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 가계대출 감소에도 전세대출 ‘나홀로 상승세'

계약갱신청구권 만기‧신용대출 한도 확대 예고에 우려↑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사진. DB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사진. DB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국내 은행권 내 가계대출이 비교적 안정적 수준으로 관리되는 상황에서, 전세자금 대출이 하반기 대출 시장, 나아가 가계부채 분야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 만기가 도래하는 오는 8월을 앞두고 시세를 반영한 전셋값 상승으로 인해 전세 대출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은행업계에선 전세대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대비해 금리 인하, 한도 확대 등 다양한 유인책을 활용해 고객 유치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원금 만기 상환 방식을 활용하는 전세대출의 특성상 원금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지만,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이자 폭증이 우려된다며 이에 따른 부실채권 증가 가능성도 제기된다.

1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가계대출 증가세가 비교적 안정세로 접어든 상황에서,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세만 유독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폭증했던 가계대출이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감소 및 안정세를 유지하는 반면,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세가 유독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4월 은행가계대출 동향. 자료. 한국은행.
4월 은행가계대출 동향. 자료. 한국은행.

‘나홀로 상승세’ 이어가는 전세대출

실제로 이러한 추세는 지난 5월에도 이어졌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 6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4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수신금리 인상으로 위험자산에서 은행 예·적금으로 시중 유동자금이 이동하는 ‘역머니무브’ 현상의 본격화로 인한 결과로 해석된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가계대출 변화였다. 5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8000억원 늘었다. 지난 4월에 이은 두 달 연속 증가세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감소세를 보였던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 4월 말 기준, 전월 대비 1조 2000억원 늘어나며 증가세로 전환한 바 있다. 다만, 증가 폭은 전월 대비 4000억원 가량 감소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출 금리 인하와 우대금리 복원, 한도 증가 등 대출 영업 확대 전략의 효과로 분석된다”며 “다만 코로나19 전후 가계대출 증가세 추이를 감안하면 최근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계대출의 안정적 추세 속에서도 유독 ‘나 홀로 고공비행’하고 있는 부문이 바로 ‘전세자금 대출’ 시장이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전반적인 대출 상품의 잔액이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오히려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은행권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1조1000억원 늘어났다. 주택 구입 관련 자금은 전월 대비 감소했지만, 이 같은 전세대출 증가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주택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8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으로 범위를 좁혀봐도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세는 두드러졌다. 지난 5월 말 기준 이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1조615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1조3302억원 감소했다. 4월에 이어 5월에도 증가세를 이어간 전체 은행권 기준 가계대출 변화 추세와는 사뭇 다른 결과다.

하지만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세는 전체 은행권의 증가세를 사실상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5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전제자금 대출 잔액은 132조4600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5850억원 가량 늘어났다. 전체 전세자금 대출 증가분의 절반이 5대 시중은행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시 강서구 한 아파트촌 전경. 본문과 무관함. 사진.데일리임팩트
서울시 내 한 아파트촌 전경. 본문과 무관함. 사진.데일리임팩트

하반기 전세자금 대출 폭증 가능성↑

문제는 이러한 전세자금 대출 증가세가 하반기에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은행권 내 가계대출 증가세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반기로 예정된 굵직한 이슈가 전세자금 대출의 확대를 부추길 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된다. 개정된 임대차법으로 임대인은 임차인과 기존 2년 계약 후, 추가 2년 재계약 시 전셋값 인상을 최대 5%까지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법 시행 2년이 되는 7월 말 이후 재계약 시점이 도래하는 임차인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집값 상승률을 반영한 전셋값 인상이 가능해진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그 간의 집값 상승률을 감안하면 전셋값 상승분을 메꾸기 위한 대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세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세자금 대출의 폭증이 예상되면서, 이 같은 추세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물론 전세자금이라는 특성상, 원금 연체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역시 이자 부담이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면서 대출 금리에 영향을 주는 코픽스(COFIX)도 상승하고 있다. 연내 금리 인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자 증가에 대한 차주들의 부담도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전세자금 대출 상품을 이용 중인 직장인 A씨는 데일리임팩트에 “비교적 낮은 이율의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과 한 달 사이에 이자 부담이 십만원 가까이 늘었다”라며 “계약이 끝난 이후 추가 대출이 필요한데 이자 부담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가계대출이 폭증했던 당시 연 소득 이내로 제한했던 신용대출 한도를 다시 이전 수준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세대출 한도 문제로 전셋값 상승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차주들이 신용대출로 몰릴 경우, 또 다른 대란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시중은행도 전세대출 ‘예의주시’

한편, 시중은행들은 이러한 전세자금 대출 증가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시점(7월 말) 이후 전세대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권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오는 8월부터 연말까지 갱신권이 만료되는 서울 시내 가구 수는 1만4300여 가구(아파트 기준)에 달한다. 다시 말해 1만4300여 가구는 조만간 지난 2년 사이 급격히 오른 전셋값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은행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이자 부담 증가를 고민하는 차주들의 니즈를 반영해 기준금리 인상에도 상품 금리를 오히려 인하하고 있다. 대출 금리의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 이자 수익이 감소하더라도 대출 영업 자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내 5대 시중은행 모두 전세 계약(임대차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현행 ‘임차보증금 증액 금액 범위 내’에서 ‘갱신 계약서상 임차보증금 80% 이내’로 변경해 시행 중이다. 이뿐 아니라 금리 역시 평균 0.3%p 인하해 차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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