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청운석 자택서 변중석 여사 14주기 기일, 오너가 한자리에

현대차그룹 “13주기 제사도 지냈다”며 “언론이 만든 것” 탓 넘겨

배경 취재 요청엔 “오너 가족결정 사안…확인 못해준다” 발 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부인 변중석 여사가 생전 노래를 함께 부르며 즐거워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부인 변중석 여사가 생전 노래를 함께 부르며 즐거워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미디어SR 채명석 기자] “작년에도 한남동에서 (변중석 여사)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난 16일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부가 생전에 살았던 서울 청암동 자택에서 거행한 고 변중석 여사 14주기 제사장에서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들과 취재진들 사이에선 때 아닌 부부 제사와 관련한 이슈가 불거졌다.

현대차그룹은 오너가 장남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장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인 만큼 범 현대가 오너 일정을 총괄하고 관련 내용을 언론에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언론이 ‘재계에 따르면’이라는 출처를 사용하지만. 사실상 범 현대가 오너 일가 행사 일정은 현대차그룹이 확인해주는 식이다.

지난해 8월 변중석 여사 13주기를 앞두고, 언론들은 범 현대가 가족들이 3월 정주영 명예회장 19주기 때 부부의 제사를 함께 지냈다고 보도했다. 2019년까지 범 현대가는 3월 20일 정주영 명예회장, 8월 16일 변중석 여사 제사 등 두 번씩 모였다.

올해 들어 지난 3월 정주영 명예회장 20주기 때에도 부부 제사로 함께 지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청운동 자택 안과 제사상을 취재진들에게 공개했는데, 사진 설명에 분명히 ‘부부 제사상’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변중석 여사 제사를 따로 지낸다는 것이다. 일정도 당일에서야 알려졌다.

이날 미디어SR이 청운동 자택 현장에서 현대차그룹 관계자에게 배경에 대한 취재하자 이 관계자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작년에도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이에 작년에 왜 그런 기사가 나왔느냐는 질문에는 “언론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쓴 것”이라며 언론탓을 했다. 

하지만 제사를 따로 지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가족행사’라는 이유에서였다. 또 다른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너무 많이) 제사를 지내왔기 때문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면서 “오너 가족행사이다 보니 제사를 지냈는지, 장소는 어디였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범 현대가 그룹에도 추가 취재를 했지만 마찬가지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현대차그룹측이 밝힌 대로 내년에도 제사를 따로 지낼 것으로 보이지만, 가족 간 합의 내용에 따라 다시 합쳐질 가능성도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20주기를 맞아 지난 3월 20일 서울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자택에 마련한 정주영 명예회장과 부인 고 변중석 여사 부부 제사상. 사진.공동취재단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20주기를 맞아 지난 3월 20일 서울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자택에 마련한 정주영 명예회장과 부인 고 변중석 여사 부부 제사상. 사진.공동취재단

방역 지침 따라 일찍 마무리…정몽일·현정은 회장은 불참

이날 변중석 여사 제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라 평소보다 1시간가량 앞당겨 오후 4시경 시작되어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사실상 마무리 됐다. 범 현대가 가족들은 사전에 정한 듯 시간대에 맞춰 청운동 자택에 도착, 짧은 시간 머문 후 돌아갔다.

상주인 정의선 회장 부부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정의선 회장은 3월에는 제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으나 올해는 바로 돌아갔다. 이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내외와 아들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왔으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차례로 청운동 자택 정문을 통과했다.

정몽선 성우그룹 회장과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도 오후 6시를 전후해 제사를 위해 도착했으며, 정일선 사장의 동생인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은 모친 이행자 여사를 모시고 가장 늦은 시간에 왔다.

