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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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내가 손자(사내아이만 두 명) 돌보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친구들이 언제까지 어떻게 얼마에 한다는 계약서를 쓰라느니, 어떤 친구는 아예 제주도로 이사를 가라느니, 여러 조언을 했지만, 아내는 “내 아들이 도와달라는 SOS를 보냈는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하면서 씩씩하게 필자보다 빠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시작했다. “잘 다녀와요. 수고 많았네요.” 세상에나! 이 나이에 이런 인사를 아내에게 할 줄이야.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보니, 뭔가 가슴 한편이 휑한 건 왜인지 모르겠다.

알아서 해야 할 일이 그러지 않아도 많아지는 참인데 더 많아지게 생겼다. 기온이 뚝 떨어지니 가을옷을 정리한 지 얼마지 않아 겨울옷을 내놓아야 했다. 겨울옷은 부피도 커서 내놓으니 많기도 하다. 오래 입은 옷들과 세탁소에 맡길 옷들은 한쪽으로 하고, 내어놓았다가 다시 들여야 하는 가을옷이 또 있다. 필자는 “ISO 9001에서 품질관리의 첫 번째 덕목이 정리 정돈입니다.”라고 강의하곤 했는데. 이건 이럴 때 저건 저런 때 하면서 넣고 걸고 하고 나니, 결국 올이 풀린 스웨터 한 개와 목 부위에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 있는 셔츠 두 개 버리는 것으로 마감했다. 휴일 내내 결국 정리도 제대로 못 하고 정돈도 잘 안 되었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내와의 대화에서도 거의 손자 얘기다. 어린이집 등교에 ‘미세먼지 주의’ 뉴스만 나오면 걸어서 갈 길을 차로 이동한다고 해서, 그럴수록 아이들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라치면 아내가 눈총을 줘서 입을 다물었지만, 그간 코로나로 주춤했던 산업도 활기를 띠고, 곧 난방이 활성화되면, 에너지 소비는 늘어나게 된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에너지난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폐쇄 예정이던 석탄발전소도 옳다구나 하면서 가동을 연장할 것이고, 한동안 잠잠했던 중국 발 미세먼지도 고향 오듯 찾아올 것이다.

이산화탄소 발생의 약 70% 이상이 에너지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거의 인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에너지원의 교체만이 국제사회에 보고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이행할 수 있다. 지난 대선 때 후보 간 질문에 나와서 한동안 회자되었던 ‘RE100’(신재생에너지만 사용하겠다.)이 서서히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간 꿈쩍도 안 하던 삼성전자가 RE100을 하겠다고 발표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재생에너지가 국내 생산이 되어야 50을 하든지 100을 하든지 할 것 아닌가. 지난 8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목표를 8.7% 후퇴한 30.2%로 제시하고, 원전은 30% 목표로 올려 잡았다. 여기에 더해 태양광사업의 일부 비리를 수사하면서 마치 신재생에너지 사업 전체가 음흉하고 불량한 사업집단으로 보도되고 있어 신재생에너지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자연재해로 인한 보험 청구액이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원자재 수급 안정성이 내려감으로써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한두 가지 부품이나 희귀금속이 공급망에 차질을 빚게 되면 전기자동차와 같은 완성품 생산은 어렵게 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자원 재활용이 오래전부터 거론되어 온 것이다. 자원 재활용은 탄소중립과 자원 고갈에 대비하는 현실적 해법이라는 것이 필자의 오랜 주장이고, 근래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순환경제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전 정권에서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위원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각 부처의 위원회가 통폐합되거나 없어지거나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중 이번 글과 관련된 두 개의 위원회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첫째는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근래에 여권의 유명 정치인이 부위원장으로 들어간다기에 알게 되었다.)이다. 이 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원장이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2022년도 시행계획이라고 하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올라와 있다. 이 계획안에 ‘아이 돌봄 계획’이 자리하고 있는데, 계획대로라면 아내는 곧 원대복귀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다음은 작년에 조직된 ‘2050 탄소중립 위원회’인데, 벌써 제2기라는 이름으로 재조직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대통령 직속이던 편제가 총리로 내려가고 조직도 축소되었다. EU를 비롯한 국가들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조직은 오히려 더 커지고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다. 독일을 예로 든다면 별도의 전담 부서(경제·기후보호부)를 두고 있고 부총리가 지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환경부 기후 탄소정책실의 기후변화정책관이 관장하고 있다. 과연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울불꽃축제를 구경하고 난 뒤 약 50톤의 쓰레기가 나온 것을 예상보다 적게 나왔다고 서울시가 축제 후기로 자평하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얼마가 나오리라고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서울시의 정책이라면 참으로 어이가 없다. “세계적인 축제에서 쓰레기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뭐 이런 보도가 나와야 서울특별시가 아니겠는가. 탄소중립 정책은 지방정부, 특히 서울시의 몫이 아주 크다.

아들 내외가 베이비시터(babysitter)의 손길보다 엄마의 손길이 더 믿음이 가기 때문에 미안하고 죄송함을 알면서도 도움을 청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내가 안쓰럽고 필자도 괜히 고단하다.

“젊은이들이여 미래를 보라!”, “아기를 낳는 것이 국가유공자이다!” 이런 거창한 구호만 연호할 것이 아니라, 어렵게 결혼하고 귀하게 얻은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걱정 없이 육아할 수 있게 해줄 것인지 자세하게 보살펴 줘야 선진국 반열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간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다가, 이제 황혼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들을 다시 육아 전선으로 호출하는 사회는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처에 실패하고 있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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