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금융 때리기' 긴장 고조..금융 과점체제 깨질까?
"임기초 '자율성’ 정책 기조와 엇박자" 금융권 불만 비등
"과도한 욕심으로 매를 벌었다" 새 시스템 지지 여론도

윤석열 대통령.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윤석열 정부의 금융분야 정책의 방향성은 금융산업의 자율성과 역동성,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인수위 시절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 관계자)

취임 초, 금융업 자체의 경쟁력을 제고해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전략이 실제 정책 방향성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대출금리 인하, 과도한 예대금리차 극복 등 금리부문에 초점이 맞춰졌던 취임 1년 차에 이어, 취임 2년 차인 올해는 연초부터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금융사의 지배구조를 타깃으로 연일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과도한 개입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많은 주주를 보유한 일종의 민간기업이라는 금융사의 또 다른 정체성은 외면한 채 소위 ‘공공재’라는 이름으로 공적인 영역에서의 역할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자율성 기반의 금융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본질적 접근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금융사 역시 최근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일부 이슈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해묵은 과제라는 점을 들어 자정 시도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한다.

인수위 가동 시절, 좌담회에 참석한 안철수 인수위원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인수위 가동 시절, 좌담회에 참석한 안철수 인수위원장. 사진. 구혜정 기자

“경쟁력 강화 근간은 자율성” 강조했는데..

2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금융당국이 나서 금융권 혁신을 압박하는 가운데, 정작 尹 정부 출범 초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금융업 경쟁력 강화’는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선 이후, 윤석열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슬로건으로 금융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일각에서는 껍질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현 정권의 방향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눈길을 끌었다.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은 “금융행정 시스템 혁신, 디지털자산 투자환경 조성 등 미래 금융을 위한 혁신에 나설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금융산업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역동성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조는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은 주요 금융사 CEO들을 만나 “자율성을 기반으로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겠다”며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에 화답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권의 기대감은 불과 몇 개월 만에 무너졌다. 시발점은 과도한 예대금리차 논란과 관련한 ‘이자 장사 논란’이었다.

실제로 이복현 금감원장은 국내 시중은행장들과의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직접적으로 ‘예대금리차’를 언급하며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 이복현 원장은 “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며 “은행들이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금리를 산정·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은행업계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는 ‘이자 장사’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설계자 윤석열, 금융권 수술대 올렸다

사실 예대금리차 논란을 처음 이슈화시킨 인물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과도한 예대금리차가 취약차주들의 양산을 야기한다며, 당선되면 은행의 예대금리 구조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언급했던 이복현 원장의 당시 발언 또한 윤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후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금융권 때리기’는 지속됐다. 특히 고금리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역대급 이자수익을 거둔 금융권이 정작 사회환원보다는 성과급 잔치를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러한 금융권 압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며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은행권 내 성과급 지급을 ‘돈 잔치’로 규정한 셈이다.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 특정 산업군과 기업들을 연일 때리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적 반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금융당국과 정부의 과도한 비판이라는 우려보다는, 서민들이 낸 이자로 그들만의 돈 잔치 또는 이자장사를 벌였다는 점에 더욱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공동취재사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공동취재사진.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특히 이 같은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업계 때리기는 소위 금융소비자의 권익 증진과 보호라는 프레임 안에서 힘을 얻은 측면도 있다”며 “눈에 보이는 이자, 실적 등 수치상 지표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단 맞으면서 해법을 모색하자는 것이 현재 금융업계의 스탠스”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같은 윤석열 대통령의 스탠스를 바라보는 금융업계의 시선이다. 데일리임팩트가 만난 대다수 금융권 인사들은 일련의 관치 흐름과 관련해 금융당국보다는 대통령실에 더 아쉬운 소리를 쏟아냈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금융당국과 달리 대통령실은 사실상 ‘지시 편달’의 위치에 있는 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금융권을 압박하는 건 과거에도 보기 힘든 사례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금융지주사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실제로 문재인 정권 초반, 청와대 정책라인에서 비공식적으로 지주사 회장들 불러 ‘인사에는 개입 하지 않겠다’라고 선을 그었다는 얘기는 업계 내부에서 유명한 정설”이라며 이후 실제로 청와대뿐 아니라 당국에서도 실질적인 개입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반면, 현 정권의 경우 대통령과 대통령실에서 직접 나서 압박하거나 관치를 부추기는 형국”이라며 “이미 4대 금융지주사 내부에서는 이명박 정권 시절 득세했던 소위 ‘4대 천왕’이 다른 형태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라고 언급했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권 내 ‘과점구도 개편’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며 다시한번 은행권에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과도한 예대마진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를 두고 “은행산업의 과점구조가 가져온 폐해”라고 표현한 것인데, 사실상 현재 4대 시중은행 중심으로 고착화된 국내 은행산업을 대표적인 과점 구조의 업종으로 분류한 셈이다.

