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앞두고 지배구조 혁신 돌입…전담 TF 가동
친윤 인사, 사외이사로 영입…사내 전문가, 이사회 참여
후보 선정 과정서 정치권 압력…’낙하산 불가’ 입장 고수
주총서 찬반 표 대결 불가피…선임 후 중도낙마 우려도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 사진. KT.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 사진. KT.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KT가 배수진을 쳤다. 지배구조 개선에 돌입한 데 이어, 윤석열 대통령 캠프 경제특보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로 했다. 

주주총회까지 남은 기간은 3주 남짓, KT는 윤경림 그룹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할 계획이지만 가시밭길이다. 정부·여당이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며 비판한 데 이어, KT새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마저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자초했다고 날을 세웠다. 

내외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KT의 우호 세력은 모호하다. 주가 하락에 성난 소액주주들이 결집하고 있지만, 이들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 장담할 수 없다. 주총에서 표 대결이 벌어지면, 대표이사 선임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뜻이다. 윤 사장이 정부·여당·주요 주주 설득에 나선다 해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리더십 교체를 앞두고 최고경영자(CEO) 후보 선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KT의 경영에도 사실상 공백이 생겼다.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가 줄줄이 밀렸고, 올해 경영 계획 역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지배구조 혁신을 전면에 내걸고 여론전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 내정 첫 날, ‘지배구조 혁신’ 선언

9일 업계에 따르면, 윤 사장은 전날 지배구조개선태스크포스(TF·가칭)를 구성했다. 윤 사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와 과거 관행으로 인한 문제들을 과감하게 혁신하겠다”고 강조했다.

TF는 주요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지적받은 대표이사 선임절차, 이사회 구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모범규준 등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게 된다. 외부 전문기관에게 개선방안 수립을 맡긴 뒤 주요 주주 등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다. 최종안이 나오면 정관이나 관련 규정에 명문화해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이사회부터 변화를 준다. KT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6명 등 총 8명으로 이뤄져있다. 지난해 쪼개기 후원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박종욱 사장이 국민연금의 반대로 자진 사퇴해 사내이사 자리가 하나 비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비서관을 지냈던 이강철 이사와 라이나생명보험 대표를 지낸 벤자민 홍 이사가 대표이사 후보 선정 과정에서 사퇴해 사외이사도 두 자리가 공석이다. KT 정관대로라면 사내이사는 대표를 포함해 3명, 사외이사는 8명까지 늘릴 수 있다. 

KT는 새 사외이사로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선임한다. 임 고문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친 금융 전문가로, KDB생명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임기가 끝나는 강충구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여은정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표현명 전 KT렌탈 대표는 임기를 1년 더 연장한다.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업계에서는 KT가 정부·여당과의 관계를 최우선 고려한 결과로 평가한다. 규제산업 특성상 정부·여당과 매끄러운 관계가 필수적인데. 사외이사가 양측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실제 임승태 고문은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서 상임경제특보를 지냈다. 사외이사 임기를 3년에서 1년으로 줄인 것 역시 친윤 또는 친여 성향의 인물을 영입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새 대표 연착륙 이후 기존 사외이사를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사내이사는 전문성에 방점을 찍었다. 새 사내이사로 송경민 KT SAT 대표, 서창석 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부문장을 추천했다. 송 대표는 남중수 전 사장과 황창규 전 회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정통 KT맨으로 영업·기획·경영 전략 등을 두루 경험했다. 계열사 육성과 사업의 해외 확장 과정에 기여했던 만큼, 체제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송 대표는 경영안정화TF장도 맡는다. 

서 부문장은 본업 소홀 논란을 피할 카드다. 유무선 네트워크 전문가로 기술과 전략, 경영적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KT는 디지털플랫폼기업으로 전환을 꾀하면서 통신장애 사고가 연이어 터져 곤혹을 치렀다. 통신 전문성을 지닌 인물을 앉혀 국가기간통신사업자로서의 KT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읽힌다. 

배순민 KT AI2XL 연구소장이 KT의 초거대 AI '믿음'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KT.
배순민 KT AI2XL 연구소장이 KT의 초거대 AI '믿음'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KT.

3번이나 후보 선정 백지화

방어막을 세웠음에도 KT 내부는 뒤숭숭하다. KT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내부에서도 반신반의했던 디지코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끈 구현모 대표가 떠밀리듯 사퇴한 게 결정적이었다“며 “정부와 여당이 계속 딴지를 놓으니, 새로운 대표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KT 내외부에서는 구 대표의 연임을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구 대표가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KT의 주가는 90% 가까이 상승해 시가총액 10조원을 돌파했다. 2019년 1조1595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년 만에 44% 증가했다. 지난해엔 사상 처음으로 연간 매출 25조원을 달성했다. 

기업의 체질 개선을 통해 미래 동력을 발굴하고 신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았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한편,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바탕으로 기업간거래(B2B) 사업 경쟁력을 강화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으로 고성장 중인 미디어·콘텐츠 사업에서 KT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것도 구 대표의 공이 컸다. 자체 제작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박을 쳤다. 덕분에 KT는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비통신 경쟁력을 높였다. 

