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숙 논설위원, 동의대 융합부품 소재 핵심연구지원센터 부소장

 원미숙 논설위원
 원미숙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면서 탈원전 정책 기조에 의하여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 중단과 계속운전 금지 등이 시행되던 시절, 원자력계 인사들의 심각한 고민을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5년이 지난 후,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정책·공약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면 폐지하고 원전기술 개발과 수출 확대로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하였다. 신한울 3·4호 건설 재개와 가동원전의 계속운전 등을 통해 기저전원으로서 원자력발전(원전) 비중을 30%대 유지하겠다는 원자력 진흥정책 기조이다.

원전 활성화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원, 원전산업 기반 조성 및 기술경쟁력 강화, 2050 탄소중립 불확실성 해소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원전을 늘리는 경우 발전 후 반출되는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및 관리시설 건설에 대한 대책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석유파동이 있었던 1970년대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며, 이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개시한 고리1호기 이래 현재는 24기의 원전이 운영되고 있다. 건설 중인 4기의 원전과 발전사업 허가 후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를 포함하면 추후 더 많은 원전이 운영될 것이다. 이에 따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원전에서 발생되는 사용후 핵연료는 모두 발전소 내 저장시설에 임시 저장되고 있다. 일부 원전의 임시 저장시설은 저장용량 포화상태가 임박하며, 월성원전(2022년 초)부터 시작하여 한빛·고리원전, 한울원전, 신월성원전 순으로 10년 이내에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영구 처분을 위한 구체적 대책이 수립되지 않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은 열 발생률과 방사능 농도에 따라 고준위 폐기물과 중·저준위 폐기물로 분류되며 분류에 따라 처분방식을 정하고 있다. 원전에서 발생되는 방사성 폐기물은 적절한 처리 후 부피를 줄이고 안정된 형태로 전환시킨다. 그다음 탄소강 드럼 등의 포장용기에 넣어 발전소 부지 내 저장고에 임시 저장하고 중간저장 과정(원전 운영국의 약 70%가 운영 중)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지하 500m 이하의 심지층(深地層)에 영구 처분함으로써 인간의 생활권으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것이 안전한 장기 관리 방법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인류의 생활반경으로부터 수십만 년 격리해야 하므로, 관리시설의 입지 선정은 지질적 안정성과 지역 주민의 수용성 모두를 만족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최종 처분장 등의 부지 조사, 주민투표, 지역지원, 기술 개발 등은 20여 년의 장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사용후 핵연료 관리를 책임지고 전담하는 정부조직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여야 하며, 저장 및 처분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월, 원전 및 천연가스를 Green Taxonomy(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전문가 검토를 거쳐 2023년 1월부터 적용토록 승인하였다. EU가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원자력 진흥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원자력에너지가 EU Green Taxonomy로 분류되려면 사용후 핵연료를 2050년부터 처분하기 위한 상세 계획안을 제시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계획안 작성 이전에 사용후 핵연료 국가 관리정책을 결정하고, 확고한 기술적 해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은 국가별로 크게 다르며 원전 운영 주요국은 발전소 내 또는 외부에 저장시설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미국 등 다수 국가들은 영구처분장 확보에 장기간 노력해 왔다. 이 중 핀란드는 1983년 부지 확보에 착수한 후 2001년에는 지역주민 합의로 부지를 결정하고, 현재는 지하 450m 암반의 심층처분장 건설이 완공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도 오랜 기간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대한 정책과 제도 수립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 왔으나 관리정책의 최종 결정은 유보 상태에 있다. 1986년부터 방폐장 부지 확보에도 정부가 공을 들였으나 지역주민,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혀 최근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 공론화의 물꼬를 튼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2013.10~2015.6) 이후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2019.5~2021.3)에 의하여 총리 산하의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 특별법 제정, 중간 저장과 영구 처분을 한곳에 설치 등을 포함하는 권고안도 제시되었다. 2021년에는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도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국회 산자위 소속 김성환(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방안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2019년 2월)하여 현재 상임위 심사 중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관리정책 수립과 관리시설의 부지 선정 과정에서 민주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독립 기구 설치, 안전 관리를 위한 절차와 책무를 규정하는 특별법이다.

그러나 민생법안 우선 및 정권교체 시기에 맞물려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의 일관성 부재도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의 최종 결정 유보의 큰 이유이다. 원전 최강국을 지향하는 새 정부는 원자력 활성화뿐만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 관리에 대한 구체적 일정과 이행 절차, 처분방법 등이 포함된 여야 합의의 법제화를 통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이행하여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 설계 방법과 성능평가 기술에 대한 연구와 과학적인 핵심기술 검증, 그리고 실질적 안정성 검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방사성 독성을 감소시켜 사용후 핵연료 처분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 후 재사용할 수 있는 파이로기술에 대한 연구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에 약 95% 잔존하는 핵물질의 처리기술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원자력 전주기(全週期)를 완성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지역주민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하여 데이터에 의한 과학적 합리성을 제공하는 것은 연구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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