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올해 최초 상장사 대상 의결권 기준 설명회 실시
반대표는 매년 느는데 사유는 '한줄'...의결권 일관성 문제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데일리임팩트 박민석 기자 ] 국내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 시즌 개막을 앞두고 ‘큰손’ 국민연금의 표심에 대한 상장사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매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소유분산기업(소유지분이 분산돼 대주주 또는 주인이 없는 기업)대상 주주권 행사 강화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국민연금을 주주로 둔 주요 상장사들은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4일 국민연금 기금 운용본부에 따르면, 오는 17일 서울 상장회사회관 2층에서 최초로 상장사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 세부기준과 사례 등 의결권 설명회를 개최한다.

국민연금은 매년 위탁운용사와 의결권 의안분석 자문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해 왔으나,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의결권 설명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설명회를 추진하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회원사들로부터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설명회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었다”면서 “17일 설명회에는 현재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의장이 만석일 정도로 신청자가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번 국민연급 설명회에 상장사들의 관심이 많은 까닭은 그만큼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 ‘큰손’ 국민연금은 현재 920조원 가량의 자금을 운용 중이다. 지난 2021년 말 기준 국내 투자 기업은 1249개 수준인데, 이는 상장사 가운데 절반가량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삼성전자(7.68%), SK하이닉스(8.17%), 네이버(8.29%)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2대 주주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 부결로 처리된 현대백화점 인적분할 추진 건에도 8%이상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매년 늘어나는 반대 의결권...반대 사유는 고작 '한줄'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 주주로서 의결권 영향력은 크지만, 의결권의 행사 기준과 설명이 모호하다는 상장사들의 지적은 매년 이어져 왔다.

특히 반대 의결권 행사는 늘어나고 있지만, 충분한 반대 사유를 밝히지 않아 상장사 측 입장에서는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 운용현황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간 총 3360건의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찬성 비중은 75.98%, 반대 비중은 23.72%였고 중립·기권은 0.30%였다.

국민연금 3년간 의결권 행사내역 자료.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국민연금 3년간 의결권 행사내역 자료.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특히 전체 의결권 행사 건수 가운데 반대 비중은 23.7%로, 2021년 16.3%, 2020년 15.8%과 비교했을 때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주요 반대 안건으로는 보수 한도 승인 42.9%, 이사 및 감사 선임 31.4%, 정관 변경 14.1%, 기타 11.7% 등으로 나타났다.

의결권 행사는 주주의 권한이기에 반대표를 던지는 건 문제없지만, 반대 사유조차 1~2줄가량의 짧은 설명으로 되어 있어 투자 기업들이 판단 기준을 알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예를 들어, 주총 안건 중 이사 보수한도에 대한 반대 사유로 ‘보수한도 수준 및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추어 과다한 경우에 해당’, 이사 선임 안건은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 이력’ 등 왜 해당 기업 이사의 보수 한도가 과다한지, 해당 이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기업에서 개별 문의를 할 경우 구체적으로 답변하고 있다"며 "특정 사건과 연루된 개인 신상과 시장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세부 사유는 전체적으로 공개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때 다른 '의결권 행사 기준' 일관성 없다는 지적도

불분명한 반대 사유 뿐 아니라, 의결권 행사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이어져왔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주총에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판매로 논란이 됐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찬성한 건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함 회장이 당시 DLF 불완전판매로 인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문책경고’ 징계가 정당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음에도 찬성 표를 던졌다. 반면 지난 2020년 DLF 불완전판매로 문책경고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라임 사태와 채용비리 혐의로 논란이 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는 반대 표를 행사했다.

국민연금 금융사 사내이사 선임 관련 의결권 심의·결정 내역 편집. 데일리임팩트

당시 시민단체에서는 함 회장의 경우 하나금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선임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터’ 였기에 이를 의식하고 반대 표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매년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의결하는 건수만 해도 3000건이 넘기에 이를 전부 공개한다면 정리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또한 시장에 미칠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기에 의결권 반대 사유에 대해 구체로 공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 강화를 밝힌 것도 국민연금이 상장사 대상 설명회에 나선 배경으로 보여진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을 언급하며 해당 기업의 CEO '셀프선임' 등 지배구조 투명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KT 이사회가 구 대표를 차기 CEO로 추천한 것에 대해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보도자료를 통해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설명회에서는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이 올해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 기준과 방향도 제시 될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상장사 IR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언론과 홈페이지 내용만으로는 의결권 행사 기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대응책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설명회에서 기준과 적절한 예시를 들어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SG 투자업계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 기준을 상장사 대상으로 설명에 나선 것은 소통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며 “충분한 설명에서 나아가 일관성 있는 의결권 행사에 대한 고민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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