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다가오며 수조원 자금 이탈 우려

타 금융사와 유치 경쟁 벌어졌지만 미온적

관리 감독과 선제적 대응 필요하다는 지적도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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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임팩트 최동수 기자] 새 회계기준(IFRS17) 시행을 한달여 앞두고 보험사들이 자금 유동성 위기에 긴장하고 있다. 내년 콜옵션(조기상환) 시점이 돌아오는 자본성 증권과 더불어 수십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만기도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업계 반응 역시 쏟아지고 있다.

자금 이탈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적게는 수조원, 많게는 30조원 이상의 자금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퇴직연금은 보험사 유동성 리스크의 가장 핵심으로 손꼽힌다. 이에 채권시장에서 매수에 앞장서며 '큰 손' 역할을 해왔던 보험사들은 자금 확충을 위해 올 하반기부터 매도 추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만기가 도래하는 퇴직연금 자산을 증권사 등 타 금융사들도 눈독을 들이면서 고객 유치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퇴직연금 상품 최고 금리도 지속적으로 올라가면서 유동성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차입 한도를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보험사도 자금 확보에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으로 퇴직연금 자산은 생명보험 71조7873억원, 손해보험 34조9504억원 등 총 100조원이 넘는다. 이러한 퇴직연금 가운데 약 30%가 다음 달 만기를 앞두고 있다. 새로 계약을 하지 않으면 최대 30조원 이상의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보험사는 자금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갈 경우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송미정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퇴직연금 만기가 도래되는 연말과 연초에 보험사의 자금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며 "당분간 자금시장 경색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험사의 유동성 관리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금 이탈 역시 실제로 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8월 생명보험사의 월별 보험금 지급률(보험료 수입 대비 지급 보험금 비율)은 117%까지 높아졌다. 이는 가입자에게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 비율은 지난 1월과 6월, 7월에도 100%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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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이탈에도 금리 경쟁력 떨어져 공포

만기가 된 퇴직연금 자금 수십조원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험사들은 금리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자금 이탈 공포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최대 8.5%대 금리를 제시하는 등 퇴직연금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상황이다.

지난 29일 다올투자증권은 다음달 연 8.5% 금리를 주는 퇴직연금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은행권도 최근 5% 후반대까지 퇴직연금 이자를 올렸고 결국 연 5~6%대 금리를 제시한 보험사들은 은행권과 증권사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결국 증권사, 은행권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보험사도 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는 추후 또다시 만기가 도래했을 때 더 큰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모 생보사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올해 안에 조 단위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중소보험사는 물론 대형사까지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험업계 유동성 리스크는 채권시장 불안으로 직결된다. 보험사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내다 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 17일 간담회를 열어 사업자들에게 과도한 유치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다만 보험사의 유동성 관련 지표는 아직까진 안정적인 수준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생보사와 손보사의 평균 유동성비율은 각각 195%, 182%로 양호한 수준을 기록했다.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이복현 금감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은총재,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이복현 금감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은총재,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규제 완화에도 선제적 대응으로 관리 필요

당장 보험사의 유동성비율이 위험한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향후 악화될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본성 증권에 의존했던 보험사들이 자금조달 시스템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것.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비 절감·유상증자·금리연동형 상품 및 보장성보험 비중 확대 등을 통해 자금조달 수단을 다양하게 갖추고 추후 자금시장 경색에 대비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규제 완화도 보험사의 위기 극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28일 정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퇴직연금 특별계정 차입 한도를 내년 3월까지 10%에서 미적용하는 방식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RP(환매조건부채권) 매도 허용도 명확히 하기로 했다.

정부가 퇴직연금 적립금의 10%만 빌릴 수 있는 규정을 풀면서 보험사는 이론적으로 굳이 채권을 팔지 않아도 적립금을 담보로 상당한 단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또 유동성 위기에 도래할 개별 보험사들을 직접 관리하고 감독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지난 3일 유동성비율 규제 시 유동성 자산의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자산 평가 기준을 12월 평가 종료 시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별 보험사들은 향후 유동성 여건 악화 및 금융시장 환경 불안정성 확대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적정 수준의 유동성 유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당국도 이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 및 필요시 추가적 제도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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