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꿈의 세계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잠에 들면 대부분의 사람은 꿈을 꾸기 마련이다. 꿈은 깨어있을 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관념적 개념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연결통로이다 보니 영화 등 창작물 소재로 종종 활용된다. 그런데 잠이나 꿈을 소재로 한 영화의 많은 부분은 공포영화가 차지한다는 사실. 잠과 꿈을 소재로 한 다른 방식의 영화를 찾아봤다.  

영화 '꿈' 중 여섯번 째 일화 '붉은 후지산'의 첫 장면. / 사진=영화 '꿈' 장면 갈무리.
영화 '꿈' 중 여섯번 째 일화 '붉은 후지산'의 첫 장면. / 사진=영화 '꿈' 장면 갈무리.

영화감독의 ‘꿈’을 들여다보다

영화를 감독 예술이라고 말한다. 감독의 심상에 따라 영화의 결이 달라지는데, 잠든 세계를 그린 모습이 감독에 따라 참 다르게 표현된 두 작품이 있다.   

첫 번째 영화는 일본 영화계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1910~1998) 감독의 1990년 작품 ‘꿈’이다.  80대 거장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었고, 할리우드 유명감독이 참여해 그 당시 화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로사와 감독이 서거하고, 일본문화도 개방(1996년)하고 난 한참 뒤인 2004년이 돼서야 개봉됐다. 

옴니버스 작품인 이 영화는 8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됐다. 어린 시절 꿈 이야기인 1편 ‘여우비’와 2편 ‘복숭아밭’을 시작으로 제3편 ‘눈보라’, 제4편 ‘터널’,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코세이지, 스티븐 스필버그가 참여해 유독 잘 알려진 제5편 ‘까마귀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예견한 듯한 제6편 ‘붉은 후지산’과 제7편 ‘귀신이 울부짖는다’, 장수한 노인의 행복한 마무리를 이야기한 제8편 ‘물레방아가 있는 마을'로 영화는 끝이 난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이도, 어른도 ‘구로사와’이다. 감독의 꿈 이야기를 한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부각했다. 영화는 판이한 소재를 맥락 없이 뚝뚝 끊어 흘려보내는 듯하다. 하지만 각각의 일화에서 구로사와 감독의 환경과 자연에 대한 생각, 창작에 대한 갈망, 역사관 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살아생전 그런 꿈을 꾸고 살았을 것만 같다. 

일본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을 법한 불안감도 꿈의 소재가 됐는데, 여섯 번째 이야기인 붉은 후지산이다. 영화에서는 후지산 폭발과 함께 원전도 폭발한다며 사람들은 끝을 모르고 탈출한다. 원전이 안전하다고 했던 사람 또한 죽음을 택한다. 1990년에 후지산과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을 영화로 표출했는데, 결국 2011년에 상상 그 이상의 사태가 벌어져 지금까지도 전 인류가 고통받고 있다.  

구로사와 감독은 강한 색감, 연극적인 요소 등을 주로 영화에 차용했다. 이 영화에서도 그 부분이 감각적으로 쓰이고 있다. 어린 구로사와가 등장하는 영화 초반 여우가 결혼식을 하러 숲속을 걷는 장면은 대극장 연극을 보는 듯한 화려함이 일품이다. 명작은 시간이 흘러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시대를 초월한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 중 하나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이다. 

영화 '수면의 과학'의 한 장면. 잠에 든 스테판을 살피는 스테파니.  그녀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스테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 사진=영화사 공식 스틸컷.
영화 '수면의 과학'의 한 장면. 잠에 든 스테판을 살피는 스테파니.  그녀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스테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 사진=영화사 공식 스틸컷.

다른 하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을 형상화한 프랑스 미쉘 공드리 감독의 2006년 작품 ‘수면의 과학’이다. 

미쉘 공드리하면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영화는 특이한 소재로 각종 영화 채널에서 지금도 소개되고 있다.  ‘수면의 시간’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지우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특이한 설정 때문이다.  

‘수면의 과학’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정말 ‘잠’에 관한 장면이 자주 나오는 영화다. 잠을 자고 있는 주인공의 꿈 안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잠과 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없다 싶을 정도다. 마치 잠에서 깬 후 이불 밖으로 나오기까지 꿈속에서 벌어졌던 장면을 복기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영화 속 주인공은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스테파니(샤를로트 갱스부르). 스테판이 사는 아파트에 스테파니가 이사 오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사촌으로 만나 연인이 되어 이야기가 벌어진다. 

스테판은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단순 교열 작업자다. 영화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의 일상과 꿈의 세계를 연결해서 보여준다. 꿈에서 그는 토크쇼 사회자이고 대단한 창작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스테판의 현실에서도 꿈에서 봤던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도 한다. 스테파니는 꿈속에서 사는 것만 같은 스테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꿈속 세상을 조형물로도 형상화해 주고 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밑도 끝도 없이 꿈을 형상화한 듯 몽롱하고 현실적이지 않다. ‘영화 본다’가 아니라 ‘누군가의 꿈과 머릿속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는 쪽이 영화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공드리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불친절한 작품이라고 얘기하는 평론가도 있던데, 어떤 유튜버의 영화해설을 보니 이 영화는 공드리 감독 자신을 표현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꿈속에 사는 스테판은 감독의 ‘내적 자아’이고, 스테파니는 ‘외적 자아’라고. 개개인의 꿈속은 상상 이상의 영역이다. 잘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꿈, 그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냈다는 점이 기발하기까지 하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이렇게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무척 신선했다고나 할까?

