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마흔네 살에 늦장가를 든 조카 녀석이 3년 전 마흔여섯 살에 첫딸을 낳더니 올해 추석에 둘째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예정일이 내년 5월 초라니, 예전 같으면 손주 볼 나이인 쉰 살에 둘째를 얻게 되는 셈이다. 친할머니는 나이 오십에 웬 아이냐며 싱숭생숭하다고 하시지만, 정작 아빠 얼굴에서는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임신 전에는 냉면 먹고 싶다, 낙지볶음 먹고 싶다 졸라도 들은 체 만 체하더니만,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한 후부터는 남편이 연신 먹고 싶은 것 없느냐고 물어보는 통에 귀찮기만 하다는 것이 조카며느리의 엄살이다.

지난 학기 대학원생 제자 중 한 명이 둘째 자녀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결혼해서 이미 한 명의 자녀를 낳은 부부를 대상으로 조만간 둘째를 낳을 계획이 있는지, 혹 계획은 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둘째 출산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주제로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그 결과 몇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일단 둘째 자녀 출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핵심 요인은 결국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아빠의 출산 태도 내지 의지로 밝혀졌다. 아무리 저출산이 대세라 해도 ‘결혼하면 아이는 적어도 둘은 있어야지’ 다짐해온 아빠의 굳은 신념(?)이 둘째 자녀 출산에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아빠의 희망 사항에 엄마가 기꺼이 동의할 것인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일부 남성들은 아내를 설득할 자신이 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일-가정 양립 정책이 맞벌이 부부의 출산 결정에 그다지 눈에 띌 만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22년 1분기 0.86, 2분기 0.76을 기록하며 또 세계 기록을 갱신했다. 세계 최하 수준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출산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20년간 일-가정 양립 정책에 천문학적 재원을 투자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가정 양립 정책은 여성의 경력 단절 예방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지만, 이를 출산율 제고와 연계한 것은 착오였음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여성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영어를 축약한 표현)과 남성의 워라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여성들 대부분은 워라밸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자신의 일 혹은 경력을 유지하면서 자녀 양육도 소홀히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남성들 다수는 둘째 자녀가 태어날 경우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요, 아내 눈치 보느라 회식 야근도 줄여야 하고 비즈니스의 일환인 네트워킹도 소원해질 것이며, 골프 등산 등 자신의 취미생활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차원에서 워라밸이 깨질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기성세대보다 신세대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워라벨에 젠더 차이는 없을 줄 알았는데, 보기 좋게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자녀는 최소 두 명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남성의 속마음을 정확히 측정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소위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나 ‘가장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온정적 가부장제’를 내면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진정 출산율을 높이고자 한다면 결혼과 가족과 출산에 관한 한 전통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남성들을 적극 밀어주는 대책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의 정책이 만병통치약의 기능을 하는 경우는 물론 없다. 정책의 효과는 현장에서만 입증 가능하다는 사실은 기본 중 기본 아니던가. 실제로 둘째 자녀 출산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는 10가족 10색으로 다양하게 나타났고, 한 자녀로 만족해야 하는 부부의 사연 또한 무지개 빛깔처럼 다채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출산율 반등에 일차적 목표를 두고 추진해왔던 저출산 대책은 실패 내지 착오였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낙제점 받은 답안지는 깨끗이 지워버린 후 새 답안지 위에 신중한 자세로 신선한 답을 채워나갈 필요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우리에겐 과거 출산율 6.1을 20년 만에 2.0 이하로 떨어트리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어쩌면 지나친 성공이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때의 성공 요인과 시행착오를 복기해보는 것도 새로운 답안 작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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