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출기업 52% 대응 미흡으로 계약, 수주 파기 우려

공급망 실사는 시작에 불과...실질적 협력사 관리 요구돼

위반 사항 나오면 최대 매출 2~10% 벌금 조항도

사진 : 데일리임팩트 DB

[데일리임팩트 이승균 기자] 유럽의 공급망 실사법 시행을 앞두고 수출기업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수출기업 절반이 계약과 수주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할 만큼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EU 공급망 실사법은 유럽 역내 국가를 넘어 회원국 시장 내에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국 기업도 적용 대상으로 포섭하고 있어 국내 주요 수출 대기업과 묶여 있는 공급업체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수출 대기업 84곳, 중견기업 81곳, 중소기업 135곳 등 300여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52.2%가 ESG 수준 미흡으로 계약과 수주 파기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원청기업이 ESG 실사를 시행할 경우 이에 대한 대비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실사 대비수준을 묻는 질문에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77.2%로 나온 반면, 높다고 응답한 비율은 22.8%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공급망 실사법 시행을 6개월 앞두고 있으나 실제 원청업체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ESG 실사와 평가, 컨설팅 제공 등 ESG 경영 현황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실사 경험이 있느냐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 기업의 8.8%만이 '있다'고 응답했다.

중견, 중소기업들은 공급망 ESG 실사와 관련해 내부 전문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 정보 부족을 호소했다. 주요 대기업을 거래처로 두고 있는 기업의 한 관계자는 "ESG 정보와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ESG 실사나 평가는 낭비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공급망과 관련한 사회, 환경적 리스크를 포착하기 위해 실시되는 공급망 실사 제도가 사실상 연성 규정이 아니라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는 끊임 없이 나오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사회, 환경적 리스크를 포착하기 위해 실시되는 제도이나 환경과 인권 전반에 대한 실사로 지배구조를 제외한 ESG 모든 영역에 대한 검토와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실사법은 현재 진행형, 주요 대기업도 위기감 팽배

공급망 실사법과 관련해 국내 중견 중소기업은 물론 주요 수출 대기업도 위기감이 상당하다.

18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신규로 국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30대 기업 중 공급망 실사에 나서고 있는 기업 비율은 62.7%로 절반을 조금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와 안전 관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ESG 경영을 지원을 하는 기업은 40%에 불과했다.

일부 기업은 협력사 평가 결과 리스크가 상존하는 경우도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250여개 내외 직접 협력사를 두고 있는 모 제조 기업의 경우 조사 대상 협력사의 38%는 중대 결격 사유, 11%는 ESG 경영 개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등 공급망 실사는 물론 관리도 시급한 상황이다.

ESG 투자업계 관계자는 "안전, 환경, 정보보호, 준법 및 윤리경영 등 주요 ESG 경영 분야에 대한 광범위한 리스크 관리에 나서다 보니 원청의 엄격한 ESG 경영 원칙에 준하는 규제 준수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실제 다수 기업이 재계약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협력사의 오염물질 배출이나 미세먼지 발생 등 환경 영향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져야 하다 보니 사실상 모든 ESG 리스크가 원청에 전가되는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재계에서는 수출 대기업들이 뭉쳐 공동으로 대응 여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를 테면 IT 기업들의 지속가능한비즈니스얼라이언스(RBA) 처럼 산업의 특성에 따라 공급망 관리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조속히 모여야 한다는 시각이다.
 

단순 위기감 조성 아니다, 비즈니스 타격 현실화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의 호소에도 공급망 실사법 대응이 요구되는 것은 실제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있기 때문이다.

인권과 환경에 대한 표준 준수가 가능한 기업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 등 공급망 실사법을 우선 시행 중인 국가들에서 불공정 거래, 생태계 파괴 등 실사의무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다수 나오고 있다.

나아가 유럽연합은 위반 사항이 발생할 경우 자체적인 감독기구를 통해 기업이 제출한 입증 자료에 근거하여 조사를 개시하고 부족할 경우 기업에 경고 후 현장 점검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라 벌금 등 행정 제재 부과도 현실화되고 있다.

제3국 기업에 대해서는 사업을 운영하는 회원국 내에 법인 또는 자연인을 공식 대표자로 지정한다. 환경, 인권 경영 의무 위반시 공급망 실사법과 관련한 현지 지사장 등의 책임 소재도 법적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매출액 비례 과징금 부과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다"며 "협력사 인권 및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 결과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해 비재무적 경영 리스크가 직접적인 경영 타격을 입히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공급망 실사법을 통해 매출 4억유로 이상 기업에 매출액의 최대 2%에 해당하는 벌금 조항을 네덜란드는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 조항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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