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 대상 계약서 개정안 발표…휴재권·연재 회차별 분량 명문화
‘문제인식에 공감했다‘면서도 ‘원하는 만큼 휴재 가능한 구조’ 강조
과도한 업무량·낮은 보상 등으로 웹툰작가 3명 중 1명 우울증 경험
”권리 강화 움직임엔 긍정적…서면 계약 이상의 실질적 개선 필요”

카카오페이지 웹툰 ‘록사나‘ 작화를 담당했던 여름빛 작가가 SNS를 통해 유산 사실을 고백했다. 이후 회사 측의 물한 연재 강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창작 시스템과 연재 정책을 재검톼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SNS 갈무리.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유산) 당일 아픈 것조차 못 느낄 정도로 혼절한 탓에 구급차에까지 실렸다. 전 PD님께서는 런칭일 변경이 어렵다셔서 하혈하며 원고를 했다.”

카카오페이지 웹툰 작화작가의 고백으로 촉발된 웹툰 창작자 과다 노동이 개선될지 주목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웹툰·웹소설 창작자 복지와 건강권을 강화하겠다며 계약서를 손질하기로 결정한 것. 40회당 2회의 휴재권을 보장하고, 과도한 연재 분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기로 했다. 

31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이 같은 내용의 계약서 개정안을 발표했다. 작품을 정기 연재하는 모든 작가를 대상으로 다음달부터 휴재권, 분량 등 복지와 관련된 권리를 계약서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카카오엔터는 계약서 개정을 시작으로 올해 창작자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존에도 연재 분량에 대한 실질적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서 ”창작자들의 건강, 복지에 위해 더 나은 방안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고, 웹툰의 궐리티가 향상됨에 따라 컷 수, 분량이 늘고 있어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조성하고자 내용을 명문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웹툰 상생협의체에서 발표한 상생협약문 제7조 ‘창작자 복지 증진’ 조항을 반영해 앞으로 계약서엔 “창작자의 복지를 위하여 상호 협의 하에 추가로 휴재를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간다. 웹툰은 “40화 기준으로 휴재권 2회를 보장한다”는 구체적인 문구가 명시된다. 이는 상생협의체에서 ‘40-50화당 최소 2회 휴재권이 보장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반영한 것으로, 최소한의 휴재일수를 명시해 창작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로 했다. 

회차별 연재 분량 조항도 고친다. 웹툰·웹소설 모두 “작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과도한 연재 분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추가된다. 특히 웹툰 계약서에 작품 연재 최소 컷 수를 기재할 때, 한 화당 최소 컷 수를 기존 60컷에서 50컷으로 조정한다. 컷 수가 명시된 계약 건에 대해 실제 관리·제재힌 조치를 취한 사례가 없지만,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카카오엔터는 향후 문체부가 표준계약서를 발표하면, 보완이 필요한 내용을 추가할 계획이다. 또 창작자와 유관 관계자, 정부 등과 논의해 창작자 권리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엔터는 다만, 기존에도 휴재권을 보장해줬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개인 사정으로 휴재가 필요하다고 요청할 경우, 논의 하에 원하는 만큼 휴재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휴재 정책 여부와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된 부분임을 분명히 했다. 제작자 등에도 작가와 협의를 통해 작품별로 자율적으로 휴재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고도 했다. 카카오엔터와 직접 계약을 맺은 작가에게는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으며, 웹툰의 경우 시즌 휴재, 단기 휴재, 경조사 휴재, 코로나 휴재 등 다양한 휴재 정책도 운영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해 8월 카카오페이지 웹툰 ‘록사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작화를 담당했던 여름빛 작가가 유산과 함께 웹툰업계의 열악한 창작환경를 고백해 논란이 됐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무리한 연재 일정을 강요당했다는 게 핵심. 담당PD의 무분별한 언행이 알려지고, 이에 대한 카카오엔터 측의 해명마저 뭇매를 맞았다. 카카오엔터는 작가의 SNS 글이 올려진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 드린다.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바라보고 있으며,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로 사과가 늦어져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제개했다. 

카카오엔터가 웹툰업계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카카오엔터가 ‘원하는 만큼 휴재가 가능했다’ ‘컷 수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한 적이 없다‘ 등 기존 정책에 미진한 점은 없었음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점을 두고 웹툰 창작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웹툰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계약서에 창작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조항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중요한 건 실제 작업 진행과정에서 얼마나 지켜질지가 문제다. 플랫폼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작가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기 어렵고, 실제 PD 등이 원하는 방향으로 무리하게 작업을 끌고 가도 불이익을 받을까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작업 강도가 가혹할 정도라 웹툰작가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굉장히 높다”라며 ”이런 부분에 대해 카카오엔터가 깊이 공감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웹툰 창작자가 고강도의 노동, 플랫폼과의 불균형한 관계 등으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 5일 발표한 ‘웹툰작가 정신건강 및 불안정 노동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작가 3명 중 1명이 우울증과 불면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8.7%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밝혀 한국인의 평균 유병률의 4배에 달했다. 

과도한 업무량, 촉박한 마감 시간에 시달리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웹툰 작가의 하루 노동시간은 평균 9.9시간으로, 마감 전날은 11.8시간에 달했다. 주당 근무 일수는 5.7일이었고,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1시간으로 나타났다. 한 회당 그려야 하는 컷 수가 많은 데다, 연재 주간이 짧고 플랫폼·제작사 압박에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린다는 게 응답자들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은 높지 않았다. 웹툰 작가 51.4%가 월 최대 소득을 200-40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보니 응답자 3명 중 1명은 정신적으로 지쳐있다고 호소했다. 

현재 웹툰업계에서는 창작 환경 개선을 위해 더 발전된 안이 수립돼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이와 관련, 지난 11일 문체부는 웹툰상생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을 반영해 표준계약서 개정 초안을 마련했다. 웹툰작가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플랫폼과 제작사, 창작사 등 3자 이상 다중 계약 문제가 반영되지 않은 점,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 빠진 점, 합의 개념이 남용돼 계약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조항이 많은 점, 휴재권과 정산정보 공개 의무가 모호하게 반영된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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