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여성가족플라자 전문강사 김상섭 씨

서초여성가족플라자 전문강사 김상섭 씨. 사진 구혜정 기자.
서초여성가족플라자 전문강사 김상섭 씨. 사진 구혜정 기자.

한창 회사 일로 바쁘던 시절,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던 엘리베이터에서 책가방을 멘 초등학교 3, 4학년 되어 보이는 아이를 만났다고 했다. 학원을 전전하다 밤 11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간다는 아이. “이제 들어가서 쉬겠네?”라고 물었더니 “씻고 숙제하다가 새벽 1시나 2시가 돼야 잘 수 있다”는 충격적인 말이 돌아왔다. 한참 뛰어놀다 잠이 들어도 모자랄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로 “뒤통수를 세차게 걷어차인 느낌이었다”고 김상섭(53) 씨는 말했다.

“그때부터 교육에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원래는 한진해운을 시작으로 해운 관련 업종에서 오래 일했어요.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이 왔을 때 비상근으로 일하겠다고 했어요. 임원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니 하루 종일 회사에 나와 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죠. 다행히 제안을 받아주셨어요.”
덕분에 회사는 임원에게 줘야 하는 급여를 줄일 수 있었고, 그는 교육과 관련한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었다. 현재 서초여성가족플라자에서 전문강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이나 학교 현장에 찾아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변화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어떻게 습득할 것인지 등에 대해 강의한다. 올해 초 ‘학습 코디네이터 전문가 양성 과정’을 개설해 강사를 직접 양성하는 전문 강사 활동도 병행하게 됐다. 

서울시 서초구 내곡중학교 학생이 김상섭 씨과 함께 한 강의 이후 쓴 소감. 사진 김상섭 씨 제공.
서울시 서초구 내곡중학교 학생이 김상섭 씨과 함께 한 강의 이후 쓴 소감. 사진 김상섭 씨 제공.
서울시 서초구 내곡중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한 자기주도학습법. 사진 김상섭 씨 제공.
서울시 서초구 내곡중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한 자기주도학습법. 사진 김상섭 씨 제공.

뛰어 놀지 못하는 아이들
“그 아이를 만난 이후 주변을 돌아보니 길거리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가 되면 학원 버스를 타고 오죠. 이건 문제가 있다 싶었죠. 제 아이가 사실 국제중학교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나왔어요.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고 기숙사 생활도 해서 제 아이에게는 별다른 사교육을 시켜보지 않았어요. 남의 일로만 생각했죠. 마침 제 아내도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아 엄마들 모임도 다니고 많은 얘기를 듣고 오더군요. 그 아내가 전해주는 이야기도 충격적인 것이 많더라구요.” 
사교육에 대한 인식이 생겼을 때 이미 아들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였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용돈 벌이를 위해 과외를 시작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아내와 함께 ‘강남코디의 중고등학교공부법(북루덴스)’이라는 책을 내게 됐다.
“제 아들이 과외 강습을 했는데 학생의 부모는 자녀의 학습상태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과외가 끝나면 아이의 학습상태를 제 아들에게 확인한 아내가 아이의 상태에 대해 그 엄마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해요. 어쩌다보니 학습컨설팅이 되어 버린거죠. 이런 경험과 저의 연구를 바탕으로 책을 냈습니다. 저희 부부가 대치동 스타 강사도 아니고 오로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거 말고는 없었어요. 마침 사교육 이야기를 다뤘던 드라마 ‘스카이캐슬’ 인기 덕에 출판이 앞당겨졌습니다. 2019년 1월에 나왔는데 꽤 많은 분이 책을 봐주셔서  두 달 만에 대한민국 작가 5%만 경험한다는 2쇄 발행도 했고요.”
책 한 권 쓰고 나서 블로그 활동도 꾸준히 하면서 ‘강남코디 공부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강의 활동에 뛰어들었다.
“저는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공부를 싫어하는 이유와 해야만 하는 이유부터 알려줍니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이걸 배워서 어디에다 쓰냐?’란 생각도 있잖아요. 저는 이걸 어디에다 써먹는지 알려줘요. 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관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생활에 쓰이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요.”

3년 전 은평구립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 강의 모습. 김상섭 씨 제공
3년 전 은평구립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 강의 모습. 김상섭 씨 제공

서초여성가족플라자 청일점 강사
김 대표를 만난 날은 정규과정 이후 보강수업 개념으로 수강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첫 제자이자 훗날 동료들이 될 수강생들과 차분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주위에 남자라고는 서초여성가족플라자 사무실 직원 말고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수강생도 전원 여성이었다.
“제가 서초여성가족플라자 근처에 있던 아파트에 살고 있었거든요. 마트에 가는데 전문가 양성과정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제가 연구하고 고민하는 전문 분야 중에 학습코칭 과목이 있었는데 마침 학습코칭 전문가 과정이 있더라고요. 과정을 이수하면 학교를 배정해 줘서 학생들에게 자기주도학습을 가르칠 수 있도록 강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더라구요.”
공부법 책을 낸 이후였지만 혼자 강의처를 찾아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교육받고 안정적으로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여겨졌다.
“처음에 서초여성가족플라자의 문을 열고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여성뿐만 아니라 가족이잖아요. 저는 가족이니 여기에 다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왔어요. 딱 신청하는데  남자분이 왜 오셨어요. 이러지 않았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이 대해주시더군요.”
듣고 싶었던 교육과정은 서초여성가족플라자 경력키움센터의 프로그램으로, 모든 과정은 성별 구분없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기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인원 문제로 강의가 자꾸 폐강됐습니다. 결국 6개월을 기다려서 등록했지요. 수업을 들으면서 지금 교육 방식과 비교하고 제가 생각하는 학습의 방향과 강의의 내용을 정리하고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수료 이후 전문가 과정 수료생들과 함께한 3개월 인큐베이팅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전문가 과정 밟은 분들이 모여서 발성법이라든지 강의요령, PPT 작성법과 기타 많은 것을 배우는데 10회차 정도를 했습니다. 두 번까지만 결석을 허용했어요. 다른 지역 강의가 이미 잡혀 있어서 두 번은 못 나갔지만 그 외 시간엔 다 츨석했습니다. 자조 모임도 있었어요. 함께 배운 사람들까지 학습안도 만들고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유용했어요.”    

