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와 삼성전자가 미국 세탁시장에서 양강구도를 구축하며 승승장구하는 까닭은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맨 앞에 있다는 것은 옷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세탁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日常)이 됐다. 청결이나 위생 혹은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누구나 세탁을 한다. 세탁은 빈부·종교·성별·인종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이기도 하다. 옷을 옷답게 만들어주고 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도록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탁(洗濯)이다. 창업 업종 선호도에서 세탁업이 상위권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세탁이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됐음을 뜻한다. 특히 1~2인 가구와 맞벌이 인구 증가, 친환경에 대한 관심 제고 등으로 새로운 세탁서비스를 원하는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세탁산업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데일리임팩트는 국내 세탁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요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세탁업의 미래까지 진단하는 ESG기획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데일리임팩트 이승균 기자]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쩍 높아지면서 세탁 산업에서도 ESG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린워싱'은 친환경으로 위장한 상품과 서비스를 의미하는 부정적 용어지만 세탁산업 참여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세탁을 위한 기술혁신에 혼신의 힘을 쏟아붓고 있다. 

전세계 세탁기 시장 규모는 62조 3000억원(2020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패션산업이 팽창하면서 세탁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8년까지 전세계 세탁시장은 연평균 5.5% 성장해 9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성장과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월풀, 일렉트로룩스, 하이얼 등 주요 세탁기 생산 기업들은 생산과 유통, 사용과 폐기 등 전과정 관리에 나서고 있다. 물과 세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배출 폐수의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최근 친환경 세탁과 관련해서는 에너지와 물 사용량 절감이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세탁기의 높은 전력 사용량은 시장 성장을 저해시키는 주요 요소로 지목되기도 한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함께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 '에너지 소비 효율'이 제품 구매의 결정적 기준으로 자리매김되는 분위기다. 

국제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주요 선진국들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계기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전기료의 급격한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생활가전에 대한 정책적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친환경 세탁산업을 위해 제품 개발과 기술 혁신에 나서지 못한 기업들은 이 같은 제도와 정책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해 시장 점유율이 축소되거나 일부 제품의 경우 판매가 중단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유럽의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주목된다. 올해부터 생산되는 생활가전 제품을 유럽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사용량, 수리, 부품 수급, 재활용 가능 여부 등 전 과정에서 친환경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세탁의 환경 친화성에 대한 정책도 마련될 전망이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 세탁기를 수출하려면 오는 2025년부터는 플라스틱 미세섬유 필터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이날 데일리임팩트에 "친환경 정책을 선도하는 유럽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가전산업 전 분야에 대한 강도높은 규제가 마련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도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미국 세탁시장 장악한 LG전자와 삼성전자의 ESG경영

글로벌 친환경 세탁시장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바로 LG전자와 삼성전자다. 각각 다양한 기능이 탑재된 세탁기를 바탕으로 미국 생활가전 시장 브랜드 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LG전자는 약 20년전인 지난 2002년 미국 세탁기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시장에 떠오르는 드럼 세탁기를 통해 짧은 시간에 미국 세탁기 시장을 장악했다. 이에 힘입어 2003년 2.3%에 불과했던 LG전자의 미국내 시장점유율은 4년만인 2007년에는 24.7%로 껑충 뛰었다.