두 영화의 내용 모두 감독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평소 자기의 생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공통점이다. 단, 50여 년의 세대 차이, 동양과 서양 차이, 국가나 문화 차이 등 서로 판이한 배경이 비슷한 듯하지만 개성이 다른 가진 작품을 탄생시켰다. 

로맨틱 코미디 전성시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라디오를 통해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 / 사진 = 공식 포스터.
로맨틱 코미디 전성시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라디오를 통해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 / 사진 = 공식 포스터.

잠, 성공적인 로맨틱 드라마

요즘은 돈을 많이 투자한 영화가 개봉관이나 OTT(넷플릭스 혹은 디즈니 플러스 같은 영상 플랫폼) 영화 시장에 나오지만, 1990년대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영화가 대세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로코퀸(로맨틱 코미디 여왕)’은 단연 멕 라이언이다. 한국영화가 맥을 못 추던 시절 세대 불문하고 멕 라이언을 좋아했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가 1993년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멕 라이언을 세상에 제대로 알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노라 에프론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여전한 스타 배우 톰 행크스가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지병이 있던 부인을 잃고 시카고에서 시애틀로 이사한 샘(톰 행크스)과 그의 아들 조나. 조나는 성탄절에 한 라디오 방송에 전화를 걸어 엄마가 떠난 이후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아빠에게 새 아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혼할 애인이 있는 애니(멕 라이언)는 운전 중 이 사연을 듣게 되고 점점 샘에게 빠져들게 된다. 여기에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라디오DJ가 샘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애인이 있던 애니는 애인과 파혼을 결심하고 샘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며 끝이 나는 영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1년 반 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남자가 새로운 사랑에 눈을 떴으니, 불면증에서 해소될 수 있을지 궁금한 영화다. 

짝사랑하던 남자가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은 사이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파혼 당하는 역할을 맡았던 남자 배우 빌 풀만은 이 영화에서는 청혼에 성공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 사진=공식 포스터.
짝사랑하던 남자가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은 사이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파혼 당하는 역할을 맡았던 남자 배우 빌 풀만은 이 영화에서는 청혼에 성공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 사진=공식 포스터.

2년 뒤인 1995년 멕 라이언의 뒤를 이은 로코퀸 산드라 블록의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짝사랑하던 남자가 의식불명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말 그대로 당신이 잠든 사이다. 

이 영화에 이제는 사라져 없는 전철 토큰이 등장하는데, 루시(산드라 블록)는 지하철 토큰을 판매하는 철도국 판매직원이다. 그녀는 부모도 가족도 없어 크리스마스 당일 토큰 판매 부스에서 일한다. 이날 짝사랑하던 남자 피터가 지하철에 서 있던 깡패들한테 떠밀려 철로 아래로 떨어진다. 이를 본 루시가 피터를 도와 병원에 가게 되고, 루시를 샘의 약혼녀로 오해한 가족들에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가족의 사랑을 알게 된다. 그리고 피터가 아닌 그의 동생 잭(빌 풀만)과 가까워지고 연인으로서 감정을 느끼는 등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결국 잭이 루시에게 청혼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영화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청혼 장면으로 꼽힌다. 

두 영화 사이에는 재미있는 교집합이 있다. 남자 배우 빌 풀만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파혼당하는 애니의 남자친구였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는 루시에게 청혼해 성공한다. 전작에서는 파혼 당하는 조연, 후작에서는 사랑에 성공하는 남자 주인공이 됐다.

시니어 ‘꿈’을 이루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 사진=영화사 공식 스틸컷.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 사진=영화사 공식 스틸컷.

꿈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실제 잠에 대한 영화도 있겠지만, 도전하고 성취하는 이야기로 꾸며진 영화도 있다. 이 중 시니어의 성취와 연관된 영화도 있다. 

버킷리스트 열풍을 몰고 왔던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2007년, 로브 라이너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배우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병원 안에서 만난 시한부 환자 카터(모건 프리먼)와 에드워드(잭 니콜슨)가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나하나 실현하는 걸 보여주면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는 꼭 있기 마련이다. 사는 게 바빠서, 가족을 챙겨야 해서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죽음의 문턱 앞에서라도 바라는 일을 이루는 모습에 작은 희망을 안게 된다. 생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후회 없이 살라고 영화는 말한다. 

끝으로 소개할 영화는 배우 나문희 씨가 주연인 한국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년, 김현석 감독)’이다. 영화 초반 나옥분(나문희)은 지역 재개발 문제로 민원을 제기하며 뻔질나게 구청을 찾아오는 불편한 주민이다. 나옥분은 옷수선 가게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한다. 어린 시절 해외 입양 간 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과 맞춰서 공부하기도 힘들다.

그러다가 구청 직원 박민재(이제훈)의 영어 실력이 수준급임을 확인하고 그에게서 영어 과외를 받게 된다. 사실 나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으며, 치매에 걸린 친구 정심을 대신해 미국 하원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을 위한 청문회’에 나선다. 나이 지긋한 시니어의 영어 배우기 고군분투기로 시작해, 위안부 출신으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와 존재를 알리고 세계 앞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인 이용수(94)씨와 고 김군자 씨를 모티브로 했다. 

웃음과 눈물, 뭉클함을 주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속 나옥분은 해외 입양간 동생을 만나면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영어 공부에 열중한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로 미국 하원에 나가 영어로 연설한다. / 사진=영화사 공식 스틸컷.
웃음과 눈물, 뭉클함을 주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속 나옥분은 해외 입양간 동생을 만나면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영어 공부에 열중한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로 미국 하원에 나가 영어로 연설한다. / 사진=영화사 공식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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