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압박 속 ‘금융소비자 중심’ 금융 지원 지속
연이은 대출금리 인하‧수수료 면제 조치 ‘눈길’
여전한 관치 경계 속, ‘S(사회)’ 전략 구체화 앞당겨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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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부와 금융당국의 이른바 ‘관치 논란’이 올해에도 계속되는 가운데, 금융업계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관치 흐름이 금융시장의 ESG경영 강화에는 오히려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막대한 이자수익을 통해 역대급 실적을 거뒀음에도 과도한 예대금리차 논란, 인색한 금리인하 등의 논란은 외면했던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개입이 이어지면서 ‘친(親)소비자’ 정책을 내놓기 시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최근 금융업계에서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대출 금리를 지속해 인하하거나, 과도한 수수료 체계를 개편해 금융소비자의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주부터 본격화된 은행 영업점 운영시간 정상화도 금융소비자의 접근성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이같은 조치가 ‘E(환경)’ 요소에 다소 치우쳐져 있던 ESG경영 활성화 전략을 ‘S(사회)’로 까지 활성화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배구조‘ 부문 등 G요소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오는 등 올해 금융권 내 ESG경영 움직임도 바빠질 전망이다.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업계 내 논란의 중심에 선 금융당국의 ‘관치’ 압박이 ESG경영 활성화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그동안 △탈탄소 △친환경 △녹색금융 등 ESG요소 가운데 ‘환경(E)’에 상당 부분 집중해온 금융업계의 ESG경영 전략의 방향성이 금융당국의 관치 흐름과 맞물리면서 금융소비자의 권익 증대를 포함한 ‘사회(S)’ 요소를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금융권 "올해도 화두는 ESG"

그동안 금융업계는 ESG경영을 성장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앞세워왔다. 특히, ESG경영이 추구 투자 유치 및 참여, 나아가 글로벌 금융사로서의 도약에 필수 평가요소로 자리매김하면서 ESG경영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 및 관련 금융상품 출시를 지속해오고 있다.

올해 역시 거의 모든 금융사들은 신년사를 통해 계묘년 경영 전략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ESG를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오는 2025년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ESG공시 의무화를 2년여 앞두고 ESG경영의 구체화 및 현실화에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인식 또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 금융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런 까닭에 국내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 회장들 또한 연초 공개한 신년사에서 ‘ESG경영’의 활성화를 올해 경영 전략의 화두로 제시하며 ESG경영 리더십 확보를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리딩금융 탈환이 유력한 신한금융지주의 조용병 회장은 “수익과 규모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신한과 동행하는 이해관계자 모두의 가치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며 “디지털 영역뿐 아니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부문에서도 압도적 경쟁력을 갖추자”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이제는 실행과 비즈니스 연계를 가속해 ESG경영의 구체적 성과를 보여주어야 할 때”라며 ESG경영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밖에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또한 ESG경영의 강화와 실천, 구체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금융업계의 ESG경영이 특정 요소, 특히 ‘환경(E)’ 요소에 치우친 나머지 타 요소에 대한 활동은 다소 미약하다는 우려도 나온 바 있다. 상당수 ESG경영 전략이 탈탄소와 탄소중립, 녹색금융 등 친환경적 부문에 몰려있다보니 사회(S)나 지배구조(G)와 관련된 구체화한 전략 추진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실제 수익성과 가장 연관이 깊은 요소가 환경 부문이다보니 친환경상품 출시, ESG상품 투자 및 대출 등에 아무래도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사회, 지배구조 등의 요소도 꾸준히 들여다보고 있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관치에 ‘친(親) 금융소비자’도 활발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의 관치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지주 CEO인사 개입 등 부정적‧갈등적 요소가 부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러한 관치 기조가 ‘친 소비자’ 흐름을 강화하는 긍정적 결과의 도출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주요 금융당국 수장들은 금융업계가 역대급 이자 이익에도 불구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조치는 다소 부족하다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이같은 발언에도 금융업계의 실질적 움직임이 없자 △예대금리차 공시 △대출금리 인하 △취약 층 금융지원 확대 등 직접적인 조치를 시행하며 전례 없는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은행은 공공재”라고 발언하는 등 금융업계에 대한 압박이 정점에 달하면서 금융권도 즉각 이에 발맞춘 조치를 속속 선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이달 들어 금융소비자들의 사용빈도수가 높은 모바일·인터넷 뱅킹에서의 타행 이체 수수료를 속속 면제하고 있다.

당장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오늘과 오는 10일부터 모바일·인터넷 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를 없앤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19일부터 모바일·인터넷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를 없앴고, 신한은행은 이보다 앞선 지난달 1일부터 관련 수수료를 면제하고 있다.

특히, 신한은행의 경우 온라인‧모바일뿐 아니라 오프라인 창구에서 발생하는 이체 수수료의 면제 또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당장 오는 10일부터 시중은행 최초로 ‘만 60세 이상’ 고객의 창구 송금수수료를 전액 면제 조치한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이뿐 아니라 그동안 각종 차주 지원 프로그램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또한 한시적 시행을 선언하는 등 금융소비자 지원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이 같은 ‘친(親) 소비자’ 정책은 대출금리 인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최근 각종 대출금리의 지표가 되는 기준금리, 코픽스(COFIX), 은행채 금리가 안정화되며 대출금리 인상 여력이 실제 줄어든 경향도 있지만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대출금리가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일 기준 국내 4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83∼6.89% 수준에 형성돼있다. 올해 초(1월 6일 기준) 연 5.08~8.11% 수준이었던 변동형 주담대 금리와 비교하면 불과 한 달여 사이에 약 1.3%p(상단 기준) 하락한 셈이다.

이뿐 아니라 지난달 초 연 5.66~6.89% 수준이던 신용대출 금리 또한 한 달 새(6일 기준) 연 5.21~6.48%로 상단 기준 0.4%p 가량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 사이 예금을 포함한 수신금리 또한 내려갔지만, 대출금리보다는 하락 속도와 폭이 작다는 게 은행권 내부의 설명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여전히 ESG경영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지다 보니 소위 금융소비자를 위한 ‘S’요소의 경우, 기존 사회공헌활동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라며 “금융업계 또한 급변하는 금융환경과 여기에 더해진 일부 관치 흐름을 통해 오히려 ‘사회적 요소’전략의 구체화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규제개혁회의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와 이복현 금감원장(오른쪽). 사진. 금융위원회.
규제개혁회의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와 이복현 금감원장(오른쪽). 사진. 금융위원회.

기대되는 관치의 선순환

이처럼 금융당국의 관치 기조가 대출 금리 인하, 수수료 면제 등의 선순환 효과로 구체화되고 있지만, 금융업계 내부에서는 그럼에도 과도한 관치는 지양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금리 인하‧영업점 영업시간 정상화 등 최근 발생한 일련의 조치가 관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시행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 이미 예정된 조치였던 만큼 이러한 부문을 관치의 ‘긍정적 효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 주요 금융지주 회장 인사에서 포착된 인사 압박 논란, 지배구조 개편 암시 등 관치 흐름을 제도화하려는 듯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번에 단행된 주요 금융지주 회장 인사 가운데 과거처럼 정부가 특정 인사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낙하산 인사’는 단 1명도 없었다”라면서도 “뒤에서 입김을 넣고 이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하려는 현 정부의 흐름은 오히려 새로운 관치의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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