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 인상 반영 거부 및 중도금 미납 계약 해지 사례 속출

선주가 일방적 갑인 업계 시스템상 발만 동동

올해 적자해소 목표도 빨간불…원자재가 급등 부담 떠안아

​​​​​​​대우조선해양이 안젤리쿠시스그룹에 인도한 110번째 선박인 174,000㎥급 LNG선 존 안젤리쿠시스호. 사진.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 안젤리쿠시스그룹에 인도한 110번째 선박인 174,000㎥급 LNG선 존 안젤리쿠시스호. 사진. 대우조선해양

[데일리임팩트 오수진 기자] 조선업계가 고질적인 선주의 변심에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2021년부터 찾아온 호황으로 수주가 잇따르면서 올해 누적적자 해소로 분주한 가운데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예정된 카타르 및 러시아 선주들이 계약 체결 미루기와 말 바꾸기로 계약 해지까지 이끌어내고 있는 것.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는 선박 설계부터 인도까지 모든 과정이 전적으로 선주에 의해 결정되는 업계 시스템상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1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3사는 현재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건조 프로젝트 본계약을 앞두고 선가 등 협상에 난항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 LNG 프로젝트는 오는 2027년까지 총 23조원에 달하는 LNG선박 및 시설을 제작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앞서 3사는 지난 2020년 6월 카타르에너지공사와 LNG선 건조 슬롯계약을 체결했다. 슬롯계약은 LNG선 건조 공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로 통상 최종계약을 맺기 전 사전계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카타르에너지공사 측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지난 2년간 코로나19 등 갖은 핑계를 대면서 최종계약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분쟁사태로 후판 등 원자재값 급등에 따른 신조선가(새로 배를 짓는 가격)가 인상되자 2년 전 슬롯계약 당시의 신조선가를 기준으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 통계에 따르면 LNG운반선 시황을 대표하는 17만4000㎥급 선박 건조가격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8600만 달러였으나 올해 3월 말 기준 2억2000만달러까지 상승했다.

3사는 카타르에너지공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면 떠안을 피해 규모가 6조원가량이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원자재 가격이 한 두푼 오른 게 아니라서 시장경제 원리대로 자연히 선가도 인상된 건데 고집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해관계 따라 움직이는 선주로 인한 계약해지 사례까지 속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러시아로 추정되는 유럽지역 선주가 LNG운반선 1척에 대한 중도금을 계약 당시 약속했던 기한 내 지급하지 않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해당 계약은 LNG운반선 총 3척을 1조137억원에 공급하는 내용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계약금액은 6758억원으로 줄었다. 나머지 2척에 대한 계약이 유지될 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사진.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사진.대우조선해양

업계에서는 선주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 사태로 금융제재 조치가 내려진 것을 핑계로 대금 납부를 소홀히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조선업계의 선주 횡포 사례는 한두건이 아니다. 업계 불황이나 외부변수가 잦을 수록 빈도가 심해진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조선소 신화에 각별한 도움을 줬던 그리스 선주 선엔터프라이즈의 조지 리바노스 회장마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수차례 주문선박의 설계사양을 바꾸고 완성선박 인도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선주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조선사들에 대한 갑의 지위를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당시 해운업황이 붕괴되자 선주들은 건조가 완성된 선박을 잔금조차 치르지 않고 조선소에 떠넘기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조선사들은 건조대금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선박을 리세일하기 일쑤였다.

글로벌 경제가 어렵고 조선소는 수주가 간절하다 보니 결제 방식도 ‘헤비테일’ 형식의 계약 체결이 대다수를 이뤘다. 헤비테일이란 선박 제작 기간을 5단계로 나누고 조선사가 선박을 다 만들어 넘겨줄 시 결제대금을 정산하는 일종의 후불 방식이다.

이러한 계약 형태는 수주관행에 고착화되면서 선주들의 입김이 더욱 올라가는 단초를 제공했다.

현재 카타르 프로젝트 상황도 마찬가지다. 사회통념상 원자재값이 급등하면 선가에 반영되는 것이 당연하나, 선주들이 발주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되기 때문에 한푼이 아쉬운 조선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통상 산업계에서는 원가변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원가 연동제 계약을 추구하지만, 조선업계는 꿈도 못꾼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원가연동제로 계약했다면 원자재가 리스크를 상쇄시킬 수 있지만 선주들이 받아들일 리 없다”라며 “선주가 일방적인 갑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8만 입방미터(㎥)급 LNG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8만 입방미터(㎥)급 LNG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 한국조선해양

결과적으로 조선사들이 목을 매고 있는 흑자 전환도 어렵게 됐다.

호황이 다시 왔다고 해도 3사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합산 영업손실은 9614억원에 달한다. 헤비테일 방식대로라면 결제대금은 2~3년 후에나 받을 수 있는 데다, 강재 및 기자재가, 외주비 상승 등으로 선박 건조 비용마저 증가한 탓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건조 비용 상승 때문이라도 선가를 크게 인상시켜야하지만 선주들은 꿈쩍도 않고 있다”라며 “그렇다고 마음대로 인상시킬 경우 발주를 안 하겠다고 버틸 수도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3사가 3년치 일감이라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3사 중 2곳은 연초 목표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

또 이러한 수주랠리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전세계에서 LNG운반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국내 조선사들이 거의 다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조선 시황 분석 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4월 선박 발주량은 전월 대비 36% 줄었지만 한국 조선 시장점유율은 1~4월 기준 46%로 전년 동기 대비 11%포인트 상승했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LNG선 발주는 계속 될 것”이라며 “베트남, 브라질 등에서의 해양 프로젝트 수주도 기대되기에 하반기로 갈수록 매출 성장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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