김상섭 씨는. 이제 후배이자 제자, 동료가 될 강사를 키우는 전문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김상섭 씨는. 이제 후배이자 제자, 동료가 될 강사를 키우는 전문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학교에서 배운 지식 언젠가 써먹는다
강사로 처음 갔던 곳은 서문여중이었다.
“첫 강의가 기억에 남습니다. 강사들이 이틀에 걸쳐 방문했어요. 어떤 선생님이 첫날 수업이 참 힘들었다던 반에 들어갔는데 저는 나올 때 박수 받고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 알았던 거죠. 공부는 왜 해야 할까? 이거 어디다 써먹을까? 그 얘기만 해도 1시간 금방 지나가죠.” 
사람이 다 다른 것처럼 공부의 방법 또한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각자 스스로 맞춰서 만들어보라고 했어요. 제가 강조하는 것이 메타인지입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죠.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주관적인 존재예요.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메타인지는 사실 한 번의 강의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한계가 있죠. 그런데 부모는 계속 같이 있잖아요. 아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떤 습관이 있는지, 능력치가 얼마 만큼이고 등등 뭐든지 다 안단 말입니다. 옆에서 아이의 모자라는 부분을 학부모가 알아주고 격려해 주고 학습의 방법까지 같이 만들 수 있으면 좋을 거예요. 그래서 제 강의프로그램 이름을 ‘학부모가 알고 싶은 모든 정보’라고 붙였어요.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김 씨는 학교에 가서 아이들도 만나지만 공공도서관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많이 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분당 구미도서관, 용인 수지도서관 등 좋은 학부모가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한다. 또한, 서초구청의 공모사업을 통해서도 많은 학부모들에게 자녀 교육과 관련된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제 강의를 빠지지 않고 전부 다 들으시는 분들이 꽤 되더라고요. 6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분들에게 제가 마지막까지 강조하는 것은 학습이란 學(배울 학)과 習(익힐 습)이라는 사실입니다. 배우고 익혀야 완성되는 것이 학습인데 우리 아이들은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아요. 배운 것을 어떻게 익힐 것인가를 알려드리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다 같은 교육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맞을 수는 없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죠. 학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다 같은 교육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맞을 수는 없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죠. 학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앞서 언급했지만 김 씨는 서초여성가족플라자 경력키움센터에서 강사를 양성하는 전문 강사가 됐다.
“4차 산업사회는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어요. 기존의 학습 코칭프로그램이 지금 상황에 맞게 한 단계 높아지고 달라져야 한다고 서초여성가족플라자에서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와 같은 강사를 한번 양성해보자고 했습니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학습의 방향을 제대로 설명해 줄 강사가 많아지면 그만큼 공부 때문에 고생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죠”
김 씨는 전문가양성 과정 수업을 준비하면서 이론도 다시 정리하고 들여다보게 됐다. 학부모가 아닌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작업이다 보니 더 세심하게 수업을 준비했다.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서초여성가족플라자에서 전문 인력을 키울 때 주로 외부에서 강사를 모셔왔습니다. 제 경우 이곳에서 강사가 됐고, 이제는 강사를 키우는 전문 강사까지 됐잖아요.  내부 강사가 자체적으로 강사를 양성한다는 점이 서초여성가족플라자에게는 의미 있는 일일 겁니다. 저 역시 이만큼 성장하게 된 것이 영광입니다.”
기존의 학습코칭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학습 코디네이터라고 이름을 달리한 이유도 있다. 코칭은 학습에만 신경 쓰지만, 코디네이터는 학습과 함께 학생의 컨디션, 심리관리, 인문학 등을 다 아우르고 있다. 김 씨는 이 모든 것이 잘 조화될 때 좋은 학습이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사실 40대까지만 해도 돈 안 되는 건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50대 들어가면서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사회봉사처럼 돈 아니라도 가치  있는 일이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강사료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저를 원하는 곳이 있으면 강의하러 갑니다.” 

그는 오랜 세월 해운업계에 있으면서 생각해본 적도 없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현실화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익숙하고 안정적이었을지 모를 기존의 업무를 줄이고 새로운 도전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50이 넘은 나이지만 우연히 가지게 된 관심 분야를 끊임없이 연구하며 현실화시키는 삶을 살고 있다.
“제가 지금까지 가장 잘 한 일은 남자인데도 여성들이 주로 찾는 서초여성가족플라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일이 보이고, 새로운 즐거움이 생깁니다.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면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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