올해 청사진도 세워둔 상태였다. 초거대 AI인 믿음을 상용화하고 AI컨택센터(AICC) 사업 모델을 고도화하는 등 분야별 AI 서비스를 본격화할 참이었다. 로봇사업도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2025년 디지코 관련 매출을 50%까지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구 대표는 연임 적격 판정을 받은 뒤에도 2번이나 경선에 임해야 했다. 27명의 후보와 경합해 최종 후보로 확정되기가 무섭게 KT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불공정 경쟁을 문제 삼았고, 윤 대통령도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거론했다. 구 대표는 재경선을 요청하며 연임 의지를 드러냈지만 사퇴 압박에 밀려 스스로 물러났다. 

이후 3번째로 진행된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잡음이 계속됐다. 33명의 후보 가운데 18명이 외부인사였는데, 평균 연령이 64세에 달해 신기술 이해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외부인사 중에는 여권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권은희 전 새누리당 의원,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종훈 전 새누리당 의원(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대표적이다. 기업 경영에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ICT 산업과 거리가 먼 데도 유력 후보로 분류됐다. 특히 윤 전 장관은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경제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내정설까지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4명의 심층 면접 대상자가 확정된 이후에도 정부와 여당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민의힘 위원들은 “그들만의 리그”라며 ”내부 특정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도 “민생에 영향이 크고 주인이 없는 회사, 특히 대기업은 지배구조가 중요한 측면이 있다”며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가 일어나고 국민이 손해 볼 수밖에 없다는 시각에서 KT 대표 경선을 보고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내부 인물 고수…‘경영 불안’ 전망도 

CEO 후보를 선정했지만 KT를 향한 외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부당한 관행을 통해 지대를 추구하는 카르텔 세력의 저항, 적폐들을 제거해 나가야 국민의 삶이 더 편안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밝혔고, 다음날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은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통신업계에서는 KT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미영 KT새노조 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등과 함께 연 좌담회에서 “윤 후보 선임은 지난 20년간 이어져 온 CEO 리스크를 버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며 “이사회 구성 요건을 다양화해 상호 견제가 가능한 지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T는 내부 인물 발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데다, 디지코 2.0 계승을 위해선 독립경영, 자율경영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 까닭이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윤 사장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 사장은 통신3사와 CJ그룹, 현대차그룹을 두루 거친 인물로 IPTV를 시작으로 신사업을 개발하고 다각적인 제휴·협력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CJ, 현대차, 신한은행이 KT에 지분투자하는 데 한 몫 했다. 

관건은 KT의 뚝심이 통하느냐다. 처음으로 인선자문단을 꾸리고 심사 기준을 공개하는 등 공정성, 객관성을 강조했음에도 여권은 윤 사장에 대해 강경하다. ’구현모 아바타’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저격했을 정도다. 윤 사장은 주총에서 승인을 받아야 정식으로 CEO에 오를 수 있는 만큼, 반발 기류를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주총에서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민연금이 수차례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하다고 밝혀서다. 국민연금 지분은 10.12%에 달한다. 동시에 국민연금은 신한은행(8.29%)의 최대 주주이자 현대차(7.78%)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KT의 투명하지 않은 지배구조를 이유로 국민연금이 반대 표를 던질 경우 현대차(7.79%), 신한은행(5.48%)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현대차, 신한은행이 KT와 지분을 나눈 혈맹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주요 주주 결정이 윤 사장 선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의 수도 있다. 소액주주의 결집이다. KT 지분의 57% 가량은 소액주주가 쥐고 있다. 정치적 외압으로 KT 주가가 3만200원(8일 종가 기준)으로 주저앉으며 시가총액이 2조 원 이상 빠졌다. 이에 소액주주들이 주주모임 카페를 개설해 여론을 형성하고 주식을 모으고 있다 

주총을 통과하더라도 KT 흔들기는 계속될 공산이 크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KT 경영진 교체 시 성장전략과 주주환원 정책 측면에서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주총 이후에도 KT 경영불안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구현모 대표의 배임 의혹에 윤 사장이 관여했다고 여당은 주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사정당국이 일감 몰아주기, 불공정·담합 등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압력을 견디지 못한 윤 사장이 중도 하차를 택할 수 있다. 

실제 KT 수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난을 당했다. 이용경 전 사장은 연임을 포기했다. 남중수 전 사장과 이석채 전 회장은 연임에는 성공했으나, 배임 혐의로 두번째 임기 도중 물러났다.. 황창규 전 회장은 연임해 두번째 임기를 채웠지만, 사퇴 압박에 시달렸다. 구 대표는 연임 의사를 철회했다. 5명의 CEO 중 무려 4명이 좋은 않은 마무리를 한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KT의 수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다 물러나는 일이 허다했지만, 이번에는 도를 넘은 느낌”이라며 ”KT의 진짜 리스크는 정치권이다. 불합리한 개입이 지속될수록 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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