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유통업체 재고회전일수 2배 이상 상승…과잉 재고 우려 커져

TV 등 부품 주문 연기 등 생산량 조절 시작…원가 압박에 수요 위축

위기관리에도 수익성 방어 어려워…삼성·LG 2분기 전망치 하향 조정

전자업계가 2분기 실적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거시 경제 상황이 불안한데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전자업계가 2분기 실적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거시 경제 상황이 불안한데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1분기 잘 버텼던 전자업계에 우울한 분위기가 감돈다. 엔데믹 전환과 새 정부 출범이 맞물려 경기 활성화의 불씨가 살아나길 기대했지만 여의치 않아서다. 

불안정한 거시경제 상황으로 인해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 공급망 문제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고환율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수익성을 방어하려던 전자업계는 완제품 감산에 들어갔다. 실적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24일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DSCC)에 의하면, 세계 최대 가전제품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의 올해 1분기 재고회전일수가 74일로 증가했다. 재고회전일수는 재고가 다 소진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뜻한다. 기존에는 60일 수준이었지만, 2주 늘었다. 세계적 유통업체인 아마존, 월마트의 상황도 비슷했다. 같은 기간 월마트는 40일에서 50일로 증가했고, 아마존 역시 최대 21일이었던 재고회전일수가 57일을 기록했다. 

이를 방증하듯 국내 전자업계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재고 수준은 크게 올라갔다. 올 1분기 1년 사이 삼성전자 재고자산은 55.4% 증가한 47조5907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LG전자도 27.7% 늘어난 10조2143억원으로 나타났다. 

과잉 재고에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 생산량을 조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TV, 스마트폰, 가전제품에 탑재되는 부품 주문을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주문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부품 출하를 몇 주 동안 늦추거나 출하량을 축소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재고가 증가한데다 전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의 압박이 커지자 생산량 조정에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닛케이아시아는 7월 말까지 이 같은 조치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기 부양을 위해 세계 각 국이 보조금을 풀면서 전자업계는 수혜를 입었다. 외부 활동이 제약을 받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자,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TV,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보복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조치가 해제되자 상황이 변했다. 가전, TV와 같은 전자제품 상당수를 바꾼 터라 교체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공급망 최적화와 경영 효율화를 통해 원가 부담을 줄이는 한편, 평균판매가격이 높은 제품에 집중하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덜 팔더라도 더 남겨보겠다는 계산이었다. 

문제는 원가 압박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반도체 웨이퍼 가격은 약 4% 증가했다. 디스플레이 패널에 사용되는 연성인쇄회로기판조립품(FPCA)은 19%, 강화유리용 윈도우는 2%  상승했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카메라 모듈(8%),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41%) 등도 줄줄이 올랐다. 가전제품에 쓰이는 주요 원자재 가격도 들썩였다. 철강 20.4%, 레진 16.3%, 구리 36.4% 올랐다. TV·오디오·비디오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구동칩 가격 또한 각각 42.8%, 27.3% 상승했다. 

특히 대체제가 없는 반도체의 경우,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의 수입 가격이 빠르게 치솟고 있다.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네온은 지난해 5월 53달러에서 1년 만에 2302달러로 뛰었다. 전쟁으로 전세계 네온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네온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여기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을 노린 중국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면서 네온 몸값이 천정부지가 됐다. 러시아까지 네온 등 불활성가스 수출 제한에 나서 당분간 네온 가격은 안정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미 1분기 각각 30조8725억원, 10조5590억원을 원자재 구입에 썼다. 원재료 오름세가 지속된다면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서는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6%가 제품 생산단가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제품 가격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제품 가격 동결을 요청하면서 ‘세제 개편’의 당근을 내밀었다. 게다가 국내외 소비 수요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서 경기 침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기조 속에 원·달러 환율이 14년 만에 1300원을 돌파하면서 환차익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급망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원자재 수입량을 늘리고 있는데, 수입 원자재 비중이 높다 보니, 환차익보다 손실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입과 수출이 역전됐다.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서며 규모가 154억6900만달러에 달했다. 무역수지 집계 이후 상반기 최대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시장에서는 2분기부터 전자업계의 실적이 하락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5조원에서 16조원 안팎으로 예상됐지만, 증권사들이 14조원에서 15조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60조원 달성을 실패할 수 있다는 리포트를 내놓고 있다. LG전자 역시 9000억원에 달했던 전망치가 최근 7000억원대까지 낮아졌다. 연간 영업이익은 5조원대에서 4조원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전망이다. 

일단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위기 관리’에 들어갔다. 경영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통합 조직을 신설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BRM(사업위기관리)를 세우고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유관부서를 소집해 대응하기로 했다. LG전자도 최고리스크담당책임자(CRO)를 선임해 전사 차원에서 위기 관리체계를 구축 중이다. 

다만 실적 부진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산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상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과잉 재고로 기업들의 제반 비용 부담이 커진 가운데 소비자들이 고가의 소비재 구매에 신중해졌다”며 “프리미엄 제품으로 방어하기엔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전자, IT는 수출 효자 품목이었던 만큼, 이들의 부진은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경기가 당분간 풀릴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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