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맛을 가르쳐준 신비의 복숭아 밭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이번 주에는 ‘마음의 순결을 잃은 뒤 세상의 모습’을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제가 마음의 순결을 잃으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걸 깨달은 건 초등학교 2학년 초여름 하교 길에서입니다.

제 학교 길은 둘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새로 닦은 신작로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 앞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입니다.

저는 큰길을 더 좋아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좀처럼 자동차 구경하기가 힘든 세상이었는데, 계룡산과 그 산자락의 갑사(甲寺)를 구경 오는 분들 덕분에 아주 매끈한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을 볼 수 있었고, 노래를 부르며 오고가는 그들을 따라가면 아주 신기한 도시가 나타나고, 끝없이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길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길 옆으로 펼쳐진 저수지 때문이었습니다. 둘레가 자그마치 10리가 넘는 저수지가 저녁 햇살을 받아 장밋빛으로 얼크러지기 시작하면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정말 요술을 부린다고 믿었습니다. 언젠가 도회지에서 온 처녀가 저수지 가에 앉아 한나절 노래를 부르다가 빠져 죽은 뒤부터는 아주 구슬프고도 고운 노래가 들려오고, 멈춰 서면 바람소리와 물결소리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은 그 노래를 그 처녀의 노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나 계룡산 속 애기 무당이 이상한 경문을 읽다가 심심해 부른 노래가 보랏빛 산그늘을 따라 물결 속에 잠겼다가 바람이 불 때마다 흘러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토록 가냘프고 고운 노래를 귀신의 노래라고는 생각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바람결에 구슬픈 처녀의 노래가 함께 들려오던 곳. 어린 나에게 계룡저수지는 바다같이 큰 요술의 공간이었다. 2021년 1월 하순 촬영.
 바람결에 구슬픈 처녀의 노래가 함께 들려오던 곳. 어린 나에게 계룡저수지는 바다같이 큰 요술의 공간이었다. 2021년 1월 하순 촬영.

그런데 그 신나는 학교 길을 버리고 가파른 고갯길로 다니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직전, 부슬비가 내리는 오후입니다. 학교에서 구구단을 못 외우는 짝꿍을 가르치다가 꿀밤 몇 대를 먹이고 담임 선생님 허락도 받지 않고 도망 오는 길이라서 그런지, 날이 어두워지려면 아직도 먼 시각인데 초저녁 어스름처럼 침침하고, 그 이상한 노래도 들리지 않는 겁니다.

걷다가 뒤돌아보고 다시 걸었지요. 그러다가 마을로 들어가는 빗금산 모퉁이를 접어들 땝니다. 산자락을 타고 좌악 펼쳐진 복숭아밭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발그스레한 복숭아들이 가지와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깔깔대고 웃는. 아침에도 복숭아밭은 거기에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환해지면서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 가득 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복숭아밭 주인은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갔는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은 빗방울 소리와 까르르 웃는 복숭아들 웃음소리뿐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철조망을 넘어갔지요. 그러자 복숭아들은 웃음을 뚝 그치고 잎새 뒤로 숨는 겁니다. 마치 낯선 사람이 찾아 왔을 때 집 뒤꼍으로 숨는 계집애들처럼.

저도 모르게 까치발을 하고 따기 시작했지요. 한 개, 두 개, 세 개……. 손끝을 타고 전해오는 촉감은 어쩌다 만져본 누나 볼처럼 묘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나만 더 따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무엇인가 ‘식’하고 달려왔습니다. 개였습니다. 질겁을 해서 철조망을 비집고 나와 빗금산 꼭대기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철조망에 갇힌 누렁이가 컹컹 짖었습니다.

잔디밭에 쓱쓱 부벼 복숭아를 베어 물었지요. 입 안 가득 달콤한 물이 고이면서 까닭 모를 승리감이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 갠가 네 개를 먹을 땝니다. 마지막 넘어가던 복숭아 첨이 목구멍에 걸려 어른들의 목울대처럼 툭 튀어나올 만한 큰일이 일어났음을 발견했습니다. 책 보따리를 복숭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온 것입니다.

