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민간위원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직

최근 한식 세계화까지 보폭 확대…다양한 대외 활동으로 공사다망

워싱턴DC서 SK의 밤 행사 진행…현지 정·관계 인사 등 참석 예정

美, 신사업 전략적 요충지 부상…中 사업 리스크 최소화 위해 등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1일 서울 SK텔레콤 본사 수펙스홀에서 AI 관련 구성원들과 타운홀미팅을 가졌다. 사진은 직접 AI 사업 비전과 개선 과제 등을 설명하는 최태원 회장. 사진. SK텔레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1일 서울 SK텔레콤 본사 수펙스홀에서 AI 관련 구성원들과 타운홀미팅을 가졌다. 사진은 직접 AI 사업 비전과 개선 과제 등을 설명하는 최태원 회장. 사진. SK텔레콤.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에 맞게 사업구조와 경영활동,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나가겠다.“

경영 전략의 변화를 예고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에서 세일즈 경영에 나선다. 21일 최 회장은 워싱턴DC에서 열리는 ‘SK의 밤‘에서 직접 현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대미(對美) 비전과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이른바 BBC 신사업 동향을 점검할 예정이다. 모처럼의 본업 복귀다. 

최 회장은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원 민간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공사다망한 상반기를 보냈다. 하반기에도 최 회장의 외유는 계속됐다. 국가발전 프로젝트로 한식 세계화를 낙점하고 지상파TV 토크쇼에도 출연 중이다. 첫 번째 대통령 특사가 임명되고 엑스포 유치전이 본격화된 뒤에는 해외를 누비며 지원 사격도 벌이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엑스포 유치 의지를 피력하면서 최 회장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졌다. 이런 때 최 회장이 세일즈 선봉장을 자청했다. 

최 회장은 지난 16일 일본에서 한일 경제협력과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SK의 밤까지 최 회장의 동선은 비공개다. 다만 시간적 여유가 난 만큼 현지 사업을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 SK그룹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SK의 밤에 참석하는 것 외에 파악된 내용은 없다”면서 ”(SK의 밤 행사에서) 현지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할 것 같다”고 했다. 

SK의 밤은 2018년 시작된 행사로 사업상 미팅의 성격이 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년 간 개최되지 못했다가 이번에 재개됐다. 참여 인원 규모도 200여명에 달하고, 현지 법인부터 현지 파트너사, 정·관계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그룹 사업과 이해관계가 얽힌 인사들이 참석한다. 때문에 그룹에서도 중량감 있는 행사로 꼽힌다. 미국 시장이 SK그룹의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 회장은 미국 시장에 공들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만 4차례 미국을 다녀왔다. 올해 역시 지난 7월 미국으로 건너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 면담을 가졌다. SK그룹이 “국내 투자가 뒷받침 돼야 (미국 투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지만, SK의 눈길을 항상 미국에 가 있었다. 국내보다 먼저 대규모 장기 투자 계획을 공식화 했고, 후속 실행방안도 한 발 먼저 구체화 했다. 이는 최 회장의 신사업 구상과 무관치 않다. 

최 회장은 BBC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고, 범용성이 높은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가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러한 최 회장의 구상에 날개를 달아줄 최적의 시장이다. 프렌드 쇼어링을 강조하는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데다, 신사업 관련 원천기술을 갖고 있어 사업상 협력을 도모하기 유리하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친환경-첨단 기술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면서 미국 시장의 중요도는 더 커졌다. 

이에 최 회장은 미국을 신사업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의중을 내비쳐왔다. 지난해 10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제임스 클라이번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 등 워싱턴 정계 유력인사들과 만나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달러을 투자하되, 절반 가량은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올해도 최 회장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 투자를 공언했다. 70억달러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투자 외에 반도체 연구개발(R&D) 협력과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 시설 등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 150억달러를 투입한다. 전기차 충전·그린 수소·배터리 소재·리사이클링·소형모듈원자료(SMR) 등 그린에너지 사업에 50억달러, 세포·유전자 치료제 분야에도 20억달러가 들어간다. 윤곽이 드러난 투자액만 290억달러인 셈이다. 반도체, 배터리를 안보상 전략무기로 규정하면서까지 각별히 챙기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흡족한 확답이다. 

특히 최 회장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을 제시했다. 현지 대학교를 선정해 반도체 R&D 협력을 진행하기로 한 것. SK하이닉스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개방형 혁신을 지향하는 R&D센터를 설립키로 한 점을 고려하면 미국 사업에 상당히 힘을 실은 모양새다. 

다만 미국 시장의 중요도가 올라갈수록 다른 지역 사업에 미칠 악영향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동시에 핵심 전략산업에서 기업들의 중국 투자를 막고 있다. 사실상 중국을 대한 기술 장벽을 쌓는 데 기업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에 반도체 투자를 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에 10년 간 첨단 생산설비를 짓지 못하도록 제약을 뒀다. 배터리 역시 핵심광물 40%를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가져와야 50%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대로라면 중국 의존도를 단 번에 낮춰야 한다. 

문제는 SK그룹의 반도체와 배터리 계열사들이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SK온은 창저우·후이저우·옌청에 4개의 생산기지를 확보했다. SK하이닉스도 우시·다롄·충칭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권 재집권 등을 위해 대중(對中) 압박 수위를 높인다면 중국 사업은 계륵이 될 판국이다. 최 회장이 깜짝 등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기업가치를 증명할 전략을 다시 짤 것을 강하게 요구했었다. 스스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우리의 목표 달성과 기업가치에 도움이 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기존 방식을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고 거듭 밝혀왔다. 이에 최 회장은 미국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관계를 대상으로 중국 사업이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강조해왔던 파이낸셜 스토리를 입증하는 것이다. 

최 회장의 액션으로 그룹 내에는 긴장감이 높아질 전망이다. 연말 인사평가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최 회장의 세일즈 경영은 무언의 압박이다. 게다가 다음달 SK그룹은 CEO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BBC 전략과 성과를 보여줘야만 한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최 회장은 인사권을 이사회에 넘길 정도로 권한을 분산해 기업 경영의 위험 요인을 없애는 문제에 집중했다”며 “그랬던 최 회장이 미국 시장에서 그룹의 BBC 비전을 설명하는 데에는 계열사들의 실행력이 떨어진다는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이 그룹의 성장동력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으니 사업 결정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전보다 CEO들이 실효성 있는 전략을 내놓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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