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전 ‘속도전’ 택한 尹, “산은 이전 공약 집행” 강조

수출입은행, KIC, 수협 등도 거론...산은 "득보다 실" 강력 반발

금융권 전반 ‘반대 기류’…시중 금융사로의 확산 여부도 주목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 구혜정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 구혜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거침없는 ‘이전(移轉)’ 행보에 국책은행을 포함한 금융업계 전반이 긴장하고 있다. 다소 무리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청와대의 용산 이전을 전격 결정하자 그간 윤 당선인의 공약 중 하나인 ‘국책은행 본점 이전’ 가능성도 보다 구체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윤 당선인의 본점 이전 공약의 방점이 ‘지역 균형 발전’에 찍혀있다는 점에서 국책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들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당장 금융업계는 해당 공약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지만, 청와대의 용산 이전과 같은 특유의 리더십이 금융권에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내놓은 국책은행의 본점 이전 공약을 놓고, 직접 당사자인 국책은행을 포함한 은행업계 전반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을 비롯한 주요 국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윤 당선인이 언급한 국책은행은 산업은행을 포함해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KIC), 수협중앙회 등이다.

윤 당선인이 이러한 공약을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지역의 균형 발전이다. 부산이 글로벌 해양 도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금융 분야의 지원이 필수인데, 이를 주요 국책은행의 본점 이전을 통해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은 비단 이번 대선에서만의 이슈는 아니었다. 그동안 정치권, 특히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부산·경남 지역 주요 후보들은 국책은행 본점 유치를 공약으로 꾸준히 내세워왔다.

이미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본격화된 지난 2020년 무렵,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꾀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국가 주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검토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의 반대로 논의가 수면으로 떠오르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며, 공수가 뒤바뀐 모습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직접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필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윤석열 당선인의 의지만 강하다면 이번에는 이러한 이전 바람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청와대의 용산 이전은 윤석열 당선인이 당선증을 받은 시점(3월 10일) 이후, 불과 10일 만에 결정됐다.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방향을 선회한 시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과 일주일 사이 청와대의 용산 행이 결정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청와대의 용산 이전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만큼, 다음 정권에서 국책은행의 본점 이전이 쟁점화되면 발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이전 당사자인 국책은행뿐 아니라 은행업계 전반이 부산행 자체를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차기 정부가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 KDB산업은행.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 KDB산업은행.

본점 이전 놓고 당선인-국책은행 측 ‘팽팽’

당장 본점 이전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분류되는 산업은행 측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조뿐 아니라 이동걸 산업은행장 또한 “(산업은행) 본점 이전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정면 반박했다.

특히 이 행장은 부산 이전 공약을 내건 윤석열 당선인(당시 후보)을 향해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라며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산업은행은 본점의 부산 이전이 오히려 금융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본점을 이전하면 수십 년간 쌓아온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금융과 정부 주도의 기업구조조정을 전담하는 산업은행의 특성상, 본점이 부산으로 내려가면, 이 같은 핵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부에서 제기된다.

특히 현재 주요 국책은행 대상 법률에 따르면 주요 국책은행의 본점은 ‘서울’에 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본점 이전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한데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쉽게 합의해줄지도 불명확하다.

조윤승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산업은행의 본점 이전은 국가 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방패인 산업은행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며 “엄연히 상장된 회사의 본점 위치를 대통령이 무슨 권리로 좌지우지하려 하느냐”라고 비판했다.

반면, 윤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 그리고 부산시는 국책은행 본점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부산시의 경우, 산업은행 본점 유치가 다른 금융사와 기업, 투자사들의 동반 유치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는 모습이다. 나아가 산업은행 본점 유치로 ‘제2의 도시’에 걸맞지 않게 산업 역동성을 잃어버린 부산 경제의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진. 산업은행
사진. 산업은행

본점 이전,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까

이번 산업은행의 본점 이전 이슈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러한 흐름이 비단 국책은행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국책은행의 본점 이전이 가시화될 경우, 시중 금융사들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유세 과정에서 부산을 찾은 윤석열 당선인은 “산업은행 하나로는 부족하다”며 “대형은행과 외국은행들도 부산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산업은행을 제외한 국책은행, 나아가 일반 시중은행 본점의 연쇄 이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 같은 윤 당선인의 공약에 시중은행 내부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 공시, 정부 차원의 예대마진 관리 등 일선 업계와 각을 세우는 공약을 내세운 상황에서 본점 이전까지 강제할 경우 더 큰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당선인 시절부터 이미 관치금융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시중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아직 시중 은행 및 금융사의 본점 이전과 관련된 정확하거나 구체화된 메시지는 없었다고 본다”면서도 “부산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었을 뿐, 민간 금융사에까지 본점 이전을 권고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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