당장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를 구축하고 지난 23일 첫 회의를 진행했다. 금리체계, 성과급 및 보수체계 등 다양한 안건이 논의될 해당 TF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은행산업의 과점체제 재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첫 회의였음에도 큰 방향성은 나왔다는 평가다. 우선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로 구축된 인터넷전문은행의 4번째 플레이어 도입에 더해 △소매(개인)금융 △중소기업금융 △디지털금융 등 특정 영역에만 한정된 스몰라이센스 은행 도입이 논의됐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금융사 내 과도한 성과급 잔치를 제한하기 위해 임직원 성과급에 대한 환수 및 삭감을 의미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 강화 또한 의제 테이블에서 거론됐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물론 현 정부의 과점체계 개편 움직임을 과거의 은행권 재편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면서도 “금융업계 자체의 경쟁력 제고가 아닌 단순 금리 안정화에서 파생돼 출발한 과점체제 개편 논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제1차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TF의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소영 부위원장. 사진. 금융위원회.
제1차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TF의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소영 부위원장. 사진. 금융위원회.

이자수익에 돈잔치, 금융권 ‘매를 벌었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같은 금융당국과 정부의 금융권 때리기가 금융소비자들에게 ‘시원한 타격감’으로 다가간 데에는 금융업계가 일부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분위기도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지난 1년 새 2.5%p 이상 치솟은 기준금리의 여파로 대출금리가 올라가면서 역대급 이자수익을 거뒀음에도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는 다소 소홀했다는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 2021년 사회공헌 비용은 6354억원으로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4대 시중은행의 순이익 대비 사회공헌비 비율도 2021년 평균 6.23%에 불과했는데, 같은 기간 4대 시중은행의 실적은 무려 36%가량 급증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판을 의식한 은행권이 부랴부랴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향후 3년간 10조원 이상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거센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다소 늦은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특히, 성과급 논란은 이러한 금융당국의 압박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급한 성과급 규모는 전년 대비 35%(3630억원) 확대된 1조3923억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 2021년 실적을 반영해 지난해 지급한 것인데, 전년 대비 실적이 개선된 지난해 실적이 반영돼 올해 지급될 성과급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실제로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은 2022년 임단협 협상을 통해 임금인상률과 성과급 지급률을 전년 대비 확대했다. 모든 은행이 직군과 관계없이 최소 3%의 임금인상을 확정했고, 성과급 또한 기본급의 최대 400%까지 지급한다.

각 사별로 구체적인 직군별 연봉 등을 공개하고 있지 않은 탓에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지난해 성과급과 연간 실적을 감안하면 최소 1조4000억원은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 같은 ‘돈 잔치’만이 금융업계에 대한 불편한 시선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금융업계 내 내부통제 이슈를 부각시킨 일부 은행 내 직원 횡령 사건부터,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 회피 등 스스로 신뢰도를 깎아 먹는 행보를 걸은 점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내부 규칙에 따른 노사 간 협의를 통해 성과급이 책정된 것”이라면서도 “외부에서의 불편한 시선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많은 대출 차주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금리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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