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5번째 도전’…가능성은 ‘글쎄’

기업은행‧우리금융도 유력 후보…‘노동이사제’도 변수 될 듯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 관계자들이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사외이사 후보 추천제 도입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KB금융 노동조합.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 관계자들이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사외이사 후보 추천제 도입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KB금융 노동조합.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오랜 기간 국내 금융업계의 화두 중 하나였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올해는 현실화 될 수 있을까. 최근 KB금융 노동조합이 민간기업 최초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추진을 공식 선언하며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의 현실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에 오는 3월 일부 사외이사의 임기 만료를 앞둔 IBK기업은행도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재도전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올해 금융권 전반에서 노조추천이사제가 또 한 번 이슈의 중심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오는 3월 말 진행 예정인 정기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자리에 김영수 전 수출입은행 부행장을 후보로 추천한다.

현재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는 총 7명으로 이번 3월 말 모두 임기가 종료된다. 특히, 이 가운데 1명은 사외이사 최대 임기인 5년을 채웠다. 아직 최대 임기를 채우지 못한 6명의 사외이사는 연임이 가능하지만, 5년 임기를 채운 사외이사 1명은 무조건 교체된다.

현재 KB금융은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복수의 후보군을 선정하는 ‘사외이사 예비후보 추천제’를 운영하고 있다. 후보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도 별도의 검증 및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법령 상, 의결권이 있는 주식 0.1% 이상을 보유했을 경우 별다른 과정 없이 곧바로 안건을 주총에 상정할 수 있다. KB금융 노조는 노조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기반으로 ‘사외이사 예비후보 추천’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사외이사 후보 안건을 주총에 상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여의도 KB금융 신관 앞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노조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번 사외이사 추천은 노조의 경영 참여 목적이 아닌, KB금융의 약점 중 하나인 해외사업을 보완해 글로벌 금융사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에는 반드시 주총에서 사외이사 추천 건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노조측의 주장에 대해 일단 KB금융지주측은 적극 반박하고 있다. KB금융지주 이사회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사회 내에는 미국 월가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등 금융, 재무 분야의 글로벌한 전문성을 갖춘 이사들이 많다”며 “예를 들어, 미국 국적의 메트라이프생명 회장을 역임한 솔로몬 이사는 해외와 국내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사업에 대한 주요 자문과 해외 주주대상 소통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4전 5기, 이번에는 성공할까

금융업계가 이번 KB금융 노조의 시도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번 도전이 그동안 금융업계 노조 측의 숙원사업이었던 사외이사 추천제 도입이 현실화되는 최초의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사실 KB금융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 관련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KB금융 노조, 우리사주조합은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시도해오고 있다. 올해 도전이 노조 추천 사외이사 후보 선임을 위한 다섯 번째 시도인 셈이다.

20일 열린 KB금융지주 제12기 정기 주주총회 현장. 사진. KB금융지주
 KB금융지주 제12기 정기 주주총회 현장. 사진. KB금융지주

꾸준한 시도에도 매번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실패한 근본적 원인은 전체 지분의 70% 이상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주주의 찬성표를 얻지 못해서였다. 이 가운데 핵심 주주 중 한 곳인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지속적으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이들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앞서 언급한 ‘예비후보 추천제’의 패싱이었다. 사측에서 마련한 예비후보 추천제를 건너뛰는 것은 정식 사외이사 후보 추천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으로, 후보 자격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조가 사외이사를 통해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나아가 향후 CEO를 포함한 주요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이번 다섯 번째 시도 역시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다소 크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여전히 반대 의견을 피력한 주주가 건재한 데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예비후보 추천제를 거치치 않고 바로 안건으로 상정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오는 3월 대선을 앞두고 진행될 이번 시도가 이전과 조금은 다른 분위기 속에서 논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대선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 원칙적으로 사외이사 선임에 일정 부분 노조의 영향력이 미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주와 사측이 이전처럼 무조건 반대 입장만을 고수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사측 및 주주를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데 ‘글로벌 사업 강화’라는 근거는 솔직히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도 “일단 유력 대선후보 모두 노조추천이사제에 긍정적 입장이라는 점은 이번 사측의 판단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이사제 도입이 미칠 여파도 ‘주목’

업계에서는 이번 KB금융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논의를 시작으로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관련 논의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장 KB금융에 이어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도 오는 3월 기업은행 사외이사 2명의 임기 만료에 따른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도전한다.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왼쪽)이 취임식 현장에서  노조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왼쪽)이 취임식 현장에서 노조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특히 기업은행의 경우, 수출입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성공이 이번 도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은행과 함께 국책은행으로 분류되는 수출입은행이 지난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성공한 만큼, 이전보다는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고승범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해 10월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당시 수출입은행의 노조 추천 이사 선임을 언급하며 “노조추천이사제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도입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원론적으로 도입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특히 국회는 최근 본회의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운영법(공운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일부 공공기관은 당장 오는 하반기부터 노조가 추천한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 통과가 국책은행, 나아가 민간은행의 노조에서 사측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압박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번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시행이 당장 민간기업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광범위한 논의의 장을 여는 데는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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