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우리나라 정치는 왜 이 모양인가? 무엇을 고쳐야 정치가 정쟁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있나요?” 정치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왜냐하면 대다수 질문자가 이미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의 해답을 얘기하기 전에 슬쩍 나를 떠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학자의 임무 중 하나가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것인데, 최근 우리 정치가 퇴행적 모습을 보여 주어서 책임을 통감한다. 물론 외국인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만족도는 매우 낮다.

   실효 없었던 정부 형태 변경 논의

그동안 많은 정치인들과 정치학자들이 정치개혁 방안을 제시했지만 주로 헌법을 비롯하여 선거. 정당, 정치자금 관련 제도 개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 대통령제를 다른 정부 형태로 바꾸면 정치가 저절로 잘 굴러갈 것인가? 아무리 훌륭한 정부 형태를 도입하더라도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인들의 자질이 부족하면 제도 개혁의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치제도가 미비하지만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정치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제도 개혁에만 몰두하지 않고 자질을 갖춘 미래 정치지도자를 육성하려는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

이제 현행 정치지도자 육성 실태의 문제점을 살핀 후 대안을 제시해 보자. 우리나라는 산업화에도 성공했지만 민주화에도 성공한 모범국가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정치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현실은 정반대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첫째, 한국인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에 대한 기대 수준은 지나칠 정도로 높다. 한국인들은 정치나 정치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정치에 대한 불만이나 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정치인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이상주의적 환상을 심어주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 유권자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들어줄 것처럼 공약을 내거는 무책임한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 결국 유권자가 공약을 남발하거나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 정치인을 제대로 심판해야 정치적 실망을 줄일 수 있다.

   지역연고 위주 투표 행태도 문제

그런데 공약이나 능력 대신 지역연고를 기준으로 투표를 한 후, 선출된 정치지도자를 원망하고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자기 부정적 투표행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선거풍토에서는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나올 수 없다. 오직 지연, 학연, 혈연, 인연 등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정치인들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한국인들이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높은 이유는 정치사회화 과정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정치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공부하고 토론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민주시민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 권위주의 시기의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사고가 민주화 이후 ‘좌파 대 우파’라는 새로운 정치적 이분법으로 진화하면서 최근 들어 좌우 극단주의가 서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경향이 발생하여 정치적 혐오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온라인 정치참여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우수한 인재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 우수한 인재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 혐오 분위기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첫째, 정치인들의 자기 절제와 함께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인정하는 관용(forbearance)이 필요하고, 둘째,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유권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훌륭한 정치지도자를 육성하는 첫 번째 조건이 될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정치지도자를 교육하는 제도가 매우 제한적이고 폐쇄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대학, 정당, 시민단체 등이 정치지도자를 배출하는 핵심 기관들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당이나 정부가 정치지도자 교육제도를 독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민주국가에서는 정부가 정치지도자 교육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자율에 맡긴다.

   대학 시민단체 등이 지도자 육성을

따라서 자유민주국가에서는 정치지도자 교육에 있어서 정부 외에 대학, 정당, 시민단체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정치지도자를 교육하는 학과나 프로그램이 많지만 현실정치의 수요를 충족할 정도로 능력 있는 다양한 정치엘리트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외교학과의 교육 프로그램이 수요자(학생)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교수) 위주로 되어 있다. 특히 주요 대학의 정치외교학 교과목이 주로 서구 정치외교학과의 교과목과 거의 유사하게 천편일률적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우리 정치 현실과 괴리가 크다. 따라서 정치외교학과 졸업생이 현실정치에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정치엘리트를 양성할 수 있는 행정학과나 법학대학원은 고시 위주로 공부하기 때문에 정치지도자 육성에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우리나라 정치엘리트 양성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학과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충북대 행정학과 강형기 교수가 ‘향부숙(鄕富塾)’과 ‘국부숙(國富塾)’을 창설하여 지방정치 지도자를 육성하고, 또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대학 내에서 발전되어 나가면 연속성과 경쟁력이 제고될 것이다.

한편 정당과 시민단체가 정치지도자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제도화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정당이 시민정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체계적으로 민주시민 교육을 바탕으로 정치엘리트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국회, 교육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학회 등이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입법을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해 안타깝다. 하루빨리 관련 법안이 마련되어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정치지도자 육성 제도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정당의 후보 선정 과정도 달라져야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우리나라 정당의 정치지도자 충원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우수한 공직 후보자를 육성하고 충원하여 선거에 승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당의 정치충원 구조는 전반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대선 후보 선정과정 외에는 주요 정당의 공직 후보 선정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절차나 기준이 비민주적이어서 선거 때마다 공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요 정당이 공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공천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공천과정은 소수의 정당 지도자들이 서로 담합하여 밀실에서 공천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략공천 제도이다. 주요 정당이 소위 전략공천 선거구를 정한 후 분명한 기준도 없고, 투명한 후보 모집과정도 없이 중앙당 지도자들이 선거구 당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공천함으로써 정당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주요 정당이 민주적 의사 반영을 명분 삼아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를 공천과정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당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전적으로 당선 가능성만을 고려한 것이다. 또 어느 특정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앞으로 이러한 비민주적 공천과정을 개선해야 훌륭한 인재들이 정치지도자로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정당지도자 중심의 공천과정이 아니라 당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제도로 바꾸고, 중앙당 위주의 공천 제도를 지방당과 지역구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하고, 또 여론조사 대신 당원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해야 우수한 인재가 충원되어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정당의 장래도 밝아질 것이다. 2024년 총선 이전에 주요 정당이 선거 경쟁력을 가진 훌륭한 후보를 충원할 수 있는 새로운 공천 제도를 미리 고안하는 것이 총선 승리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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