한편, 이날 제사에는 늘 빠짐없이 참석했던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불참했다. 또한 정 명예회장의 증손자·증손녀들도 다른 제사 때와 달리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참석인원 최소화 방침과 더불어 업무 일정으로 인해 시간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6일 서울 청운동 정주영 명예회장 자택에서 진행한 고 변중석 여사 14주기 기일에 범 현대가 가족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채명석 기자
지난 16일 서울 청운동 정주영 명예회장 자택에서 진행한 고 변중석 여사 14주기 기일에 범 현대가 가족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채명석 기자

청운동 자택, 아산 부부 43년 함께한 현대 본가

청운동 자택은 범 현대가를 하나로 합치는 ‘본가(本家)’로 통한다. 범 현대가 사람들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변중석 여사의 기일에는 늘 이곳으로 모여든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 집을 지은 것은 그의 나이 43세 되던 1958년이다. 현대그룹의 기초를 닦던 시기였던 그는 청운동 자택에서 남은 반평생인 43년을 살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우리 집은 청운동 인왕산 아래에 있는데 산골 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라소리가 좋은 터”라며 늘 자랑삼아 애기했다. 풍수전문가들에 따르면 정 회장의 집터는 ‘소가 누워서 음식을 먹는’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이라고 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청운동 자택에서 자식들과 함께 매일 새벽 5시에 아침을 먹었다. 소위 말하는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진 장소이기도 하다. 식사 후에는 자식들과 함께 걸어서 계동 현대그룹 본사 사옥으로 출근한 것으로 유명하다.

‘손님 같은 남편’ 왕 회장 “아내를 존경한다”

변중석 여사는 정주영 명예회장과 청운동 자택에서 생을 함께 했다.

두 사람은 1936년 1월 8일 결혼했다. 이후 유교적 전통이 강한 정씨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6명의 시동생들과 8남 1녀의 뒷바라지를 해오며 묵묵히 헌신했다.

그는 재벌회장 부인 티를 내지 않고 소박하고 검약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주 들렀던 슈퍼마켓 종업원들도, 동대문 시장 포목점 주인도 그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초창기 현대건설 시절에는 자신의 식구들처럼 직원들에게 손수 밥을 해먹였고, 회사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후에도 직원들을 위해 메주와 김치를 손수 담가서 나누어주곤 했다. 변중석 여사는 1991년 병원에 장기입원하기 전까지 매년 메주를 쑤어 사원들에게 나눠줬다. 아예 경기도 덕소에 메주 공장을 세워 40년간 운영했다. 남편의 기업이 커질 때마다 메주 수가 늘어닜다.

인정이 많았던 변중석 여사는 설날과 추석 전후로 며느리들을 데리고 고아원 방문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자신이 재벌가 아내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편 일에 대해서는 일절 개입해 본 적이 없고 묵묵히 내조하는 성품이다. 엄한 남편을 모시고 사는 변중석 여사는 늘 조마조마했다. 시동생들도 큰형님을 무서워하다보니 의논할 일이 있으면 모두 형수인 변중석 여사를 통했다고 한다.

지난 3월 20일 공개된 고 정주영 현대그룸 명예회장 서울 청운동 자택 전경. 왼쪽 채석에는 ‘양산동천’, ‘남거유거’가 새겨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월 20일 공개된 고 정주영 현대그룸 명예회장 서울 청운동 자택 전경. 왼쪽 채석에는 ‘양산동천’, ‘남거유거’가 새겨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어느 해 ‘여성중앙’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변중석 여사는 정주영 명예회장을 “손님 같은 남편”이라고 했다. 잦은 출장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비우고 부부동반으로 출장을 간다 해도 하루 종일 아내를 호텔방에 두고 자기만 바쁘게 돌아다니는 무심한 남편이었다. 이런 그에게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펴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와 ‘이 땅에 태어나서’를 통해 “아내를 존경한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지나치게 현명한 부인은 나 같은 사람한테는 오히려 피곤했을 수도 있다. 일을 하다모면 입조차 떼기 싫을 만큼 피곤한 경우도 왕왕 있는데 현명한 부인이 현명한 나머지 지나치게 내조를 하려 들면 그것도 괴로운 일 아닌가. 아마 나 같은 성격의 사람에게 가장 ‘현명한 내조’란 순수한 부인의 ‘평범한 내조’였을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정주영 명예회장은 인터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내는) 패물 하나 가진 적 없고 화장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저 알뜰하게 간수하는 것은 재봉틀 한 대와 장독대의 장항아리들뿐이다. 부자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그런 점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참조: ‘현대家 사람들’ 이채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