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얼마 전 장관과 교육감을 지냈던 이가 설립한 공익법인이 정부보조금을 빼돌리다 적발되었다. 이곳의 대표는 일하지 않는 ‘유령 상담원’의 계좌로 들어온 급여를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으로 1억 원 이상을 빼돌렸고, 상담 시스템을 유지 보수한다는 명목으로도 약 6억 원 가량을 빼돌렸다고 한다. 여가부는 이 공익법인에 지난해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보조금 약 88억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정치자금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성남FC 사건에는 희망살림(현 롤링주빌리)이라는 공익법인이 등장한다. 서민들의 빚 탕감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 법인이 왜 후원금의 대부분을 축구단 광고비로 지출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또 다른 공익법인인 아태평화교류협회 역시 쌍방울 등으로부터 약 9억 원을 기부 받았지만, 그 사실을 결산 공시하지 않았다. 아태평화교류협회는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달 5일 부랴부랴 과거의 결산 공시를 수정해 모두 재공시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정의기억연대 역시 2020년 5월 회계 부정 의혹이 불거져 재판이 진행 중이며, 광복회의 기부금 유용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미르∙K스포츠 재단은 정권의 퇴진을 불러올 정도로 그 충격파가 강했다.

정치에 휘둘린 일부 공익법인들의 기부금과 보조금 유용, 그리고 회계 부정 사태로 인해 본연의 공익사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단체들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기부를 주저하고 있고, 공익법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2021 세계기부지수에서 대한민국이 114개국 중 110위로 추락한 것은, 우리나라 기부 인식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영리분야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에는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제정하여, 2018년 사업연도부터 적용했다. 결산서류 의무 공시 대상 법인의 범위도 꾸준히 확대했다. 종전에는 자산규모에 따라 결산서류 의무 공시 여부가 결정되었지만, 2020년 사업연도 공시부터는 모든 공익법인(종교법인 제외)이 결산서류 등의 공시를 의무적으로 하게끔 바뀌었다. 또 외부 회계감사 의무 대상 법인도 확대되면서, 공익법인의 비리를 막기 위한 세법상의 의무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들은 존재한다. 우선 제도적으로는 공익법인이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재공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현행 공시 시스템의 보완과 함께, 불성실 공시를 했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 보조금 역시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국민 누구나 보조금이 잘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그 집행내역을 공개하여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부 시장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 ESG경영의 일환으로 기업 사회공헌 활동을 늘리면서 기업으로부터 나오는 기부금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부금의 로비자금으로의 변질, 특정 이해관계 집단으로의 기부 등의 사례는 기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강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따라서 기업 역시 사회공헌 파트너를 정할 때,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점검하고, 기부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또 기업 스스로 기부금 집행에 대한 의사결정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기업 기부금이 불법적인 로비나 부당한 압력으로 집행되는 것을 예방한다면, 기업의 ESG 투명성 확보와 함께 파트너인 공익법인의 투명성도 현재보다 높아질 것이다.

개인 기부자 역시 보다 깐깐하게 기부처를 선택해야 한다. 단순한 동정심이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금이 전달되는 과정 및 기부금 중 얼마가 기부단체의 운영비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기부하고자 하는 단체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사업 내용이나 재무정보를 확인하거나, ‘한국가이드스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공익법인의 투명성과 재무효율성 평가결과를 참고하는 등, 적극적인 기부처 탐색 활동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공익법인은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그 소통은 정직하고 투명한 공시를 의미한다. 아직도 국세청에 공시하는 결산서류에도 기부금 지출 내역을 상세히 밝히지 않은 채 대충 뭉뚱그려 작성하거나, 기부금의 출처를 구분하지 않고 기재하지 않는 등 불성실하게 공시하는 곳들이 존재한다. 잘 안 보는 서류인데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공익법인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야 할 것이다.

공익법인은 국가가 미처 소화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복지수요를 민간부문에서 대신 보완하고 보충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 기부자, 공익법인, 이 세 축이 ‘기부’에 대한 역할을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자연스럽게 공익법인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투명한 기부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비영리’와 ‘공익’이라는 이 숭고한 화두를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가로챈 정치권의 행태에 법의 철퇴가 내려져 다시는 정치에 휘둘리는 공익법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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