살금살금 다시 가봤지요. 깔깔대던 복숭아들은 다시 웃음을 그치고 응당 거기 있어야 할 책보따리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어찌할까, 어찌할까나? 복숭아털이 묻어서 그런지 온몸이 껄끄럽고, 목구멍과 뱃속에서 개륵개륵 복숭아 소리가 나는가 하면 오슬오슬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지요. 다른 날 같으면 사랑방에 들러 할아버지께 “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책꽂이에 책을 꽂은 다음에 안방으로 들어갔지만, 그날만은 살금살금 안마당을 지나갔습니다.

어머니는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아랫목에 눕게 하셨습니다. 봄내 베틀로 짠 결 고운 모시 남방의 등허리가 철조망을 빠져나오느라고 쭉 찢어졌지만 원래 털털한 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무 말씀도 않고 점심을 차려오셨습니다.

하지만 배 속에서 복숭아 소리가 나서 다시 누워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그 과수원 집 큰딸이랑 같은 반이니까 어떻게든지 해결해주리라고 믿고 불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얼마쯤 잤을까, 할아버지가 부르시는 소리가 나더군요. 못 들은 척하고 돌아누웠지요.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시데요.

사랑방 재떨이에는 누가 피웠는지 끈 꽁초에서 모락모락 담배 연기가 오르고 있었습니다. 분명 할아버지가 피우신 건 아닙니다. 언제나 기다란 장죽으로 태우셔서 꽁초 같은 것은 남기시지 않습니다.

“너 책보 어디 있니?”

“저어……, 안방에서 말리는 중이어요.”

안마당을 건너올 때, 비에 젖어 말리는 중이라는 대답까지 준비했으면서도 말이 더듬어지더군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주 엉뚱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 복숭아 먹고 싶지 않니?”

“안 돼요. 먹으면 가슴이 멍쿨해지고, 나쁜 사람이 돼요.”

“그래? 동구 밖 주(朱)씨네 집에서 방금 너 주라고 복숭아를 따왔는데…….”

주씨네라면 방금 철조망을 넘어갔던 그 과수원을 말합니다.

“빗속에 가져온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몇 개만 먹어라.”

마지못해 제일 작은 놈을 골라 두틈두틈 깎았지요. 그러나 누렁이에 쫓기어 산꼭대기에서 먹던 맛과는 달리 형편없이 시고 떫었습니다. 그만 먹어도 되겠느냐고 할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눈빛으로 재촉하셨습니다.

며칠을 먹어도 끝날 것 같지 않아, 세 갠가 네 개째 먹다가 아앙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놈, 책보따리가 안방에 있어?”

담뱃대로 책상 밑에서 책 보따리를 꺼내 밀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결코 종아리는 맞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집 앞으로 지나가는 큰길을 버리고 고갯길로 학교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 고마웠던 주영감님께 혼날까봐서가 아닙니다. 넉살좋게 웃으며 인사를 하면 또 복숭아나 참외를 주실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지만, 그 아련한 인어 공주 노래도 애기 무당의 글 읽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고 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도 하나도 신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 재미없고 심심한 날만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고, 그 복숭아밭 주인과 식구들도 그 앞길을 따라 어딘지 먼 곳으로 떠나고, 그 죄를 따먹던 이상스런 복숭아밭은 콩밭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엔 관광객들에게 빌려주는 펜션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참으로 허전하게…….

제가 왜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지요? 해체는 밖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인데요.

다음 주에 함께 생각할 주제는 ‘동서양의 변증법(辨證法)’입니다. 칸트의 고향 슈투트가르트에서 출발해 알프스를 넘으며 해체를 막을 방법을 생각하다가 동서양의 변증법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위 사진은 '순례자(leeyoung22)님'의 블로그에서 인용했습니다.

▢ 尹石山(본명 錫山) : ○1972년 ‘시문학’으로 등단. ○작품집 ‘아세아의 풀꽃’ 등 7권, ‘자서전을 덧붙여 고쳐 쓴 尹石山 시전집’ 4권, 문학이론서로는 ‘화자시학’ 등 6권 있음. ○제주대 명예교수 ○1999년부터 한국문학도서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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