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불행한 100세 시대를 위하여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참 쓸쓸한 이야기지만, 지난 회에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시니어들이 뭘 준비해야 하는가 함께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지난해 가을까지는 저도 별생각 없이 살아왔습니다. 2009년에 뇌수술을 하고, 2014년에 후두암 수술을 하고, 2016년에 만성 백혈병에 걸린 걸 확인하고도, 죽음은 저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퇴원해 100m만 걸어도 헐떡거리는 체력으로 평생 연구 과제를 완성하겠다고 독일로 건너가 그리스를 거쳐 터키까지 여행하고, 그동안 발표한 스물댓 권의 이론서와 작품집을 정리하면서, 한국문학도서관을 완성하는 데만 정신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목욕을 하다가 하늘나라 들판으로 산책을 나가 안 돌아온 뒤부터 죽음도, 독거도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장례를 치르고,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전기와 수도 사용량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서류에 사인할 때도, 7남매 형제들과 두 딸에 끌려 대전 오피스텔로 나갔을 때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70대 중반의 홀아비짱이라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건 끌려들어간 오피스텔 밤의 고요 때문이었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요 속에 제주 아파트가 어른거리고,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겁니다.

그래서 집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핑계를 대고 건너왔지요. 현관문을 여니까 낯익은 풍경과 냄새가 밀려와 그래도 좋데요.

하지만 “왔어요?”라는 집사람 인사가 없대요. 그래서 경대 위에 놔둔 영정 사진을 쓰다듬으며, ‘나 왔어’라고 인사하고, 이튿날부터 안방을 집사람 기념관으로 삼고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어떤 때는 사진을 바라보며, ‘먼저 도망가니까 좋아?’라고 장난치며 겨울을 넘겼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 금년으로 접어들어 ‘안부 톡’이 줄어들데요. 그리고 집 안 가득 일렁거리는 고요가 싫어 24시간 TV를 켜놓고 살고, ‘혼밥’이 싫은 날에는 늙으면 주머니를 풀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후배들에게 ‘저녁이나 같이 할까?’ 톡을 보내고, ‘선약이 있는데요’라는 소리를 몇 번 듣고 나니까 거절 콤플렉스가 생겨 단골집 찾아다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지요.

그러나 대부분 사장님들이 바뀌었거나 주방에서 못 나오고, 종업원들은 모두 외국인들인 겁니다. 그래서 만 원 이하의 밥을 먹은 다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팁이라며 건네줘 “고맙습니다”라는 우리말 인사로 외로움을 메우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다른 노인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지데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조사해봤지요. 2020년 6월 말 ‘주민등록에 나타난 세대 현황’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5100만 명 가운데 1인 세대가 877만호고, 4인 이하인 핵가족이 76%로 나오데요.

 

 

하지만 이 통계에는 고시촌에서 혼자 공부하는 취업준비생이나 직장 때문에 따로 떨어져 사는 사람들까지 포함된 것이라서 ‘노령인구’와 ‘독거노인’ 현황을 찾아봤지요. 통계학에서 ‘노령인구’는 65세 이상의 노인을 말하고, ‘독거노인’은 혼자 사는 분들을 말합니다.

놀랍더군요. 전체 인구의 17.6%가 노령인구고, 그 가운데 19.3%가 독거노인이라니…. 다섯 세대 가운데 한 집이 65세 이상의 독거노인이라는 겁니다.

다른 나라들도 비율만 다를 뿐 비슷한 상황이더군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OECD 국가 가운데 우리가 1위라는 겁니다. ‘고독사 ’라는 어휘를 만들어 전 세계에 퍼트린 일본을 앞질러.

그리고 노령인구가 늘어난 것은 의학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난 반면에 젊은이들의 비혼과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신생아 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줄어든 데 원인이 있고, 독거노인들이 늘어난 것은 젊은이들이 공부가 끝나면 직장을 찾아 집을 떠나고, 뒤늦게 개인주의 사상이 보편화되고,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가 너무 커 젊은이들은 되도록 별거해 그렇다는 겁니다.

목숨을 걸고 낳고 기르고 가르친 자식들이 멀리 떠나고, 어쩌다 한마디 하면 그림자조차 안 보이니 노인네들은 더 외롭겠지요. 그래서 관심을 끌려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그럴수록 더 멀어지고. 당신 부모가 고독사했다는 연락을 받고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자료들을 읽다 보니까 우리 형제들과 두 딸은 정말 고맙데요. 하지만 대전에 사는 한 자식과 형제들을 괴롭힐 것 같아 제주로 건너와서 가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금년 봄부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생각하다가 아래 세 가지를 목표로 정했지요. 여러분들도 자기 형편에 맞게 몇 가지 목표를 세워보세요.

①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치매로 자신을 관리할 수 없을 때까지는 혼자 살면서 자식이나 형제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② 건강을 유지하는 한 그동안 쓴 스물댓 권의 문학 이론서와 작품집들을 고쳐 써서 핸드폰으로 읽을 수 있는 전자책으로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한다.

③ 2만여 명의 정회원들로부터 전송권을 위탁받은 한국문학도서관을 금년 말까지 완성해 문단과 사회에 바친다.

