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등 주요 기업 줄줄이 임금 인상 선언
日 실질 임금, 1997년 이후 사실상 제자리
물가 오르자 소비 위축...정부 “임금 올려라” 압박
중소기업 동참 여부가 관건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데일리임팩트 이진원 객원기자] 도요타, 혼다, 유니클로, 닌텐도, 산토리 홀딩스, 미즈호은행.

최근 임금 인상을 단행했거나 단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일본의 주요 기업들 명단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는 20년 만에 최대폭으로 임금 인상을 단행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퍼스트 리테일링은 1월에 임금을 최대 40% 올렸다.

일본이 근원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최고 수준에 머물면서 그동안 오르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세계 3대 경제국인 일본 근로자들의 임금이 마침내 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디플레이션에 대한 사고방식이 고착화돼 있고, 지난 몇십 년 동안 임금보다는 고용안정을 더 중시한 나라가 일본이기에 지금의 임금 인상 분위기가 유지되려면 노동시장 유연성 등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구통계학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더불어 현재 주로 대기업들 중심으로 임금이 인상되고 있어 일본 기업의 99.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도 임금 인상에 동참해야 진정한 의미의 임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물가 뛰자 가계지출 위축

일본 기업들이 장기간 소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걸 주저하면서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대신 100엔 숍이나 저렴한 패스트푸드 매장 등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비용이 오르기 시작했을 때 현금 살포와 0% 금리 같은 부양책들이 동원됐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엔화가 약세를 보이자 마침내 이러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올해 들어 식용유, 냉동식품, 기저귀, 고속도로 통행료, 전기요금 등 수많은 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있는 것.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의 내수가 위축됐다. 12월 일본의 가계지출은 전년 동월 대비로 1.3%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성장과 유통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려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수 있게 기업들이 임금에 투자해야 한다면서 기업들을 압박하자 이를 견디다 못한 기업들이 마침내 임금 인상을 시작하고 있다.

日 정부와 중앙은행 “임금 올려라”며 기업 압박

일본에서 매년 봄에 진행되는 노사협상인 ‘춘투(春鬪)’를 앞두고 1월 기시다 총리는 일본 기업들에게 소비 지출 확대 차원에서 4%인 인플레이션율 이상으로 실질 임금을 인상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래야 일본 경제가 팬데믹에서 본격 회복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꾸준히 쌓여온 경제성장의 토대 위에 지속가능한 임금 인상을 위해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무엇보다 물가 상승률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4월 8일 퇴임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 역시 임금이 충분히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지속가능하게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를 달성할 때까지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해왔다.

이번 달 요미우리 신문이 실시한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90% 이상은 물가 상승이 가계 살림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고, 60%는 현재 상태를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야마다 히사시 일본연구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재팬타임스에 “기업들이 강력하고 인상적인 실적을 내는 가운데 사내 유보금도 역대 최고 수준을 찍었다”면서 “이제 일본 기업들은 경쟁력을 갖추고 직원들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 가격과 함께 임금을 올려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 동참 여부가 중요

전문가들은 일본 노동인구의 약 70%를 채용하면서 생산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중소기업들도 임금 인상 움직임에 동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들이 임금을 인상해줘야 물가 상승이 소비 지출 위축으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다이도 생명보험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약 9,000곳의 중소기업 가운데 불과 34%만이 근로자 임금을 올려줄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또 이 중 15%만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인 4%보다 더 높게 임금을 올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세제 혜택이나 전기요금 보조금 확대 등 다양한 ‘당근책’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고 있다.

日 정부 노력에도 임금은 25년째 제자리

노동시장이 타이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일본의 임금 문제는 일본 정부가 해결해야 할 ‘미스터리’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

물론 선진국 중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실질 임금이 오르지 않은 나라가 일본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의 더딘 임금 상승률은 독보적이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달러 기준으로 2021년 일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만9,711달러(약 5,200만 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근로자 평균인 5만1,607달러(약 6,800만 원)보다 훨씬 더 낮다. 이는 미국 근로자 임금 평균과 비교해서는 절반이 약간 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일본의 실질 금리가 1997년 이후로 25년째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일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만8,395달러(약 5,040만 원)였다.

<이진원 객원기자 주요 이력>

▶코리아헤럴드 기자 ▶기획재정부 해외 경제홍보 담당관 ▶로이터통신 국제·금융 뉴스 번역팀장 ▶ MIT 테크놀로지 리뷰 수석 에디터 ▶에디터JW 대표 (jinwonlee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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