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일러시에 제2파운드리 공장 건설 확정

빅테크·팹리스 겨냥…첨단 시스템반도체 생산

고객사 확보가 관건…초미세공정 기술로 승부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왼족)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왼족)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이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가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의 디바이스솔루션(DS)미주총괄을 찾은 자리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강조했다.

DS미주총괄은 반도체 선행연구조직,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신규 투자 확정을 앞뒀던 점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라는 목표를 상기시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예열을 끝냈다. 24일 미국 제2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확정지으면서 이 부회장이 주문했던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향한 본격적인 여정에 돌입했다. 이에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어떤 전략을 취할지에 대해 반도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언한 목표 달성까지 남은 기간은 8년여, 2017년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하며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집중했던 만큼 경쟁사인 TSMC나 인텔보다 출발이 다소 늦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을 함께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영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파운드리 ‘속도전’ 돌입

24일 삼성전자는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낙점했다. 착공은 내년 1분기로 2024년 하반기 가동이 목표다. 투자액은 170억달러(약 20조원)으로 해외 단일 투자 중 최대다. 

테일러 공장은 규모면에서 오스틴 공장을 압도한다. 공장과 도로 등을 포함한 전체 부지 규모가 480만㎡(약 150만평)로 오스틴 공장보다 4배가량 넓다. 특히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을 적용해 5G·HPC·AI(인공지능) 등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새 파운드리 공장을 건립한 데에는 기존 오스틴 공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틴 공장은 14나노와 28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한다. 생산되는 제품도 SoC(시스템온칩)와 RF(무선주파수), DDI(구동칩), PMIC(전력관리반도체), 전장 반도체 등으로 기술난도가 높지 않다.

미국 시장은 빅테크들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등이 밀집돼 있어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많지만 이를 소화하기 어려웠다. 이에 테일러 공장을 통해 미국 시장의 다양한 IT 수요를 확보하는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AI·IoT(사물인터넷)·전장·5G 등 혁신 기술과 연계한 제품·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저전력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부 매출도 성장세였다. 때문에 공장 증설이 필요했지만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오스틴 공장 주변 토지를 매입한 뒤 공장 건립의 가능성이 제기되자 삼성전자는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올해 초 기록적인 한파도 단전·단수가 발생, 4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으면서 공급망 이원화의 필요성이 대두된 까닭이다.

거기다 연방정부나 지방정부의 세제 혜택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오스틴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는 대신 20년간 재산세 100% 감면, 2억5290만달러의 세금 감면 등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가량의 혜택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스틴시측와 세제 감면 폭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새 후보지를 물색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텍사스주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를 우선했던 것으로 보인다. 델·AMD·ARM·퀄컴·HP·오라클·메타 등 주요 IT기업과 팹리스들이 텍사스주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서다. 신흥 빅테크 테슬라도 오스틴으로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떠오른 게 테일러시다. 테일러시는 지난 9월 삼성전자와 합동회의를 연 데 이어 가장 먼저 인센티브 결의안을 결의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테일러시는 첫 10년간은 재산세 92.5%, 이후 10년은 90%, 다음 10년 간은 85%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제공키로 약속했다. 테일러 독립교육구도 2억9200만달러의 추가 감세를 공언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오스틴시에 요구했던 수준을 상회한다. 

게다가 오스틴공장과도 불과 25㎞ 떨어져 있어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용수·전력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인근에 텍사스주립대를 비롯한 명문 대학이 위치해 있어 고급 인력 확보 역시 수월하다.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 차이. 이미지. 삼성전자.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 차이. 이미지. 삼성전자. 

경쟁사들 투자 베팅에 ‘초미세공정’으로 맞대응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반도체에 있다. 전체 매출의 3분의 1 이상, 영업이익의 절반 가량이 반도체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로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뒤 반도체사업에서 경쟁사들에 밀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경우, 미국 마이크론이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176단 이상 3D 7세대 낸드 출시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4세대 10나노(1a) D램 양산에 성공하며 선수를 빼앗겼다. 시스템반도체를 견인차가 될 파운드리에서는 TSMC가 내년 7월경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 제품을 양산을 공식화한 데 이어 인텔도 4년 내 1나노대 초미세공정 양산을 선언했다. 

설비투자에서도 경쟁사들은 과감했다. 인텔은 올 초 200억달러(약 23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개를 설립키로 한 데 이어 뉴멕시코주와 오리건주에도 공장을 세웠다. 세계 4위 파운드리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 인수가 사실상 무산된 뒤에는 “(반도체) 산업에서 M&A가 지속될 것이며 우리가 통합의 주체가 될 것”이라며 공격적 행보를 예고하기도 했다. 

TSMC도 뒤질세라 투자 경쟁에 뛰어들었다.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만 300억달러(35조4000억원)을 투입하고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8조원)를 투자해 미국 내 공장 6곳을 설립키로 했다. 현재 2024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고, 일본 구마모토와 독일에도 반도체 생산거점을 마련키로 했다. 이미 본사가 있는 대만에서는 2나노 생산을 위한 공장 건설 계획에 들어갔다. 

