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2021년 올해에도 많은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세상을 떴다. 앵커 래리 킹,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제임스 레바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 그리스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투투 대주교, 소설가 송기숙, 화가 김창열 홍정희 송영방, 홈런왕 행크 애런,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군 필립공, 정진석 추기경, 축구선수 게르트 뮐러 유상철, 김인 9단, 전 총리 이한동 이완구, 무용가 육완순 이애주, 가수 밀바 이수미, 조용기 목사, 통일운동가 백기완, 일본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 영화배우 장폴 벨몽도 최지희 이런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두 전직 대통령 노태우, 전두환. 10월 26일 노 전 대통령이 타계한 지 28일 만인 11월 23일, 전 전 대통령이 오랜 친구를 따라갔다. 그는 두 달 전 동생 전경환 씨를 앞세운 바 있다. “마흔 넘으면 먼저 죽는 게 형”이라던데, 이승을 뜨는 것은 역시 태어난 순서대로 되지 않는다.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는 장례의 격은 물론 사망 별세 타계 서거 등 죽음을 형용하는 말부터 논란을 빚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년 가까이 병을 앓으면서 은둔 칩거생활을 해왔지만, 전 전 대통령은 몇 달 전만 해도 재판에 나가고 골목에서 사진기자에게 목격된 일도 있어 어느 날 아침 알려진 죽음이 갑작스럽고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 정도였다.

사람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원인과 경로로 죽는다.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말도 있지만, 인명은 모질고 강하고 끈질기면서 허망하고 덧없고 어이없기 그지없기도 하다.

심지어 오렌지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 오렌지병? 오렌지를 너무 많이 먹거나 잘못 먹어서 목에 걸리면 죽는 병인가? 아이들이 포도를 먹다가 기도가 막혀 주는 경우가 있으니 그런 것인가 보다.

잔뜩 쌓인 오렌지를 무리하게 다 먹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잔뜩 쌓인 오렌지를 무리하게 다 먹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인이 이상한 오렌지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 김두한(1918~1972)이다. 독립운동가 김좌진(1889~1930) 장군의 아들인 그는 주먹으로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람인데, ‘야인시대’ 맨 마지막 회에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오렌지병인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김두한.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김두한.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오랜 지병(持病, 오랫동안 잘 낫지 않는 병)’이 오렌지병으로 와전된 것이다. “아버지가 방에”가 “아버지 가방에”가 된 거다. 지병이라는 말을 모르는 아이들이 ‘오렌지병’을 만들어내자 그 말이 궁금한 녀석이 인터넷에 질문을 올렸다. 그러자 어떤 녀석이 “김두한은 오렌지 회사와 협상을 벌여 4달러에 평생 오렌지를 먹을 수 있게 요구한 뒤 오렌지를 지나치게 많이 먹어 오렌지병에 걸렸다”고 알려줬다. 드라마에 나오는 4달러(탤런트 김영철의 유행어가 된 말)까지 동원해 병을 설명해 준 것이다.

이런 오해가 재미있어서 그런지 김두한이 오렌지 병에 머리를 맞고 죽어가는 동영상을 제작해 퍼뜨린 사람들도 있다. ‘야인시대’의 주역 안재모 등 여러 배우가 나온다. https://tv.kakao.com/channel/3808324/cliplink/421346888

어쨌든 오렌지든 오징어든 오메기떡이든 오소리감투든 오삼불고기든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몸에 좋은 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원래 군자는 배부르게 먹지 않는 법이다.

수많은 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지병과 숙환(宿患, 오래 묵은 병)이다. 유사 이래 지병과 숙환을 이긴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남들에게 사인을 자세히 말하기 싫으면 지병이나 숙환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하면 끝난다. 산불의 원인을 모를 경우 담뱃불이라 하고, 건물 화재의 원인을 잘 모르면 누전이라고 하면 일단 말이 되는 식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걱정이 생긴다. 숙환의 숙(宿)은 ‘잘 숙’자인데, 이걸 본 아이들이 잠자다가 죽는 걸 숙환이라고 잘못 알게 되지 않을까. 하기야 병들고 외로운 노인들은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는 것)를 바라거나 잠자다가 떠나가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오라? 또 안 죽었네.”라고 한탄하곤 한다.

코로나가 번진 이후 죽음이 점점 더 갑작스럽고 허망하고 억울하고 뜻 없는 일이 돼가고 있다. 오렌지병 같은 이상한 병에도 걸리지 말고 고종명(考終命, 하늘이 부여한 천명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함)의 복을 누리는 것이 누구나 바라는 절실한 소망이 됐다. 고종명은 원래 오복(五福)의 하나가 아니던가.

    죽음과 삶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명언 한마디.  
    죽음과 삶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명언 한마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우리들의 죽음에 대해 장의사마저 슬퍼해줄 만큼 훌륭한 삶이 되게 힘써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훌륭한 삶이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 다시 새해를 맞으면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 “오 주여, 사람마다 그 자신만의 죽음을 주소서”를 되뇌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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