다. 충분히 제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돈이 많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특혜를 주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 볼때 현재 2건의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계속 물밑 경영을 할 수도, 대외신인도를 고려해 전면에 나설 수도 없는 ‘낭패불감(狼狽不堪)’한 처지로 내몰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수수방관하며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18일 “무보수·비상근·미등기 임원 상태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취업 제한 범위 내”라는 입장을 밝혔다가 일주일여 만에 “(이 부회장 행보가) 일률적으로 취업이다, 아니다 확정해 말할 수는 없다. 국익의 관점에서 이 부회장이 취업으로 볼 수 있는 일상적 경영 참여가 아니더라도 백신 문제, 반도체 문제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자세를 낮췄다. 

재계와 법조계, 삼성 등은 이 부회장이 무보수 비상임 미등기 임원임을 들어 취업제한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례도 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 부회장과 같은 방식으로 취업제한 기간에 경영에 복귀한 바 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어쨌거나 입법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인사는 데일리 임팩트에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고 직위도 갖고 있다. 돈을 받지 않으니 문제없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식의 논리”라며 “조속히 취업 승인을 신청해 논란을 털고 가는 게 맞다”고 진단했다. 

“꼼수냐 책임감이냐” 김승연·홍원식도 ‘취업’ 논란

취업 논란에 휘말린 총수는 더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2012년 차명계좌 및 차명소유회사 등을 통해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 등에게 5000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4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 확정되면서 ㈜한화, 한화솔루션(옛 한화케미칼) 등 7개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모두 물러났다. 

이후 지난 2월19일로 취업제한이 풀리면서 김 회장은 ㈜한화와 한화솔루션, 한화건설 등 그룹 3개 계열사의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했다. 당초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아 그룹 경영을 총괄할 것으로 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로 인해 국내 최장수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김 회장이 세 아들의 승계 연착륙을 지원하기 위해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한화는 그룹의 실질 지주사이며, 한화솔루션과 한화건설은 각각 화학·에너지 중간지주사, 건설·서비스 중간지주사다. 

하지만 취업 제한이 끝나기 전에 김 회장이 보수를 수령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집행유예가 종료된 지난 2019년 2월부터 2년 간 취업제한이 적용됐지만, 그해 7월 한화테크윈에 취업해 지난해 12월까지 최소 54억원을 수령했다. 이 기간 보수에 대한 4대 보험료 등도 납부했다. 한화그룹 측은 한화테크원이 특경가법상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데다, 취업 요청이 왔을 당시 법률 문제를 면밀히 검토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화테크원은 ‘경영상 필요’에 따라 김 회장의 역할이 필요했다면서도 미등기 임원을 맡겼다. 공시 대상이 되지 않는 직책을 준 것은 김 회장이 취업제한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눈물의 사퇴’를 선언했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도 취업 문제로 뭇매를 맞고 있다. 홍 원식 회장은 지난 5월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논란이 불거지자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다. 경영 승계도 하지 않겠다는 공언까지 했다. 

이후 남양유업은 한앤컴퍼니와 오너 일가 지분 전체를 인수하는 주식양수도계약(SPA)을 체결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특히 최대주주에게 소유와 경영 분리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을 요청하는 등 경영 쇄신작업에도 들어갔다. 남양유업의 최대 주주는 홍 회장으로 51.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홍 회장의 부인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을 합치면 53.08%에 달한다. 

하지만 석달이 지나도록 남양유업의 쇄신은 제자리걸음이다. 홍 회장은 사퇴 약속과 달리 아직도 ‘현역’이다. 남양유업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홍 회장의 직함은 회장, 상근 여부는 상근으로 각각 기재돼 있다. 올 상반기에도 급여로 8억800만원을 받았다. 게다가 홍 회장은 자신을 포함해 등기이사의 평균 보수액을 50% 올렸다. 남양유업 등기이사 6명 중 3명이 오너 일가다. 

홍 회장의 두 아들도 임원으로 복직하거나 승진했다. 매각 발표 하루 전인 5월 26일 회삿돈 유용 의혹으로 해임된 장남 홍진석 상무가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 돌아왔고,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 역시 미등기 임원(상무보)으로 승진했다. 오너 경영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접은 게 아니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홍 회장의 최근 행보가 특히 심상치 않다. 홍회장은 로펌 LKB앤파트너스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매각을 완료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해명한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지난달 30일 지분 매각절차를 종결키로 했던 임시주주총회가 9월14일로 갑자기 연기된 데 이어 법률 대리인까지 정하면서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계약을 파기하고 한앤컴퍼니를 상대로 한 소송 준비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분분하다. 

업계 일각에서는 매각가를 높이기 위한 버티기라는 시각도 있다. 불매운동에 직면하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급하게 매각을 결정했다가 뒤늦게 매각가를 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남양유업의 매각가는 3107억2916만원이다. 이는 9894억원에 달하는 자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문제는 남양유업의 오너리스크가 계속되는 한 실적 개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남양유업은 2019년 3분기부터 8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원유 가격 인상으로 유제품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회사 경영을 놓고 갈지자 행보를 지속하는 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홍 회장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짜 사과와 약속을 했다”며 약속 이행을 압박하고 있다. 

총수의 달라진 역할…‘책임 경영 아쉽다’ 지적도

세 명의 총수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취업’ 문제로 입방아에 오르면서 총수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통상 재계에서 총수는 그룹을 이끄는 오너 경영인을 지칭한다. 과거에는 총수가 모든 사업을 관장하며 외형 성장을 견인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총수 한 사람이 책임지기에 사업의 범위가 넓어졌고, 경영 환경은 급박하게 변하고 있어서다. 

실제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그룹 2~3세대 총수들은 재임 기간 자산은 713.8%(1742조원), 매출은 411.6%(865조원) 증가했다. 삼성의 경우, 1987년 10조원 수준이었던 자산은 2019년 803조원으로 급증했다. 계열사도 37곳에서 59곳으로 증가했다. 현대차그룹 또한 2000년 현대그룹에서 현대차그룹을 분리한 뒤 20여년 만에 자산 규모를 38조원에서 290조원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총수는 그룹의 성장 방향성을 제시하고, 중장기 경영 전략을 구상하는 조정자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재계에서 총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재계 상위그룹들이 경영을 대물림하는 경향이 강한 것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과 중심의 전문 경영과 별개로, 총수만의 책임과 역할이 있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경영계에서는 한국식 기업문화의 특성을 들며 '오너 경영은 유효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총수들이 책임 경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연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국내 그룹 총수 60명 중 37명, 그룹 총수의 61.7%가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지 않았다.  상법상 책임을 지는 등기 임원을 맡지 않은 경우도 35%에 달했다. 

더욱이 최근 전담조직을 설치하는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 법 준수에는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다.  

기업경영 전문가는 데일리 임팩트에 “선대가 땀흘려 일군 회사를 후대에 넘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면서 “하지만 경영 참여나 승계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건 총수들의 몫인 만큼 법적인 책임을 가진 직책을 맡거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긍정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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