이에 이 부회장의 가석방 이후 삼성전자도 시스템반도체 속도전을 예고했다. TSMC보다 먼저 내년 상반기 중 3나노 공정을 양산하고 2025년에는 2나노 제품을 내놓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기에 경기 평택 3라인과 기흥·화성~평택, 미국 텍사스를 잇는 생산체계를 구축하게 됨에 따라 시스템반도체 사업이 탄력받을 전망이다. 

파운드리 투자에 대해 반도체 업계가 거는 기대 또한  상당하다. 삼성전자의 첨단 기술 경쟁력이 강화되면  고용, 연구·개발(R&D)  수요가 늘고,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산업에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선순환 효과가 나려면 삼성전자의 향후 전략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가능한 종합반도체기업이다. 지식재산권 유출 등을 우려한 대형 팹리스들은 TSMC에는 최상위 반도체를, 삼성전자에는 한 단계 낮은 반도체를 맡기는 식으로 주문을 넣었다. 그러나 애플·구글·GM·포드 등 빅테크들이 반도체 자립화를 선언하고, AMD·퀄컴 등 팹리스들도 TSMC의 애플 위주 정책에 불만이 쌓인 상태다. 지난 9월 TSMC는 공급가격을 조정하면서 팹리스에는 20% 인상을 통보한 반면, 애플에는 2~3%대의 낮은 인상률을 적용했다. 초미세공정 기술력을 제고한다면 TSMC로부터 고객사를 끌어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전세계 파운드리 점유율의 58%를 TSMC가 가져갔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4%에 불과했다. 다만 초미세공정만 놓고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TSMC는 6, 삼성전자가 4의 비율로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초미세공정을 강화할수록 TSMC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빅테크들이 공급 안정성 때문에 분산 주문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다만 첨단 기술력으로 TSMC를 압도한다면 다수의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듯 삼성전자도 기술 초격차를 전략으로 삼는 분위기다. TSMC보다 3나노 양산 시점을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3나노는 5나노 제품과 비교해 칩 면적을 약 35% 이상, 소비전력은 50% 줄여주되 성능은 약 30% 향상시킨다.

또 업계 최초로 나노시트 구조를 적용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다. GAA는 TSMC가 3나노 공정에 적용하는 핀펫(FinFET) 기술보다 전력 효율, 성능, 설계 유연성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첫 줄 왼쪽부터) 존 코닌 상원의원,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브랜트 라이델 테일러시장(존 코닌 상원의원 뒤), 존 카터 하원의원(그랙 애벗 주지사 뒤), 마이클 맥컬 하원의원(김기남 부회장 오른쪽),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존 카터 하원의원 뒤), 빌 그라벨 윌리엄슨카운티장(최시영 사장 오른쪽)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미국 주도 대중국 연대 ‘합류’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로 또다른 추진력을 얻게 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연대다. 미국은 경제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누르기 위해 반도체를 전략 무기로 활용 중이다. 공급망 다각화와 국가 안보를 같이 거론하며 중국으로의 최신 장비 반입을 저지하고 자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구상이 힘을 받으려면 미국으로 첨단 반도체 제조시설이 옮겨와야 한다. 현재 미국에는 매출액 상위 팹리스 대부분이 소재해 있다. 하지만 파운드리는 14나노 이상 공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법안을 발의하는 한편,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출 등을 통해 반도체기업들에 은근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자국 기업인 인텔을 독려하는 한편, TSMC를 끌어들여 자연스럽게 대중국연대를 구축했다. TSMC와 인텔이 새 공장 계획을 밝히면서 EUV(극자외선)를 적용, 미세공정 제품을 내놓기로 한 것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의지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연대에 합류하면서 부담을 덜게 됐다. 

미국 정부도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로 미국은 바라던 대로 첨단 제조 기술력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테일러시가 위치한 텍사스 주지사 외에 백악관이 환영성명을 발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악관은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명의의 성명에서 “미국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며 “오늘 삼성이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기로 한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디스 위원장은 경제 문제를 총괄 자문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설리번 보좌관은 안보 문제 최고 책임자다. 두 사람이 공동 성명을 내는 것은 이례적으로 삼성전자의 투자에 대한 기대가 컸음을 방증한다. 

두 사람은 “공급망을 보호하고, 제조 기반을 활성화하고, 바로 여기 국내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도울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추가 반도체 생산시설을 만들어내고 다시는 반도체 부족 사태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출을 요구했던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도 별도 성명을 통해 “삼성의 투자 결정에 매우 기쁘다”면서 “반도체 생산 시설 확충은 경제 안보를 위해 절대적이고, 삼성을 포함한 반도체 생산 업체와 협력을 계속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