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 불구 작년 2.1% 역성장 그쳐
전문가들 “러 정부, 국민 복지보다 국방비 지출 늘리는 데 혈안”
인플레 압력 커지고, 소비 줄어...석유·가스 수출은 차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픽사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픽사베이

[데일리임팩트 이진원 객원기자]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는 지난해 예상외로 선방했지만 올해는 시련의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비관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러시아 정부는 자국 경제가 1998년 금융위기나 소련 붕괴 직후보다 더 심각한 12% 이상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일각에서는 금과 외환보유고의 절반 가량이 동결되는 등 유례없는 제재에 직면하게 된 러시아 경제는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었다.

러 경제 작년 2.1% 역성장...서방 제재 불구 ‘선방’ 평가

그러나 21일(현지시간)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는 작년에 2.1% 역성장(전년대비)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망한 2.5% 마이너스 성장보다도 나은 수치다.

푸틴 대통령은 경제가 예상보다 선전하자 21일 국정연설에서 “러시아 경제와 통치 시스템은 서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면서 “그들의 계산은 틀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중국, 인도, 중동 국가 등과의 무역은 증가했지만 수입은 급감하면서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낸 게 러시아가 제재 충격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었던 비결로 풀이된다. 여기에 중앙은행은 공격적인 자본통제로 통화 위기를 막아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1분기 물가 상승률과 경제 성장률을 전년동기대비 각각 3.6%와 –2.4%로 전망했고, 올해 전체 물가 상승률은 5~7%, 경제 성장률은 –1~1%로 예측했다.

전문가 전망은 여전히 비관적

하지만 러시아의 경제 회복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여전히 비관적이라는 게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의 분석이다.

러시아가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내 ‘특별 군사 작전’으로 인해 앞으로도 상당한 기회비용을 장기간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게 이유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만 해도 러시아 정부는 작년 러시아 경제가 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마이인베스트먼츠텔레그램 채널의 그리고리 지르노프 분석가는 “러시아 경제가 작년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과거의 트렌드가 유지됐다고 쳤을 때 나타났을 결과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비교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경제가 2025년까지 2021년 수준 정도로도 회복하기 힘들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달성할 수 있었을 성장률에 도달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국민 복지보다 국방비 지출 부담 커져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국민의 궁핍한 생활은 안중에도 없고 국방비 지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지속가능한 경제 개발과 자급자족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실제로는 병원과 학교 등을 위해서 써야 할 돈마저 국방비에 쓰는 등 국방비를 늘리는 데 몰두하고 민간 경제 기반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방비 지출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나 정부 수입은 줄어들면서 러시아는 1월 250억 달러(약 32조 원)의 재정적자를 냈고, 경상수지 흑자는 1년 전과 비교해서 반토막이 났다.

러시아 중앙은행조차 재정적자가 더 늘어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올해 현재 7.5%인 기준금리를 인하하기보다는 인상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6회 인하한 이후 올해 2월까지는 동결해왔다.

인플레 압력 고조, 석유 수출 감소

이런 가운데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인플레 압력을 부추겨 러시아 국민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지난해 4월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에 러시아의 우랄산 석유 가격은 하락하고 있어 올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입 목표 달성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서방이 지난해 12월 에너지 가격을 잡기 위해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데 이어 유럽연합(EU)은 가스 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것도 올해 러시아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독일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러시아 경제 전문가인 야니스 클루지는 CNN에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 시장에서 횡재를 누렸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소비도 감소 

소비도 줄고 있다. 작년 실질 가처분소득은 1% 감소한 가운데 러시아인들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자 연간 소매판매는 6.7% 급감했다.

전 중앙은행 자문관인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는 로이터에 “러시아인들이 저축에 열을 올리는 건 경제가 불확실하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펠로우인 토미시 애쉬는 “올해가 러시아 경제는 진정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원 객원기자 주요 이력>

▶코리아헤럴드 기자 ▶기획재정부 해외 경제홍보 담당관 ▶로이터통신 국제·금융 뉴스 번역팀장 ▶ MIT 테크놀로지 리뷰 수석 에디터 ▶에디터JW 대표 (jinwonlee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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