첫 번째 항목을 제외하고 두 항목은 여러분들과는 별 관계가 없으시지요? 이 두 항목은 끝까지 이루고 싶은 일들 가운데 고르세요. 하지만 이제까지 해오시던 일 가운데 고르고, 용돈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일들은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금년 말까지 도서관을 개조해 우리 사회에 바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2011년부터 12년 동안 봉급을 안 받고 도와준 후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목표를 세운다고 그냥 이뤄지는 건 아니지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나 거실을 서성대며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게 좋습니다. 우선 ‘그냥 죽을 수는 없잖아? 뭔가 남기고 떠나야지.’하면서 오기를 부추기고, 몇 살까지 꼭 이뤄야지라면서 기한을 설정하고, 그러자면 금년엔 어느 정도 이루고, 어떻게 추진할까 구체적인 방법을 설정해 마음속에 새겨둬야 합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스물댓 권의 책을 85세까지 8년 동안 매년 3권씩 고쳐 쓰기로 하고, 컴퓨터 자판을 바꾸고, 수십 개의 스타일과 단축키를 설정해서 씁니다. 그리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경우에도 굶지 않고, 목표를 이룬 날 저녁에는 잠자리에 들 때 ‘참 잘했어’라고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주고, 이튿날 아침에는 빠뜨린 게 없나 점검해 그날의 목표에 끼워 넣습니다.

이렇게 매일 다짐하고, 점검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고, 방법을 모색하면 아주 엄청난 결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논 한 마지기 없는 가난한 농사꾼 팔남매의 장남이 여섯 동생의 학비를 대고 여우살이 시키면서 대학교수가 되고 박사가 되고, 매일 한 움큼씩 약을 먹고도 볼그데데하고 허리가 꼬장꼬장한 것도 마인드 컨트롤 덕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은 하지만 노령화나 독거노인 문제는 저 혼자 고심할 문제가 아니데요. 그래서 이 연재의 화제로 삼고 함께 논의하고 제안해볼까 생각했지요. 하지만, 발제자는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독거노인들의 외로움과 상속 문제가 걸려 이제까지 미뤄왔습니다.

노인들의 외로움은 복지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집사람이 죽고 나니까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데요. 제게 사랑은 본능적인 욕망만이 아니라 ‘제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인 동시에 ‘실존(實存)을 확인해주는 거울’이고, ‘인생의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서른 살에 집사람을 시골 시집에 놔두고 혼자 서울로 올라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도, 기를 쓰고 교수가 되고, 박사가 된 것도, 내실의 영정 사진을 쓰다듬으며 ‘나 잘 먹지’ 하며 묻는 것도 “당신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고, 이걸 덮어두고 살다가는 나 역시 독거사를 해 악취를 풍기며 썩어 두 딸을 불효녀로 만들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늙은이가 꼬신다고 넘어올 사람도 없거니와 딸들은 “아빠는…” 하고 바라볼 것 같고….

상속 문제는 이미 지난해 말 두 딸이랑 합의된 상태입니다. 집사람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를 배우자인 제가 2분의 1, 두 딸이 4분의 1씩 공동 상속을 받기로.

물론 딸들이 공동 상속을 제안할 때 ‘이 집은 내가 은행 빚을 내 몇 년씩 갚으며 산 거야. 여자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6년 더 길다고 해서 내가 죽은 뒤 힘들까봐 등기해 줬을 뿐’이라고 입을 뻘씸뻘심하다가 인천 작은딸이 “또 도서관에 쓸어 넣을까봐 그러는 거예요”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합의했습니다.

그런데도 상속 문제를 연재 화제로 택하지 못한 것은 독거노인들 문제를 조사하다가 읽은 자료들 때문이었습니다. 부모가 고독사했다는 통보를 받고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거절해 무연고장으로 치르게 한 자식들이 뒤늦게 돌아와 상속을 받고, 귀중품이라도 있을까 온통 들쑤셔놓았다는 이야기랑, 일본의 경우 국가 예산의 3분의 1을 노인들 복지 기금으로 지출하고 2040년에는 2분의 1로 증가할 것이라는 자료를 읽는 순간, 상속은 살아 있는 배우자가 받아 결정하도록 법을 바꿔야 자식들이 자주 전화라도 걸고, 국가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제가 생각하는 대안을 말씀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우선 독거노인들의 ‘심리적 고독’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오래 사귄 이성관계가 아니고, 연령 차이가 많이 날 경우는 참으십시오. 내가 먼저 죽을 텐데 그래도 좋다면 내가 꽃뱀이거나 늑대냐, 그런 문제를 접어둬도 가치관과 생활 방식 차이 때문에 싸우다 헤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나이, 그리고 되도록 멀리 떨어져 살고, 아침마다 ‘잘 주무셨어요?’라고 톡을 주고받고, 한 사람이 밥을 사면 다른 사람이 차를 사고, 어떤 경우도 돈거래는 하지 않고, 한 이틀쯤 소식이 없으면 직접 119로 연락하거나 상대의 자식들에게 연락할 분과 만나십시오. 젊은 날 배우자를 그렇게 사랑했으면서도 싸우고, 자식 때문에 못 헤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십시오.

상속법 문제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미망인에게 전권을 넘길 수 있게 개정해주세요. 그래야 혼자 계신 부모님께 자주 전화 걸고, 사망한 경우 무연고로 처리하는 건수가 줄어들고, 사회 복지비도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연재에 말씀드렸듯이, 정쟁만 하지 말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국민철학과 윤리를 만들고, 교과서를 개정할 때 반드시 담으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혼란은 복지비를 늘리거나 ‘촉법소년’의 나이를 낮춘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닙니다.

자아,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만날 날을 말씀드릴 수는 없네요. 집사람이 하늘나라 들판으로 떠난 슬픔을 잊기 위해 연재를 시작했지만, 가물가물하는 기억력 때문에 도무지 문장이 안 되고, 한밤중에 그런 글들을 보내 제가 ‘대기자 각하’라고 부르는 주필 선생님을 더 이상 힘들게 해드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제게 주소를 주시면 1년에 서너 권씩 고쳐 쓴 작품집과 문학이론서들을 보내드릴게요. 사랑해요. 안녕, 정말로 사랑해요. 건강하시옵길 빕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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