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시 취임 열흘밖에 안 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두 사람의 공통점은 marrying up 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새삼 marrying up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데 marrying up은 일찍이 한국의 결혼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던 룰이었다. 번역하면 상향혼(上向婚)이요, 다소 어색하게 들리지만 앙혼(仰婚)이라 불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잣대가 남성의 경험이나 입장 혹은 생각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누가 상향혼의 주인공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여성이었음은 희소하면서도 흥미로운 사례라 하겠다.

특히 부계혈연주의가 강하게 작동했던 혼인 관행에서, 상향혼 룰 속엔 며느리는 다소 지체가 낮은 집안에서 데려오는 것이 두루 좋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래야 며느리가 시댁을 ‘만만히 보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적응하기는 어렵지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 적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깊은 속내도 숨어 있었던 듯하다.

“남자의 배우자 선택 조건은 나이 불문하고 20대 예쁜 여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배우자 선택 관행은 여성의 상향혼이 남성의 상향혼보다 일반적이다. 결혼 당사자들의 연령, 학력, 직업,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우위의 조건을 갖는 상향혼이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빈번한 것이 사실이다.

한데 최근 미국의 결혼 시장을 주제로 한 연구에서 marrying up의 관행을 깨는 marrying down, 즉 하향혼(下向婚)이 점차 증가 추세라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이유인즉, 한편에서는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실질임금 감소를 경험한 남성 비율이 증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졸 여성의 숫자가 남성을 압도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안정적 지위를 구축함에 따라, 배우자감으로 안성맞춤의 그럴듯한 조건을 갖춘 남성들 숫자가 절대적으로 감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여성들 앞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놓이게 되었다 한다. 첫 번째는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 싱글로 남는 비혼(非婚)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만 비혼 여성의 증가가 출산율 저하로 연결되는 한국 일본과는 달리 서구에서는 혼외 출산율 상승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두 번째는 ‘이 사람이다 싶은’ ‘필(feel)이 통하는’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 후보가 나타날 때까지 결혼을 연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여성의 나이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긍정적 자산으로 평가받기보다는 부정적 요건으로 폄하되는 것이 결혼시장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덧붙여 가임(可妊) 기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최근 난자 냉동이 대안으로 부상하긴 했지만), 무작정 무한정 결혼을 미룰 수만은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제3의 선택지가 바로 하향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연하남 연상녀 커플, 고졸 남성과 대졸 여성 커플, 블루칼라 남성과 전문직 여성 커플 등 과거에는 터부시되던 조합의 커플이 결혼식장으로 함께 들어가는 풍경이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지속하다 보면 상향혼이니 하향혼이니 하는 표현이 지극히 편향된 것임을 실감할 수 있다. 결혼제도의 속성이 남성보다는 여성을 향해 보다 많은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도록 하는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부부관계 속에서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밑지고 손해 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모 직업 재산 같은 객관적 조건이 부부간의 행복 소통 신뢰 같은 주관적 삶을 결정하는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粗)이혼율 53%에 육박하는 미국에서 백년해로하는 부부를 대상으로 ‘왜 이혼하지 않는지’를 주제로 심층면접을 실시한 적이 있다. 이들 부부에게서 공통적으로 자주 언급되었던 단어가 ‘사랑’ ‘열정’ ‘운명’ 대신 ‘존경’ ‘믿음’ ‘의지’ ‘힐링’ 등이었다는 사실은 곰곰 되새겨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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