삼성전자는 이보다 늦은 2006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2015년 3분기에는 미국내 드럼 세탁기 시장 1위에 오르며 LG전자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LG전자 드럼세탁기. 제공 : LG전자
LG전자 드럼세탁기. 제공 : LG전자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지속가능경영 측면에서 세탁기 기술과 환경 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LG전자는 2002년부터 CSR경영의 선두 기업답게 세탁기를 포함한 주요 제품군의 환경 영향평가를 실시해 왔다. 2011년부터는 매년 세탁기에 대한 제조, 유통, 사용, 폐기 등 제품 주기별 환경영향을 꾸준히 측정하고 계량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LG전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18년부터는 이들 제품이 지구온난화, 자원 고갈, 오존층 파괴 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툴을 개발해 제품 개발 과정부터 면밀히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세탁기 등 주요 제품군은 재생 플라스틱 등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LG전자는 세탁기의 에너지 효율 향상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핵심은 바로 인버터 모터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포함된 DD 인버터 모터를 탑재해 의류의 재질과 무게에 따라 '맞춤 세탁'을 통해 물과 에너지 사용량을 모두 줄여나가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미국 환경보호청과 에너지국이 공동주관하는 에너지스타를 통해 주요 세탁기 68개 등 신제품군에 대한 에너지 효율을 인증받고 있다. 2020년에는 에너지 효율성 테스트 등에서 최고 등급으로 평가받는 등 미국 컨슈머리포트 드럼세탁기 부문 1~5위를 모두 차지하며 기술력을 입증한 바 있다.

LG전자는 `올바른 의류관리 습관을 통해 환경 보호에 참여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을 이어가는 등 세탁문화 개선에도 전사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진행된 캠페인 영상은 유튜브 누적 조회수가 1억뷰를 거뜬히 돌파할 정도로 글로벌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리플러스(Re+) 프로그램을 통해 폐전자제품 회수해 세탁기와 냉장고를 만들고 있다. 제공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리플러스(Re+) 프로그램을 통해 폐전자제품 회수해 세탁기와 냉장고를 만들고 있다. 제공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제품 설계 단계부터 친환경성을 고려하기 위해 자체 친환경 평가 제도인 에코디자인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공신력 있는 대외 인증기관의 평가 기준을 활용해 제품의 에너지 효율은 높이고 자원 사용은 최소화하는 등 프로세스 자체를 환경 친화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정량의 세제를 자동 투입하고 오염도를 감지해 헹굼에 필요한 물 사용량을 최소화하는 등 친환경 기술을 세탁기에 접목하고 있다. 세제를 녹이는 장치를 통해 세탁시간을 줄여 에너지를 절약하는 친환경 버블 워시 기술 등을 최신 제품 라인업에 적용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삼성전자는 재생 플라스틱 등을 세탁기 제작 과정에서 일부 활용하고 있다. 2021년 프랑스의 수리 용이성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획득하는 등 자원 재활용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두 가전회사 외에도 월풀, 일렉트로룩스 등 외국의 유명 세탁기 제조회사들도 친환경 세탁과 지속가능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월풀은 순환경제 측면에서 전 과정 환경 영향평가에 특히 적극적이다. 월풀은 세탁기의 생산과 사용, 사용 연한이 끝난 제품에 대한 회수와 재활용 등 전 과정에 있어 에너지와 물 사용 효율성 극대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드라이 클리닝에 사용되는 석유계 용제가 환경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웻 클리닝` 세탁 방식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일렉트로룩스의 라군 어드밴스드 케어다.

라군 어드밴서 케어는 기존의 드라이클리닝을 대체할 수 있는 웻 클리닝 기능을 제공한다. 석유계 용제를 사용하지 않아 환경친화적이다. 의류에 잔여 유기 용제가 남지 않아 냄새가 나지 않고 안전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일반 세탁기와 비교해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호텔과 리조트, 고급 의류 세탁을 원하는 일부 소비자들을 위한 프리미엄 세탁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같은 트렌드에 힘입어 웻 클리닝이 가능한 세탁기의 수입도 점차 늘고 있다.

국내 대형 세탁기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북미와 유럽시장에 진출하려 할 경우에는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며 "세탁 산업은 물과 에너지 절감뿐 아니라 건강과 환경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투자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탁 솔루션 전문기업인 코리아런드리의 서경노 대표는 4일 데일리임팩트에 "ESG경영 측면에서 환경이 그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제 소비자들도 환경과 건강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고 있어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세탁산업에서 수익을 낼 수 없게 된다"고 진단했다. 서 대표는 이어 "이같은 흐름을 정확히 간파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등 세탁산업도 발빠르게 변화해야만 경쟁력을 갖추며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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