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비영리 공익법인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빈곤과 질병과 같은 특정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선단체의 설립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사회가 복잡 다양해짐에 따라, 비영리 공익법인의 수와 그 활동 범위가 증가했고, 인권, 환경보호, 재난 구호를 포함한 더 넓은 범위의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기부와 자선이 종교 단체나 개인의 선행을 넘어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또 재단이나 단체로 조직화되고 제도화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 비영리 단체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역과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들 중 일부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축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비영리 단체들이 많아지면서 그 설립 목적이 변질되거나 조직 운영이 부패한 사례들도 늘어났다. 공익목적 사업을 가장한 수익사업, 과열된 모금 경쟁으로 인한 과다한 모금비 지출, 불투명한 조직 운영, 세제 혜택과 법적 허점을 악용하는 사이비 비영리 단체들까지. 이러한 사례들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비영리 역사가 긴 미국도 과거에는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미국의 면세 혜택을 받는 민간재단들의 상당수가 이를 탈세 창구로 활용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러셀 세이지 재단(Russell Sage Foundation)이 재단의 면세 지위를 이용한 사건이다. 이 재단은 투자 소득에 대한 세금 회피를 위해 비영리재단의 비과세 혜택을 이용했는데 결국 세금과 벌금을 내야 했다. 이 사건은 비영리 부문에서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비영리 분야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9년 의회는 청문회를 열고 비영리단체 조직 운영과 세금 혜택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세금개혁법(Tax Reform Act)을 마련했다. 미국 정부는 면세 혜택을 받는 기관에 대한 요건을 점차 강화했고, 비영리 면세법인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를 부과했다.

당시 미국의 일부 비영리 단체들은 이 법으로 인해 면세 혜택의 지위를 잃을 것을 우려했고, 대중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기타 신고해야 할 요건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반발이 심했다. 그럼에도 이 법은 현재 미국 비영리단체 부문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조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책임을 다하는 비영리 단체들에게 기부자의 기부를 장려하여, 올바른 기부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때 만들어진 법을 기반으로, 현재 미국에서 면세 혜택을 받는 비영리 단체들은 IRS990양식이라는 12페이지 분량의 필수 공시 양식과 함께 단체의 특성에 맞는 첨부서류를 추가로 국세청에 제출하고 있다. 세금 혜택을 받는 비영리 단체들은 한 해 동안의 사업 내용과 기부금・보조금의 수입 및 지출 내역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심지어 상위 연봉자의 연봉까지 말이다. 법・제도 측면에서 강화되니, 자연스럽게 비영리 단체들은 점차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조직 운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미 국세청 공시양식 _IRS Form990 일부 발췌. 
       미 국세청 공시양식 _IRS Form990 일부 발췌. 

현재 우리나라 비영리 단체들이 기부금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는 국세청 홈택스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지만, 보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일반 대중이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논란이 되고 있는 보조금과 관련해서도 그 사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대중의 감시뿐 아니라 지지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영리 단체들에게 규제는 귀찮은 일이고, 감시는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미국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비영리 단체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며, 공익 활동의 자부심을 높이는 길이다.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비영리 단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회복된다면, 기부문화가 선진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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