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SKC, 시장 유망성에도 미국 현지 투자 검토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재무부담 가중…적극→신중으로

유동성 우려에 대기업 75%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투자”

대외 신임도 영향 최소화 위해 옥석 가려 투자 단행할 듯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금리와 환율까지 들썩이면서 부담이 커진 까닭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금리와 환율까지 들썩이면서 부담이 커진 까닭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신뢰냐 실리냐. 하반기 경영에 접어든 기업들이 고민에 빠졌다. 

기업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국내외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경제 주체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향을 밝힘으로써 규제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 생산·소비가 모두 위축되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투자 대비 효과를 기대하기는커녕 고강도의 경영 효율화에 힘을 쏟아야 할 상황이다. 투자 집행을 놓고 기업들이 장고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놓고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주요 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투자 계획에 변화는 없다”면서도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아 경영 변수에 따른 영향, 투자 대비 효과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데일리임팩트에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이라면서도 “경영 불확실성이 증대된 만큼 이런 점을 고려해 종전보다 투자 효과나 속도를 면밀하게 살피고 최적의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벌써 투자 철회 카드는 만지작대는 기업도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미국 투자를 전면 재검토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1조7000억원을 투입해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 미국 현지에 원통형 배터리 전용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간 생산량 11GWh 규모 공장을 세워 확실히 관련 수요에 적극 대응할 예정이었다. 지난 3월 건설 계획을 밝힌 뒤 4월 부지 매입, 5월 부지 사용 계획 승인까지 마치고 이달 착공을 앞둔 상태였다.

SKC도 2단계 투자를 검토 중이다. SKC는 미국 조지아주에 고성능 컴퓨팅용 글라스 기판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지난해 글라스 기판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2023년까지 1만2000㎡ 규모의 생산시설을 건설해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1단계로 기술가치 7000만달러를 포함해 8000만달러를 투자가 이뤄졌다. 어플라이드 벤처스가 5800만달러를 출자하면 SKC가 추가로 22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연말까지 추가 검토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와 SKC의 고성능 컴퓨팅용 글라스 기판은 사업 확장을 위한 ‘한 수’였다. 원통형 배터리는 파우치형보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데다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고객사인 테슬라 공급물량이 증가하면서 1분기 LG에너지솔루션 실적을 견인한 효자제품이다. 전자제품부터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응용처도 다양하다. 미국 현지에 생산거점을 확보할 경우, 전 세계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고성능 컴퓨팅용 글라스 기판도 마찬가지다. SKC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고성능 컴퓨팅용 글라스 기판은 플라스틱 기판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표면이 매끈하고 중간기판이 없어 반도체 패키지 두께를 줄여준다. 반도체 칩과 집접회로(PCB) 사이 거리가 줄어드는 만큼 전력 효율도 좋아진다. 사각패널을 대면적으로 만들어 반도체 고성능화에 유리하다. 때문에 반도체 패키징 분야의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두 회사가 유망성에도 불구하고 투자 검토에 들어간 배경에는 투자 환경의 급변이 있다. 경기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비용이 예상보다 늘어나게 됐다. 인건비, 건설비용, 원자재 가격 등이 줄줄이 오른 상황에 투자 감행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두 회사가 투자를 전면 철회할 가능성은 낮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공장은 계획 변경 없이 건설한다. SKC도 양산 시점을 맞추겠다는 의향을 밝히고 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 SKC처럼 미국 투자를 앞둔 다른 기업들도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개 중 약 3개 기업이 투자 축소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개 중 약 3개 기업이 투자 축소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내 기업들의 투자 기조는 보수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매출 500대 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하반기 국내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10곳 중 3곳(28%)이 투자를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투자 확대를 밝힌 기업(16%)보다 12%포인트 더 많았다.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등 국내외 경제 불안정(43.3%), 금융권 자금조달 환경 악화(19.0%), 글로벌 경기침체(9.0%) 등 대외 환경이 불투명하자 대기업들의 투자 기조가 ‘적극’에서 ‘신중’으로 선회했다. 실제 대기업 75%가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불과 한 달여 전과 비교하면 온도차가 극명하다.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CJ, 신세계 등 주요 그룹이 향후 5년 간 집행하기로 한 투자액은 1075조원에 이른다. 올해 국가 예산 607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일부 그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선물로 투자 보따리를 안겼다. 현대차의 경우,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생산 거점을 신설하고, 별도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자율주행·인공지능(AI)·로봇·소프트웨어 등 미래 사업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약 16조원이 들어간다. 민간 주도 경제 활성화 기조에 부응하다는 명분을 챙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장 내 영향력 강화를 위해 필요했다.

문제는 경제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을 넘겼다.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가 연말까지 추가로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진다. 물가 추이도 심상치 않다. 국내공급물가와 소비자물가는 지난 4월 각각 15.3%, 4.8%로 1년 사이 2배 가까이 급등했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원자재·중간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 특성상 수입 가격 상승은 마진율을 낮춘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업황도 나빠졌다. 한국은행의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모든 사업 업황 실적 BSI는 82로, 5월(86) 대비 감소했다. BSI 지수가 100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은 경영상황에 대해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이런 때 미국은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5%까지 올리면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공격적 투자계획이 계륵이 된 셈이다. 

일단 경기와 관계없이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대규모 투자로 미국 등과 전략적 경제동맹을 맺음으로써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며 “업종에 따라서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도 있다”고 봤다.

투자업계에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미국 시장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라며 “투자에 주춤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대외 신임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추후 투자를 진행하더라도 만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현대차는 예정대로 공장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제2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착공하는데다 TSMC, 인텔이 공격적으로 설비투자를 단행 중이라 머뭇거릴 수 없는 처지다. 현대차 역시 전기차 비중을 높이고 있어 증설이 불가피하다. 두 기업 모두 투자 조절이 여의치 않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지속하되 옥석을 가려 집행하고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병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분기 실적 방어도 어려운 마당에 장기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매달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당분간 단기 경영 성과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투자를 집행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업들이 내놓은 투자 규모만 놓고 보면 면밀한 검토가 선행됐어야 했다”면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많아진 상황에서 실행력, 효율성을 따져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고 속도 조절을 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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